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되찾아 과자 들고 웃더니… ‘라면 형제’ 동생 끝내 하늘로

이소연 기자 , 인천=황금천 기자 , 김태언 기자

입력 2020-10-22 03:00 수정 2020-10-2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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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집비운새 라면 끓이다 불
인천 8세 초등생 37일만에 숨져
유독가스 많이 마셔 갑자기 악화
“하늘에선 행복하길” 추모글 줄이어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형제가 단둘이 끼니를 해결하려다 발생한 화재 현장 모습(인천 미추홀소방서 제공)/뉴스1 © News1

“하늘나라에서는 배고픔 따위는 잊고 마냥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온라인 익명게시판)

지난달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불이 나 중상을 입었던 인천 초등학생 형제 가운데 동생이 21일 오후 3시 40분경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 입원한 지 37일 만이다.

인천 미추홀경찰서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한 화상전문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던 동생 A 군(8)은 전날 저녁부터 호흡 곤란과 구토 증세를 호소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1도 화상을 입었던 동생은 화재 당시 유독가스를 많이 들이마신 탓에 호흡기 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아왔다. 경찰 관계자는 “21일 기도 폐쇄 증상이 일어나 2시간 넘게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동생은 추석 연휴 기간이던 5일 형 B 군(10)과 함께 의식을 회복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으나 결국 안타까운 비극을 맞았다. 형은 온몸의 40%에 이르는 부위에 3도 화상을 입어 피부 이식 수술을 두 차례 받았다. 현재 휴대전화로 학교의 원격수업을 가끔 들을 정도로 호전된 상태로 알려졌다.

형제 곁을 지키며 이들을 돌봤던 사단법인 학산나눔재단 측은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재단 관계자는 “동생은 지난 주말까지도 시민들이 보내온 과자를 들고 해맑게 웃곤 했다”면서 “20일에도 아이가 평소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옷을 입고 싶다고 해서 오늘 사러 가려던 참이었는데…”라고 했다.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에서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동생을 기리는 글들이 이어졌다. ‘작고 어린 천사의 명복을 빈다’, ‘저세상에선 넘치도록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동생을 잃은 형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남기는 이들도 많았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형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가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익명의 시민은 “신이 있다면 혼자 남겨진 아이가 외롭지 않길, 주변의 관심과 사랑으로 힘든 치료 과정을 극복할 수 있길, 동생의 몫까지 반듯하게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썼다.

정치권에서도 동생의 죽음을 추모하는 반응이 나왔다. ‘미추홀구 형제 화재 참사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허종식 의원은 소셜미디어에서 “가슴이 무너진다.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황규환 부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돌봄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이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지 않도록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에 따르면 인천 형제의 이웃들은 2018년 9월부터 올 5월까지 방임 학대가 의심된다며 3차례 신고했다. 기관에선 신고 때마다 엄마 C 씨에게 아이들을 지역아동센터로 보내길 권고했다. 하지만 홀로 아이를 키우던 C 씨는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형제는 지난달 14일 오전 11시 10분경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집에서 라면을 끓이다 일어난 화재로 중화상을 입었다. 평소라면 학교에 갔을 시간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등교가 중단돼 집에 머물렀다.

학산나눔재단에 따르면 형제가 사고를 당한 뒤 현재까지 2억2700만 원의 성금이 기부됐다. 재단 관계자는 “지난주 형제가 좋아하는 과자인 ‘바나나킥’ 등이 담긴 선물 두 상자를 병원에 보냈는데, 제대로 맛보지도 못하고 떠났다”며 울먹였다. 미추홀구는 학산나눔재단과 함께 후원금 일부를 A 군의 장례비용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 / 인천=황금천 / 김태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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