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여고생 살인 누명 쓴 40대 “고문 경찰 사과 받고 싶다”

뉴스1

입력 2019-10-23 08:54:00 수정 2019-10-23 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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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월 충북 청주시 가경동 택지조성 공사장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A씨(47).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A씨는 당시 경찰의 가혹행위와 폭행에 못이겨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뉴스1
“잠을 안 재우고 수시로 구타하고 고문해서 살인했다고 자백했습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 이춘재(56) 자백의 후폭풍이 거세다.

경찰이 진범이 아닌 엉뚱한 이들을 수사하면서 고문과 가혹행위로 자백을 받아냈다는 증언이 연이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모방범죄로 결론 난 화성 8차 사건의 진범 논란에 이어 이춘재가 자백한 2건의 청주 미제 살인사건도 다른 이들이 수사를 받거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A씨(47)는 1991년 ‘가경동 여고생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검거돼 1·2심 재판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1991년 1월 26일 청주 가경동 택지조성 공사장에서 박모양(당시 16세)이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된 사건에서 경찰은 3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A씨(당시 19세)를 붙잡았다.

경찰은 A씨의 옷과 구두에 흙이 묻어있던 점과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해 달라고 부탁한 점 등을 토대로 그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수사기관에서 증거로 제출한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조서 등이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는 점, 공판 과정에서 A씨가 진술이나 범행 재연의 상황을 모두 부인하는 점, 사건 핵심 관계자의 진술 번복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항소로 열린 2심에서도 A씨에게 무죄가 선고됐고, 검찰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무죄가 확정됐다.

A씨에 대한 1심 재판 선고는 1993년 6월23일 이뤄졌다. 정확한 기소 시점을 확인할 수 없지만, 1991년 1월 사건이 발생한 점으로 미뤄 A씨는 2년 가까이 1심 재판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최근 이춘재는 2건의 청주 사건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A씨가 조사를 받은 가경동 사건과 남주동 주부 살인사건이 자백에 포함됐다.

A씨는 22일 뉴스1과 만난 자리에서 “경찰이 잠을 재우지 않았고, 구타와 가혹행위로 자백을 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1991년 1월 충북 청주시 가경동 택지조성 공사장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A씨(47).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A씨는 당시 경찰의 가혹행위와 폭행에 못이겨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뉴스1
다음은 A씨와의 일문일답.


- 1991년 가경동 살인사건 용의자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상황은.

▶ 사건이 나고 2~3달 쯤 뒤에 경찰이 자취방에 찾아왔다. 친구하고 함께 살고 있었다. 살인사건 난 거 때문에 탐문수사를 한다고 했다. 이후 2~3번 더 찾아왔다. 체포는 절도 사건으로 됐다. 시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겨울에서 봄 넘어갈 때쯤. 절도사건으로 구속되고 조사는 살인사건이 함께 진행됐다. 살인사건 조사는 파출소에서 조사를 받았다. 파출소 두 곳을 오가면서 살인사건 조사를 받았다.


- 사건 있던 날 무엇을 하고 있었나.

▶ 1월25일. 나중에 생각해보니 월급을 받은 날이었다. 친구하고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조금 받았다. 2만 얼마였던 것 같다. 그거 가지고 어머니한테 바로 갔다. 집으로. ‘출근해서 돈 받았는데 이거 밖에 안 주네. 엄마 써’고 하니 ‘너가 써’라고 했다.


- 경찰에서 자백했다 검찰에서 부인했다고 하는데.

▶ 자백은 (경찰이)잠을 안 재우고 구타하고 고문해서 시인했다. 잠 안 재우고 때리고 발로 차고 했다. 지나가다가도 이유 없이 때렸다. 쪼그려 앉은 상태로 무릎 뒤쪽에 봉을 걸어 매달려있었다. 1시간 정도. 거꾸로 매달아서 얼굴에 수건을 적셔가지고 짬뽕국물을 붓기도 했다. 자백을 요구하면서 피해자가 끼고 있던 반지를 내놓으라고 했다. 나는 없었다. 아예 없는 물건이다. 구경도 못해봤다.


- 다른 가혹행위는 얼마나 이뤄졌나.

▶ 잠 안 재우고 때리는 것은 하루가 아니다. 며칠이다. 자백하라며 수시로 때렸다. 자고 싶어서 자백했다. 송치될 때는 잠을 자야하기 때문에 조사관 앞에서 시인을 했다. 교도소 가서는 부인했다. 검찰에 (사건이)있을 때다. 어머니가 면회를 와 울면서 “진짜 그랬느냐” 물었다. 아무 말 못하고, 내가 안했는데 생각만 했다. 죄가 없는 내가 시인을 해서 어머니가 남들에게 눈총 받고 손가락질 받는 게 싫었다. 그래서 마음을 바꿔 부인했다.


- ‘만화책을 보고 범행했다’며 자백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경찰이)왜 그랬냐며 범행 동기를 묻는데 할 얘기가 없었다. 고문이 심해 만화책 보다 그랬다는 얘기를 지어서 자백했다. 경찰이 만화책을 싹 뒤졌지만 그런 내용이 없다고 했다. 또 잠 안 재우고 때리고…


- 현장검증은 어떻게 이뤄졌나.


▶ 형사들이 미리 행동을 알려줬다. 어떻게 해서 어떻게 하라고 알려줬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대로 했다. 범행 장소도 그날 처음 가봤다. 내가 하는 행동이 틀리면 (경찰이)지시를 했다.


- 상습절도로 2년 복역 후에도 살인사건 1심 재판이 진행됐다.


▶ 복역 중이었다가 무죄 선고받고 나왔다. (절도)형기가 끝났는데도 계속 수감돼 1심 재판을 받았었다. 절도 형기 끝나고 구속된 기간은 잘 생각이 안 난다. 3개월 정도 더 있었던 것 같다. 경찰 검찰에서 증거 수집을 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 범행 현장에서 도망갔다는 피해자와 아는 사이인가.

▶ 잘 모른다. 경찰 탐문조사를 받고 어머니와 찾아갔을 때 한 번 봤다. 어머니에게 조사 사실을 말해 그 분 집을 갔었다. 별다른 얘기는 안 했다. 그 분이 내가 아니라고 했던 기억은 있다. 며칠 뒤에는 내가 범인이라고 했다고 들었다.


- 가경동 피해 여고생과 아는 사이였나.

▶ 같은 동네 사람이라도 산 하나를 두고 살아서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다.


- 최근 이춘재가 사건 자백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지.

▶ 소식 나오기 전까지 다 잊고 살아왔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생각도 안하고 살았다. (이춘재 이야기를 듣고) 그냥 아무 생각도 안 났다. 담담했다.


- 당시 경찰 이름이나 얼굴은 기억하나.

▶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 바라는 점이 있다면.

▶ 다른 사람 필요 없고 만나고 싶지도 않지만, 담당 형사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는 듣고 싶다.

(청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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