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짐승을 죽였다” 후 30년…‘n번방’에 드러난 누더기 성폭력법

뉴스1

입력 2020-03-30 14:43:00 수정 2020-03-30 15:5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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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성 착취 강력처벌 촉구 시위 운영진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n번방 사건 관련자 강력처벌 촉구시위 및 기자회견’에서 텔레그램 n번방 박사(조주빈), 와치맨, 갓갓 등 관련 성 착취 방 운영자, 가담자, 구매자 전원에 대한 강력한 처벌, 이와 같은 신종 디지털 성범죄 법률 제정 및 2차 가해 처벌 법률 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 News1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

1991년 1월30일, 9세 때 성폭행을 당한 이후 21년 동안 후유증에 시달렸지만 가해자를 처벌할 방법을 찾지 못해 직접 살해한 후 법정에 선 김모씨의 변론이다.

그후 30여년이 지났지만 성범죄 가해자들에게 범죄행위에 합당한 처벌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은 요원하기만 하다.


사법부는 성폭력처벌법 입법취지가 무색하게 가해자들에게 벌금형,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만을 내렸고, 입법부는 그때그때 문제되는 법안만을 ‘땜질’해가며 성범죄 전반에 대한 법 정비를 미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입법부와 사법부가 디지털 성범죄와 성착취 범죄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 음란물과 성착취물 명확히 구분해야

우선 전문가들은 n번방에 문제가 된 영상물을 단순히 ‘음란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동·청소년 성호보에 관한 법률에 보면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사실 바라보는 시각이 거기서부터 잘못된 것”이라며 “아동·청소년은 민법상 어떤 계약을 맺더라도 법률관계를 다 취소할 수 있다. 그런 미성년자가 동영상 촬영에 동의했다고 해서 그걸 ‘동의’라고 봐서는 안된다. 아동청소년 대상 음란물은 사실상 다 성착취물로 보고 그에 맞게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동청소년 대상 음란물을 다 성착취물로 규정하기만 했더라도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성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성인이라할지라도 약점을 잡아서 성인물을 만들게 했다면 역시 성착취물”이라며 “우리나라 현행법으로 일반 성인물과 착취물이 다 불법화되어 있다고 해서 두개를 똑같이 봐서는 안된다. 성인물과 성착취물은 본질적으로 다른 영역의 영상물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승 연구위원은 또 “미성년 피해자들이 왜 소위 ‘일탈계’ 등에서 그런행동을 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성년자는 호기심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다. 또 관심을 찾아서 다니는 나이”라며 “여러가지 이유로 주변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SNS에 자기의 특정 신체 일부를 드러냄으로서 팔로워를 모으고 그 관심을 기뻐하는 것”이라면서 “관심과 격려가 부재한 사회가 만들어낸 사회현상을 피해자 탓으로 돌려선 안된다”고 말했다.

◇성인 피해자 구제는 어쩌나

n번방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에는 청소년성보호법 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소지죄 등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피해자가 성인인 경우에는 형량이 훨씬 낮아지는 문제가 생긴다.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한 경우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고, 영상을 단순 소지한 경우에도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이용촬영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형량이 낮아진다. 소지의 경우는 처벌조항조차 없다. 배포 등의 행위가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하다.

한 현직판사는 “성폭력처벌법 14조 등에는 촬영물을 복제하거나 반포, 판매한 경우를 처벌하고 단순 관람을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며 “명확한 처벌규정이 없으면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현욱 변호사는 “아동청소년이 아닌 성인여성들의 성착취물은 배포 등 다른 행위가 있지 않는 한 소지하는 것만으로는 현재 규정상 처벌이 힘들다”며 “성인여성도 성착취영상을 누군가 소지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피해를 입게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처벌조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n번방은 그냥 가입하는 게 아니라 인증절차를 거치고 회비를 내는 등 방법으로 가입하므로 가입하는 것 자체를 n번방에서 일어나는 범행에 어느정도 동의한 걸로 봐서 교사범, 방조범 등으로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개정 시급, 양형기준도 법감정 맞게 설정해야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법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 부장판사는 “이번 사건으로 어디까지를 (성착취물의)소지로 볼 수 있는지, 컨텐츠의 심각성에 따라 처벌을 달리할 수 있는지 등 법의 사각지대가 나타났다”며 “늦었지만 국회가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서초동의 변호사는 “성폭력 관련 법은 법률가들도 일일이 찾아보고 확인하지 않을 정도로 헷갈릴 정도로 복잡하다”며 “체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변호사는 “이제 와서 성폭력 관련 법이 개정된다고 하더라도 형사불소급 원칙때문에 n번방 범죄에 적용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 법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솜방망이 처벌이 사태를 키운 측면이 있는 만큼 법정형을 상향하고 엄벌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양형기준이 설정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승 연구위원은 “양형위원회의 첫 번째 목적은 국민의 건전한 법 감정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국민의 법감정이 반영이 안 된 양형기준은 분명히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설정시 다른 성범죄 형량과 비교해 형평이 안 맞다면 다른 형량을 같이 올리면 된다”며 “양형의 가장 큰 목적은 국민의 법감정이지 법관의 법감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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