소소한 사기-편법에… 줄줄 새는 보험금

장윤정기자

입력 2019-08-21 03:00 수정 2019-08-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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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중 폰 파손됐다며 보상받고… 고속버스서 T맵 켜 ‘안전운전’ 할인


#1. 지난해 말 술자리에서 휴대전화를 떨어뜨려 액정이 깨진 뒤에도 몇 달째 수리하지 않고 사용해온 A 씨(26). 하지만 올해 초 동남아 여행을 다녀오면서 휴대전화 액정을 교체했다. 출국 직전 여행자보험에 가입한 뒤 여행 중에 액정이 깨진 것처럼 꾸며 보상금을 받은 것이다. A 씨는 1만 원도 안 되는 보험료를 내고, 휴대전화 액정 수리비로 5만 원을 지급받았다.

#2. 한 통신사 내비게이션앱은 가입자가 ‘운전 점수’ 60점을 넘기면 운전 습관이 안전한 것으로 인정해 자동차 보험료를 할인해준다. 하지만 B 씨(34)는 번번이 60점 문턱을 넘기지 못했다. 결국 그는 편법을 동원했다. 고속버스를 탈 때 이 앱을 켜두면 점수가 자동으로 오른다는 팁을 얻은 것이다. 고속버스 덕택인지 점수가 50점대에서 80점대로 껑충 뛰었다.

보험상품의 허점을 이용해 허위로 보험금을 청구하거나 편법으로 보험료를 할인받는 가입자들이 늘고 있다. 비록 소소한 규모지만 사실상 보험사기나 마찬가지여서 당국이나 보험사들의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보험사기는 IT 기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주로 청년들이 많이 시도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해외여행자보험이다. ‘휴대품 손해담보’를 가입해두면 휴대전화가 도난, 파손됐을 때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는데 현지 경찰 확인서 등을 동원해 도난당했다고 꾸미거나 액정이 여행 중 깨진 것처럼 속여 보상금을 챙기는 것이다. 온라인상에는 ‘여행자보험으로 휴대전화 액정 수리하는 법’이라는 글이 버젓이 공유되고 있다.

실제 여행자보험 가입자들의 휴대품 손해담보에 대한 보험금 청구 건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휴대품 손해 보험금 청구 건수는 2015년 3만4460건에 그쳤지만 2018년 8만6476건으로 늘었다. 연령별로는 20대가 보험금 청구자의 35.8%를 차지한다. 보험개발원 문성연 팀장은 “20대의 출국자 대비 휴대품 손해사고 비율이 여타 연령대보다 월등히 높은 편”이라며 “악용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인슈어테크’의 빈틈을 파고드는 일도 적지 않다. ‘운전습관 연계특약(UBI)’이 그중 하나다. 삼성화재,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등은 SK텔레콤 내비게이션앱인 T맵의 운전습관 점수를 바탕으로 보험료를 5∼10% 할인해주는 특약을 선보이고 있다. 모범운전자에게 혜택을 주려는 취지지만 일부는 고속버스를 탈 때 T맵을 켜두는 식의 꼼수로 할인 혜택을 챙기고 있다. 고속버스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서행 운전하는 경우가 많아 점수를 받기 유리하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삼성화재가 내놓은 자동차보험 ‘애니핏 걸음수 할인 특약’도 타깃이 된다. 이 특약은 13주 동안 평일 기준, 50일 이상 하루 평균 6000보 이상을 걸으면 보험료의 3%를 깎아준다. 발 빠른 가입자들은 휴대전화를 흔들어주는 ‘자동걷기 기계’ 등을 구입하면 얼마든지 걸음수를 늘릴 수 있다며 해당 특약을 노리고 있다.

새어나가는 보험금으로 인한 피해는 결국 선량한 가입자들에게 돌아오게 된다. 손해율이 높아져 보험료가 인상되거나, 보장한도나 혜택이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보험사들은 손해율 관리를 위해 여행자보험의 휴대품 손해담보 보장한도를 축소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적은 금액이라도 허위로 보험금을 타내는 일은 ‘보험사기’”라며 “‘남들도 다하는데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이혜림 인턴기자 서울대 국어교육학·언론정보학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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