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내리면 상품값 싸져 좋지 않나요?

조수영 한국은행 통화정책국 정책제도연구팀 과장

입력 2019-06-25 03:00 수정 2019-06-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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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읽는 경제교실]


Q. 한국은행의 목적이 ‘물가안정’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물가안정이 왜 중요하고 한은은 물가를 어떻게 안정시키는 건가요?

A. 물가가 1년에 수백만 %씩 오르는 나라가 있습니다. 한때 풍부한 석유매장량 덕에 부유한 나라로 손꼽혔던 베네수엘라입니다. 하지만 연간 물가상승률이 100만 %가 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지금은 역대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물가가 뛰다 보니 빵 한 조각을 사려면 양손 가득 돈뭉치를 들고 가야 하고, 화폐로 휴지를 사는 것보다 화폐를 휴지로 쓰는 게 낫다고 할 정도입니다.

여러 가지 상품의 종합적인 가격 수준을 물가라고 하는데,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현상을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고 합니다. 경제활동이 늘어나면서 물가가 상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물가상승률이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할 때에는 우리 생활에 큰 지장이 없지만 오름세가 매우 가팔라지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한 개 500원 하던 아이스크림 가격이 1000원으로 올랐다고 해볼까요. 1000원으로 아이스크림 두 개를 사먹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한 개밖에 사지 못합니다. 부모님이 주신 용돈 1000원이 예전만큼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같은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이 줄어들어 현금의 가치가 감소합니다. 이에 따라 고정적인 연금이나 급여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실질적인 소득은 감소하고 부동산 등 실물자산을 가진 사람들은 자산 가격이 올라 소득과 부(富)의 분배가 왜곡됩니다. 이렇게 되면 정상적인 노동이나 생산 활동보다는 부동산 투기 등 비생산적인 활동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데만 매달릴 수 있습니다.

또 앞으로 물가가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물건을 사재기하면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이 물건을 구입하지 못하는 등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분배될 수 있습니다. 금융거래 측면에서는 현금의 가치가 감소하게 되므로 돈을 빌리는 사람의 실질적인 부담이 줄어들어 돈을 과다하게 빌릴 수 있습니다. 이들이 나중에 경제 여건이 악화돼 돈을 갚기 어렵게 되면 경제 전체가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디플레이션(deflation)이라고 합니다. 한 개 1000원 하던 아이스크림이 500원이 되면 너무 신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판매 가격이 하락해 기업이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이에 따라 투자가 위축됩니다. 투자가 감소하면 고용이 감소하고 회사에서 해고당하거나, 해고 위기에 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소비가 위축됩니다. 소비 감소는 다시 기업의 수익성 악화 및 물가 하락으로 이어져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동산 등 실물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사람은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서 자산을 팔아도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돼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악화됩니다. 이 때문에 디플레이션의 장기화는 국민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지나친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은 경제 상황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물가안정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한국은행법 제1조는 한은이 물가안정을 통해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은은 1998년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했습니다. 현재 물가안정목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 2%인데, 한은은 물가상승률이 이 정도에서 안정돼 있으면 개인이나 기업이 안심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은은 어떻게 물가를 안정시키는 걸까요? 한은은 물가안정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 여건의 변화에 맞춰 기준금리를 적절히 조절하고 있습니다. 물가가 높은 상승세를 지속하고 경기가 과열될 때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은행의 예금금리와 대출금리가 함께 올라가면서 과열된 개인의 소비와 기업의 투자 활동이 적절하게 조절돼 물가가 안정됩니다. 반대로 물가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에 크게 못 미치거나 경기가 침체될 때는 기준금리를 인하합니다. 이러면 개인과 기업의 이자 부담이 줄고 소비와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물가 하락을 막고 경기를 부양할 수 있습니다.

조수영 한국은행 통화정책국 정책제도연구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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