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의 솔푸드, 베트남 쌀국수[정기범의 본 아페티]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입력 2021-08-05 03:00 수정 2021-08-05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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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프랑스에서 살다 귀국한 이들에게 프랑스를 추억할 때 가장 생각나는 음식을 물으면 보통 1순위로 꼽는 게 베트남 쌀국수다. 프렌치 레스토랑 코스 요리나 프랑스 요리의 대명사인 양파 수프, 세계 3대 진미인 푸아그라(거위 간)를 얘기할 법도 싶은데 늘 쌀국수에 밀린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당장 나부터도 서울에 장기 출장을 가면 베트남 쌀국수가 불현듯 생각나 쌀국수 체인점을 찾곤 했는데 몇 차례 실망한 후부턴 다시 찾지 않는다. 파리의 그 맛과 극명한 차이가 느껴져서다. 파리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다 파리 공항에서 쌀국숫집으로 직행한 적도 있다.

베트남 쌀국수는 프랑스에서는 ‘퍼(Pho)’ 또는 ‘통키누아즈(Tonkinoise)’로 불린다. 현지 교민이나 유학생들은 베트남 쌀국수를 먹으러 가자는 말 대신 “통키 먹으러 갈까”라고 줄여 말하기도 한다. 파리에서 유명한 베트남 쌀국숫집은 차이나타운으로 불리는 13구와 벨빌이라는 타운이 형성된 20구에 주로 모여 있다. 특히 13구는 보트피플로 프랑스에 건너온 베트남인의 삶의 터전으로, 아시안 레스토랑 생필품점 슈퍼마켓 등이 모여 있는 곳이다.

지금 파리에서 즐길 수 있는 베트남 쌀국수는 옛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 하노이 지역의 쌀국수와 프랑스식 육수가 결합된, 베트남식 ‘포토푀’라는 설이 유력하다. 1960년대부터 보트피플과 이민자들에게 솔푸드(soul food)로 사랑받은 베트남 쌀국수는 그 인기가 날로 높아져 일부 레스토랑은 키아누 리브스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쌀국수가 세계적인 음식이 된 데는 부담 없는 가격이 한몫했다. 프랑스 맥도널드 빅맥 세트와 비슷한 10유로(약 1만3000원) 미만 가격으로 푸짐한 쇠고기와 쫄깃하고 부드러운 쌀국수를 즐길 수 있다. 유학생이 대부분인 한인 사회에서 쌀국수가 가성비 좋은 보양식으로 소문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요즘 파리의 베트남 쌀국수는 국물이 맑은 하노이식보다는 진한 육수에 다양한 허브를 잔뜩 넣은, 단맛이 강한 호찌민 스타일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기호에 따라 맵거나 단 소스를 넣고 라임을 짜서 고수, 민트, 타이바질 등 허브를 그릇이 넘칠 정도로 함께 넣으면 쌀국수를 제대로 먹을 줄 아는 사람이다.

중복을 맞아 단골 베트남 쌀국숫집을 다시 찾았다. 파리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가 봤던 쌀국숫집만 80곳이 넘는데 재작년에 발굴한 이곳은 특별하다. 푹 삶아낸 꼬리뼈와 국물이 한국 뚝배기처럼 생긴 돌솥에 담겨 있고, 얇게 썬 등심과 부드러운 국수가 접시에 따로 나온다. 처음에 돌솥에서 펄펄 끓는 국물에 샤부샤부처럼 고기를 익히며 먹는데,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따스함이 유지된다. 여기 쌀국수 가격은 다른 곳보다 비싼데 잡고기가 아닌 깔끔하게 손질한 고기를 써 맛을 차별화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입안에 군침이 고이는 걸 보니 곧 다가올 말복에도 베트남 쌀국수에 푹 빠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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