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꺼기油의 부활… 서산 간척지서 ‘화학산업의 쌀’ 생산

동아일보

입력 2019-06-20 03:00:00 수정 2019-06-20 03:00: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환경이 미래다] <15> 현대오일뱅크 ‘환경-수익 두토끼’

충남 서상시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전경. 현대오일뱅크 제공
16일 방문한 충남 서산시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396만 m²의 땅에서 하루 65만 배럴의 원유를 정제하는 거대한 공장들 옆으로 새롭게 터를 닦는 공사가 한창이다. 조흥렬 현대오일뱅크 신사업건설본부 과장은 “지반을 단단히 하기 위한 작업까지 막 끝낸 상태”라며 “이르면 이달 말 터 공사를 끝내고 공장 건설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원래 바다였던 곳을 간척해 만든 약 50만 m² 넓이의 이 땅에 현대오일뱅크의 자회사 현대케미칼이 총 2조7000억 원을 투입하는 중질유분해설비(HPC)가 들어설 예정이다. HPC는 ‘화학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비롯한 올레핀 계열의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설비다. 그러나 기존의 화학 생산설비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에틸렌의 주원료로 나프타를 쓰지만 이곳에 짓는 HPC는 인접한 정유공장에서 나온 정유 부산물을 사용한다.


○ 신사업 예상 이익만 연 6000억 원


국제해사기구(IMO)는 2020년 1월부터 선박 연료유의 황 함유량 기준을 현행 3.5%에서 0.5%로 낮춘다고 지난해 발표했다. ‘IMO 2020’이라고 불리는 이 규제로 인해 하루 350만 배럴에 이르는 세계 고유황 중질유 선박연료 수요가 내년부터 빠르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원유에서 휘발유, 경유 등을 정제하고 남는 ‘찌꺼기(잔사유)’인 중질유는 선박유 외에는 딱히 다른 쓰임도 없다. IMO 2020 규제가 정유사들의 수익성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오일뱅크는 이 규제를 오히려 새로운 사업 진출의 포석으로 삼았다. 중질유를 새로운 석유화학제품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쓸 데가 없어진 찌꺼기로 새 제품을 만드는, 마치 ‘버리려던 누룽지’로 새 ‘흰밥’을 짓는 격이다.

하지만 흰밥을 지으려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정제 후 남은 잔사유를 아스팔텐 분리공정에 투입해 아스팔텐을 분리해야 한다. 아스팔텐 성분이 남아있는 잔사유를 그대로 고도화 공정에 투입하면 아스팔텐이 숯덩이로 변해 수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잔사유의 활용 가능성을 높이려면 아스팔텐을 분리하는 게 중요하다. 아스팔텐이 분리된 기름은 벙커C유와 경유의 중간 정도 성질을 지니게 된다.


HPC는 이렇게 얻은 기름을 투입해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HPC가 완공되면 플라스틱, 합성섬유 등의 원료가 되는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을 각각 85만 t, 50만 t 생산하게 된다. 매출, 영업이익 기대효과만 각각 3조5000억 원, 6000억 원에 이른다.


○ 비정유 이익 45%로…‘종합 에너지 기업’ 탈바꿈


아스팔텐이 분리된 기름을 석유화학제품 원재료로 쓰는 건 국내 최초의 시도다. 일반적으로 석유화학 기업들은 에틸렌, 프로필렌 등의 제품 원료로 원유 부산물인 나프타를 쓴다. 나프타 의존성이 높을수록 국제 시황에 따라 실적이 불안정해진다. 최근 많은 석유화학 회사가 에틸렌 스프레드(나프타와 에틸렌의 가격 차)가 t당 300달러대로 떨어지면서 실적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기도 하다. 롯데케미칼이 최근 미국에 에탄분해설비(ECC)를 세운 것 역시 나프타 의존성을 줄이기 위해서다.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아스팔텐이 분리된 기름을 사용하면 나프타에 비해 약 20% 낮은 원가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현대오일뱅크 측은 “비슷한 생산능력을 가진 나프타분해설비(NCC)와 비교해보면 연간 수익성 개선 효과가 2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HPC가 완공되면 비정유 사업부문 영업이익 비중이 현재의 30%대에서 2022년 45%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정유사들은 이 기름을 주로 윤활기유를 제조하는 데 투입한다. 현대오일뱅크가 이 기름을 고부가가치 석유화학제품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이유 역시 고도화 설비를 잘 갖췄기 때문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잔사유를 투입해 부가가치가 높은 휘발유, 경유 등을 재생산하는 ‘고도화 설비’를 국내 정유사 중 가장 크게 갖추고 있다. 지난해 아스팔텐분리공정을 완공하며 ‘꿈의 고도화율’(전체 정제 설비에서 고도화 설비가 차지하는 비중)로 불리는 40%를 넘어섰다. 정유사업의 효율성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아스팔텐을 분리할 때 다른 정유사와 달리 펜탄을 사용한다. 이를 사용하면 프로판을 사용할 때보다 아스팔텐이 분리된 기름이 2배 이상 추출된다. 기름을 짜낼 수 있을 때까지 짜내기 때문에 부산물인 아스팔텐의 품질은 그만큼 낮아져 아스팔트로도 제조할 수 없게 된다. 다른 정유사들이 펜탄을 용매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다.

하지만 현대오일뱅크는 질 낮은 아스팔텐에서도 납사와 경유를 뽑아낼 수 있는 고도화 설비를 갖고 있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기존 정유공장에 끊임없이 투자한 결과 새롭게 진출하는 석유화학 사업에서도 차별화된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라며 “고도화 설비 증설에 이은 석유화학 프로젝트로 친환경 종합에너지기업 비전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산=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