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사망사고 절반이 건설업… VR기기 이용해 근로자 안전 교육

공승배 기자

입력 2022-11-25 03:00 수정 2022-11-25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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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안전지대로〈상〉SH공사, 낙하물 사고 상황 등 재현
입체감 살려 근로자도 실감 체험, 단순한 영상보다 교육효과 뛰어나
스마트 안전관리 통합 플랫폼 구축, 실시간 작업상황 파악해 신속 대응


이달 1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방화동 행복주택 건설현장 사무실에서 근로자들이 실제 사고를 가상현실(VR)로 재현한 안전교육을 받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올해는 연초부터 재난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연초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로 6명이 목숨을 잃었다. 8월에는 수도권의 기록적 폭우로 14명이 사망했다. 9월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경북 포항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기면서 7명이 사망했다. 10월에는 158명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까지 발생했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질수록 기존에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가 생긴다. 태풍 등 ‘자연 재해’는 물론이고 화재 붕괴 등 ‘사회적 재난’에 대비하는 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 책무다. 동아일보는 국내 인구의 과반이 거주하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방정부와 공기업의 재난 대비 현장을 세 차례에 걸쳐 둘러봤다.
● VR 기기로 안전 교육
“와, 진짜 사고 난 줄 알고 깜짝 놀랐네.”

이달 1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방화동 행복주택 건설공사’ 현장 사무실. 머리에 가상현실(VR) 기기를 쓰고 안전교육을 받던 현장 근로자들이 순간 놀란 듯 몸을 움찔했다. 건설자재가 떨어지면서 바로 앞 동료를 덮치는 상황을 VR 기기를 통해 체험한 것이다. 근로자들은 “실제 상황 같아 공포에 몸이 떨렸다”고 입을 모았다.

현장 발주처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낙하물 사고 등이 눈앞에서 일어난 것처럼 VR로 재현해 안전교육을 하고 있다. 현실감 있는 교육으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현장에서 만난 SH공사 관계자는 “눈앞에서 사고가 벌어지는 장면을 본 근로자 상당수가 안전에 더 주의하게 됐다고 말했다”며 “일반 영상 교육보다 효과가 좋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했다.

현장에는 출입구와 작업장마다 ‘안전관리 실명제’ 안내판도 설치돼 있었다. SH공사가 지난해 말부터 시행 중인 것으로 현재 어떤 공정을 하고 있고, 관리 책임자는 누구인지 등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해 준다. 현장에서 관리 책임자의 책임감을 한층 높이는 역할을 한다.
● SH공사, 스마트 안전관리 플랫폼 구축
올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산업재해 사망자가 나오면 최고경영자까지도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이 법 시행 이후에도 산재 사망자는 줄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1∼9월 전국에서 483건의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해 510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산재 사고로 숨진 근로자는 502명이었다. 그리고 지난해와 올해 모두 산재 사망자 중 절반가량이 건설업 종사자였다. 서울 내 택지를 개발해 주택을 공급, 관리하는 SH공사가 건설현장 안전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도 산재 사망자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업 산재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SH공사는 1만 채가 넘는 서울 마곡지구 도시개발사업, 고덕강일 공공주택사업 등 서울 곳곳에서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SH공사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김헌동 사장 취임 후 건설 현장과 재난 대비 등 안전 관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안전경영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현장 안전을 위해 내년 상반기(1∼6월)를 목표로 스마트 안전관리 통합 플랫폼도 구축 중이다.

지금까지는 본사 상황실에서 폐쇄회로(CC)TV를 통해 현장 안전을 관리하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스마트 통합 플랫폼이 구축되면 어느 공정에서 누가 작업하고 있는지 등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어 사고가 나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근로자가 안전 고리나 안전모 등 안전장치를 착용하지 않은 경우에도 실시간으로 이를 파악해 관리자에게 알리게 된다.

안전관리자 배치 의무가 없어 안전에 취약한 소규모 현장 관리도 강화하고 있다. 올 1∼9월 발생한 건설업 산재 사고 사망자는 253명이었는데 사업비 50억 원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171명으로 3분의 2에 달했다. SH공사는 소규모 현장에서 철근콘크리트 공사 등 위험 작업을 할 때 내부 안전기술자들이 작업계획서, 안전관리계획서 등을 검토하고 보완 사항을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안전 관련 현장 부조리를 신고하면 포상하는 ‘근로자 안전신고 포상제’, 다단계 하도급 구조 개선을 위한 ‘건설공사 직접시공제’, 무리한 임금 삭감에 따른 부실시공 방지를 위한 ‘적정임금제’ 등도 실시 중이다.

김헌동 SH공사 사장은 “실제 작업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종사자들이 계속 안전을 생각하고 실천하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현장 의견을 수렴하면서 종사자들이 안전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관리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해 현장 챙기겠다”






강성민 SH공사 안전경영실장



스마트폰 통해 작업장 위험 파악

재난 모의훈련도 지속해서 실시







“고품질의 ‘백년주택’을 만들기 위해선 건설현장 안전이 선행돼야 합니다.”


이달 17일 서울 강서구 방화동 행복주택 건설현장에서 만난 강성민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안전경영실장(53·사진)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안전을 바탕으로 ‘집 걱정 없는 고품격 도시’ 서울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SH공사는 김헌동 사장 취임 이후인 올 1월 재난안전 관리 전문화를 위해 기존 재난안전실을 1실 3부 체제의 안전경영실로 확대 개편하고 사장 직속으로 편성했다. 재난안전실장에 이어 안전경영실장을 맡은 강 실장은 “조직개편에는 안전 관리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SH공사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안전경영실이 생기고 무엇이 달라졌나.

“안전경영실 내 안전경영부 예방안전부 재난지원부 등 3개 부서가 생겼다. 이를 통해 안전 관리와 재난 관리 등 각각의 업무를 세분화하면서 안전 관리 체계가 한층 전문화됐다. 안전경영실 직원 16명 중 안전·보건 자격증 또는 전문기술 보유자가 10명이나 된다. 짧은 시간에 전문성을 갖춘 사장 직속의 안전 전담 조직으로 자리매김했다. 앞으로 전문 자격 보유자 비율을 계속해서 높일 것이다.”

―건설현장 안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조직 개편과 함께 사내 안전보건 제도도 정비했다. 4개 분야 33개 대응 과제를 수립해 이행하고 있다. 산업재해 예방과 근로자 보호를 위해선 교육도 중요하다. 고위 관리자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특별 교육과 중대재해처벌법 교육, 재난 모의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다.”

―스마트 기술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현장 근로자에게 더 현실감을 주기 위해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한 안전교육을 실시 중이다. 내년 상반기(1∼6월)에 스마트 안전관리 플랫폼을 구축해 시범 운영을 시작한다. 스마트 플랫폼이 구축되면 현장 인력이 몇 명인지, 어디서 어떤 작업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근로자도 스마트폰을 통해 작업 시 어떤 위험이 있고, 어떻게 사고를 예방해야 하는지 등의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중대재해법 시행에도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법 규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제도가 현장 근로자에게 흡수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장 근로자가 스스로 마음을 움직여 안전의식을 갖추도록 만드는 걸 ‘감성 안전’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매주 수요일 전 임직원에게 ‘CEO 안전보건 메시지’를 보내며 안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현장 근로자를 직접 찾아 격려도 하고, 협력사에도 사장 명의의 안전 기원 서한문을 보내며 안전을 당부한다. 앞으로도 현장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안전보건을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겠다.”



공승배 기자 ks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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