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길 막힌 카풀, 호주 가니 길이 열렸다

지민구 기자

입력 2022-09-21 03:00:00 수정 2022-09-21 10: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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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성장 ‘넷 포지티브’]
3부 공정한 혁신 성장의 길〈2〉규제 묶인 스타트업 해외로
한국선 불법… 승차공유 사업 포기
호주 “고용창출 혁신 서비스 환영”… 투자청 직원들, 미팅 주선 등 지원


서영우 전 풀러스 대표가 13일 노트북 화면 속 카풀 서비스 종료 공지 화면을 보고 있다. 서 전 대표가 사임한 뒤 풀러스는 2020년 11월 카풀 등 승차 공유 사업을 완전히 접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퍼지기 시작했던 2020년 2월. 카풀 스타트업 ‘풀러스’의 서영우 대표(43)는 호주 시드니로 향했다. 한국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2016년 5월 카풀 서비스를 시작한 풀러스는 2017년 11월 ‘출퇴근 시간 선택제’ 카풀 서비스를 선보였다. ‘출퇴근 때’에만 유상 카풀을 허용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의 법조항을 유연하게 해석했다. 오전 5∼10시, 오후 5시∼다음 날 오전 2시로 지정했던 출퇴근 시간을 풀고, 다양한 근무형태에 맞춰 낮 시간에도 카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갈등이 시작됐다. 택시업계는 “사실상 면허 없이 택시 사업을 하겠다는 얘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풀러스를 경찰에 고발했다. 2019년 3월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기구는 ‘출퇴근’ 시간을 평일 오전 7∼9시와 오후 6∼8시로 못 박았다. 되레 사업 환경이 더 나빠진 것이다. 서영우는 “카풀 수요가 많은 시간에 운행을 할 수 없어 사실상 사업을 접으란 소리처럼 들렸다”고 했다.

서영우는 전창근 최고운영책임자(41)와 함께 호주를 찾아 실마리를 풀었다. 호주는 한국보다 승차공유 서비스 도입이 늦었지만 한국과 달리 서비스가 안착하고 있었다. 시드니가 있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정부가 카풀 서비스 업체에 요구한 건 크게 두 가지뿐이었다. ‘기여금 잘 내라’, 그리고 ‘차 세울 곳을 미리 정해라’.

주 정부가 요구하는 기여금은 택시업계와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다. 2018년부터 승차공유 서비스 호출 1건당 1호주달러(약 930원)를 받아 5년간 기여금 2400억 원을 모아 택시업계를 돕기로 했다. 카풀 업체가 택시업계와 불필요한 소모전을 겪을 필요가 없었다.

그 밖에는 교통안전과 혼잡방지를 위해 지정된 장소에서 차량을 타고 내리라는 규제를 했다. 도로 상황을 감안해 승하차 지역을 당국과 미리 협의해서 정해놓으면 된다. 서영우는 “‘하지 말라는 것 외에는 다 해도 된다’는 말이 실감 났다”고 했다.

멀리 한국서 온 작은 스타트업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분위기도 인상적이었다. “호주에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혁신적인 서비스라면 무조건 환영한다”고 했다. 한국에선 좌절을 겪었지만 머나먼 땅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볼 수 있겠다고, 서영우와 전창근은 생각했다.




한국선 불법인 ‘카풀 셔틀’… 호주선 교통 빅데이터 내주며 지원



승합차에 경로 비슷한 여러명 합승… 새사업 도전했지만 법 장벽에 막혀
승차공유 허용한 호주서 재도전… 공무원이 기업미팅 잡고 출장 동행
시드니 도심서 차량 호출 실험도



2019년 대타협 기구의 카풀 이용 제한 결정으로 풀러스가 세운 사업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인 상황이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카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봤다. 서영우는 즉각 ‘피버팅’(사업 전환)을 준비했다. VCNC의 대형 승합차(카니발) 호출 서비스 ‘타다’가 인기를 끌 때였다.
○ 한국선 신사업 내놓자마자 ‘불법’ 낙인 고민
“대형 승합차에 경로가 비슷한 이용자 여러 명을 태우는 건 어떨까요? 타다의 확장형 서비스 같은 거죠.” 새로운 아이디어에 서영우는 반응했다. 중간 이동 경로가 비슷한 이용자 여러 명을 대형 승합차에 태우되 이용료를 낮추는 방식의 ‘온디맨드’(수요 맞춤형) 셔틀 서비스였다.

풀러스가 서비스 개발과 자체 테스트까지 마친 2019년 10월 28일. 검찰이 타다 운영사 VCNC의 박재욱 대표 등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택시 면허 없이 렌터카 등으로 손님을 태우는 사업이라고 판단했다. 같은 논리라면 타다를 여러 명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풀러스의 새 서비스도 불법이었다. 서영우와 전창근은 보이지 않는 단단한 장벽에 막혀 있다고 느꼈다.

“멘붕(정신 붕괴)에 빠졌죠. 카풀 대신 준비한 신사업이었는데 출시하자마자 불법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웠어요.” 전창근은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말했다.

대안이 필요했다. 해외로 시야를 넓혀 호주로 후보지를 좁혔다. 한국과 경제 규모가 비슷하면서 대도시 중심으로 다양한 교통 서비스 수요가 높다는 점을 고려했다. 정부가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서영우와 전창근은 주한 호주대사관 등에 이메일부터 썼다.



○ 호주에선 정부가 데이터 주고 갈등 풀어줘
대사관을 통해 풀러스를 소개받은 뉴사우스웨일스주 무역투자청은 서영우와 전창근을 여러 번 만났다. 호주 현지에서 사업할 의지가 있는지 등을 따져보며 검증 절차를 거쳤다. 풀러스의 카풀 서비스가 한국에서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문제 삼진 않았다. 오히려 100만 명이 가입한 카풀 서비스를 앞장서서 운영한 경험을 높이 샀다. 시드니의 교통 혼잡 문제를 해결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서비스를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타냈다.

주 정부는 풀러스가 개발한 온디맨드 셔틀 사업에 특히 관심을 보였다. 주 교통부는 풀러스가 시드니 지역 맞춤형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공공 빅데이터를 제공했다. 무역투자청은 풀러스가 접촉하길 원하는 현지 모빌리티 업체와의 비즈니스 미팅을 직접 주선해주고, 미팅 현장에도 동행했다.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법규나 문화도 전담 직원들이 일일이 알려줬다. ‘불법’ 논란과 씨름해야만 했던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다.

2020년 3월 18일엔 시드니 도심에서 풀러스 직원들이 직접 차량을 호출하면서 실험에 나섰다. 서비스 이름을 정하고 시드니 외곽에서 시범 서비스를 운영할 계획도 세웠다. 부푼 마음을 안고 일단 서울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 출장이 될 줄은 몰랐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하늘길이 모두 막혔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먼저 혁신 서비스를 일으킨 뒤 한국으로 ‘리턴’하려 했던 서영우의 꿈도 여기서 끝났다. 그 사이 국내에서의 사업 여건은 더욱 어려워졌고 서영우는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회사를 떠났다. 풀러스는 2020년 11월 카풀 서비스를 완전히 종료했다.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로 꿈을 접었지만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던 호주에서의 환대와 지원은 서영우에게 여전히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장벽이 가로막아도 시야를 넓히면 대안은 있더라고요. 한국에서 어려우면 해외 시장도 있고요. 지치지 않고 뚫어보려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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