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못 본 그림의 앞면…화가는 왜 그림을 뒤집어 놓았을까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19-11-20 15:24:00 수정 2019-11-20 17: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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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넬리스 N. 헤이스브레흐트, 그림의 뒷면, 1668-1672년
Cornelis Norbertus Gysbrechts, The reverse of a framed painting, 1668-1672
*트롱프뢰유 Trompe-l‘œil * Frederick III of Denmark

덴마크의 코펜하겐 국립미술관에 가면 눈을 의심케 하는 특이한 그림 한 점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의 대표 소장품 중 하나지만 아무도 이 그림의 앞면을 본 적이 없다. 항상 뒷면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림이 왜 뒤집어져 있지? 아직 설치가 끝나지 않은 건가?’ 벽이 아닌 바닥에 놓인 그림을 보면서 관람객들이 종종 던지는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그림은 한 번도 뒤집어진 적이 없다. 그림 액자의 뒷면을 그렸기 때문이다. 현대미술 같지만 놀랍게도 350년 전 북유럽 화가의 그림이다. 플랑드르(구 벨기에) 출신이었던 코르넬리스 헤이스브레흐트는 ‘트롱프뢰유’라는 장르에 능했다. ‘눈을 속이다’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트롱프뢰유는 실물로 착각할 정도로 정교하게 묘사한 눈속임 그림을 말한다. 현대에 유행하는 ‘트릭아트’의 원조다.

17세기 유럽의 왕이나 귀족들 사이에선 일상생활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물건이나 예술품들로 전시실을 꾸미는 것이 유행이었다. 독일어권에서는 이를 ‘경이로운 방’이라는 뜻의 ‘분더캄머’라 불렀다. 독일에서 활동했던 헤이스브레흐트는 1668년 덴마크로 가서 프레데리크 3세의 궁정화가가 됐다. 그는 덴마크에서 지낸 4년 동안 왕의 분더캄머를 위해 총 22점의 눈속임 그림을 그렸다. 주로 정물화나 편지꽂이, 화구나 악기가 걸려있는 벽면 등을 그렸지만 이 그림은 특이하게도 그림의 뒷면이 주제다. 복잡한 구도의 정교한 그림들도 몇 달 안에 척척 그려내던 화가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그림의 뒷면을 그리는데 무려 4년을 바쳤다. 그림이 완성됐을 때 왕의 반응은 어땠을까? 아마도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놀라고 감탄했을 것이다.

이러한 눈속임 그림은 우리 눈의 한계뿐 아니라 인식의 한계를 재고하게 만든다. 눈에 보이는 게 진짜가 아닐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또한 화가는 그림의 뒷면을 통해 진실은 언제나 현상의 이면에 감춰져 있으니 통찰의 눈을 길러야한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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