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경제는 지금 종합병원… 내년 수출계획 막막”

이건혁 기자

입력 2022-10-06 03:00 수정 2022-10-0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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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시장 진출한 국내기업들 비상

현대자동차 체코공장. 동아일보DB

“유럽의 현 상황은 한마디로 ‘종합 병원’ 수준입니다.”

5일 재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럽 에너지 위기가 국내 기업들의 현지 생산 공장에까지 여파를 미칠 수 있어서다. 국내 기업들은 조만간 내년 경영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권역별 시장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하지만 유럽의 경우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싱크탱크 HMG경영연구원은 이번 주에 내년 경영계획 수립의 기초가 될 세계 경제 전망을 경영진에 보고할 예정이다. 유럽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전망이 더 악화될 것”이란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 사업의 위기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에너지 수급 불확실성이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4일 기준 헝가리의 천연가스 비축률은 74.31%까지 낮아졌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도 80%대 중후반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들 동유럽 국가는 삼성전자, 삼성SDI, 현대자동차, LG전자, LG에너지솔루션, 한국타이어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의 생산 설비가 다수 위치한 곳이다. 기업들은 이곳에서 만든 제품을 유럽 전역으로 판매한다.




우선 에너지 비용이 급상승했다. 헝가리의 경우 2019년 대비 올해 에너지 수입 금액이 약 4배로 늘었다. 이에 따라 유럽 내 전력 도매가격은 2020년 1월 MWh(메가와트시)당 47.4유로에서 올해 8월 421.4유로로 9배 가까이로 올랐다. 국내 기업 고위 관계자는 “에너지 가격이 올라 이미 유럽 현지 공장 가동을 위한 비용이 대폭 올랐다. 영업이익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여기에 향후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력 공급이 제한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3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공급이 완전히 끊길 경우 내년 2월 유럽연합(EU)의 가스 저장률은 20%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외신에 따르면 독일 폭스바겐그룹은 내년 에너지 부족 사태에 대비해 동유럽과 독일 대신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이 있는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의 생산 비중을 높이기로 했다. 유럽 현지 기업들도 서둘러 비상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유럽 시장 침체는 또 다른 근심거리다. 전 세계적 금리 인상 기조로 글로벌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등에 비해 기준금리 인상이 늦게 이루어지면서 내년 하반기(7∼12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크다는 점도 변수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1년 이내 유럽에서 경기 침체가 발생할 확률이 32%로, 미국의 15%에 비해 크게 높게 내다봤다. 실제로 한국의 지난달 대유럽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0.7%가 줄어 3월(―1.9%) 이후 6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국내 대표 기업들 중에는 유럽 매출액 의존도가 매우 높은 기업들이 많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분석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기준으로 삼성SDI(41%),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37.2%), 한온시스템(34%), 기아(25.7%), LG화학(22.3%) 등은 20% 이상의 매출을 유럽에서 올렸다. 현대자동차(16.4%), 삼성전자(15.7%), LG전자(15.0%)도 유럽 매출이 적지 않은 기업들이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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