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Case Study]골목 끝 식당서 만나는 탁트인 절벽… 공간 기획의 마법

김윤진 기자

입력 2022-06-29 03:00:00 수정 2022-06-29 03: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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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창신동 거리 변화 이끈 ‘글로우서울’의 노하우

서울 종로구 창신동 식당 ‘밀림’ 입구에서 보이는 절벽 풍경.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창업을 할 때 상권 입지 분석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공간에 최적화된 콘텐츠, 건축 디자인, 브랜드 관리 및 운영 등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 ‘글로우서울’은 지금까지 상업용 건물이라곤 거의 찾아보기 힘든 소외 지역에 매장을 열어 왔다. 상권이 없는 곳에 주로 진출한 것이다. 실제로 이 업체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계기는 2014년부터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청수당’, ‘온천집’, ‘살라댕방콕’ 등 식당과 카페를 연달아 성공시키고, 버려진 가옥들이 즐비하던 종로 한복판을 데이트 명소로 변신시키면서다. 그리고 익선동의 성공 사례를 발판으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대전 동구 소제동에 적산가옥 건축 양식을 살린 카페 거리를 조성해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최근에는 해발 120m에 있어 걸어 오르기조차 힘든 서울 종로구 창신동 절벽 마을을 젊은이들의 성지로 탈바꿈시켰다. 그렇다면 어떻게 글로우서울은 입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손대는 매장마다 지역의 랜드마크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일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346호(2022년 6월 1호)에 실린 글로우서울의 공간 기획 노하우를 요약해 소개한다.
○ 영감보다는 시스템에 의존하라
글로우서울의 공간 브랜딩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의 영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존한다. 수십∼수백 개에 달하는 프로젝트가 전체를 관통하는 의사결정의 기준, 일종의 알고리즘을 따라 움직인다는 의미다. 브랜드의 방향성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겨 이 알고리즘을 수정하지 않는 한 최대한 일관성 있게 주어진 알고리즘을 준수한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가령 글로우서울에서는 공간을 기획할 때 ‘고객의 시선을 따라가라’는 원칙을 고수한다. 모든 디자이너에게 전체 평면도를 그리기에 앞서 3D 툴로 입체적인 스케치를 먼저 할 것을 주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같은 접근은 통상적으로 평면도부터 그리기 시작하는 업계의 관행에 비춰보면 유별나지만 고객의 시선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고객이 특정 장소를 방문할 때 위에서 아래로 전체 공간을 내려다보고 조망하는 일은 거의 없다. 대개 한번에 모든 공간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이동하면서 시간 순서대로 달라지는 풍경을 마주한다. 따라서 고객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를 고민하지 않은 채 전체 도면부터 그려놓으면 개별 공간의 특성에 맞는 그림을 간과하기 쉽다.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글로우서울은 공간의 ‘순차적인 흐름’을 디자인의 주요 요소로 고려하고, 카메라 움직임을 따라가듯이 수직보다 종횡으로 어떤 장면이 보일지를 고민한다. 예를 들어, 창신동의 태국 식당 ‘밀림’이 골목 맨 끝자락에 자리 잡은 배경에도 폐쇄적인 골목 안쪽과 대비되는 개방적인 절벽의 광경이 펼쳐지는 순간의 극적인 반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 기억에 각인되는 경험을 선사해야
글로우서울은 ‘피크엔드 법칙(peak-end rule)’을 기반으로 매장의 중앙(피크)과 출구(엔드)에 고객을 사로잡을 만한 가장 핵심적인 무기를 배치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일본 샤부샤부 전문점 ‘온천집’에서는 노천탕(위쪽 사진)이 피크, 흰색 자갈밭이 펼쳐진 출입구가 엔드의 역할을 한다. 글로우서울 제공
글로우서울의 또 다른 원칙은 ‘고객의 기억에 각인되는’ 공간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업체는 첫인상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고객에게 마지막 인상을 남기는 ‘입구’ 혹은 ‘출구’에 힘을 준다. 실제로 글로우서울은 ‘피크엔드 법칙(peak-end rule)’을 기반으로 매장의 중앙과 출구에 고객을 사로잡을 만한 가장 핵심적인 무기를 배치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가 제시해 널리 알려진 피크엔드 법칙은 나중에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평가할 때 매 순간 느낀 만족감의 평균값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절정(peak)에서의 경험과 결말(end)에서의 경험의 평균을 토대로 어림짐작한다는 주장이다. 이 법칙을 토대로 글로우서울은 아무리 협소한 공간일지라도 매장 중앙에 반드시 눈길을 끄는 오브제를 심어 넣고, 모든 경험이 종결되는 퇴장의 순간에도 고객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을 만한 요소를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 샤부샤부 전문점 ‘온천집’ 입구에는 설원을 떠오르게 하는 흰색 자갈밭과 디딤돌을 펼쳐놓고, 중정에는 향나무, 대나무, 온양석 등으로 둘러싸인 노천 온천을 배치했다. 이때 노천탕이 피크, 출입구는 엔드의 역할을 한다.

경험을 중시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글로우서울은 손쉬운 ‘포토존(photo zone)’을 설계하는 것 역시 경계한다. 포토존에 대한 회사의 정의는 ‘적은 제작비로 손쉽게 사진을 건질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설악산 정상에서도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포스팅하지만 설악산 정상을 포토존이라 부르지 않는 까닭은 이곳이 사진만을 남기기 위해 의도된 지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상까지의 힘든 등반의 경험이 준 성취감과 쾌감, 아름다운 경치를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을 뿐이다. 이처럼 사진으로 박제하고 싶을 만큼 인상적인 경험에 초점을 맞출 뿐 경험이 배제된 사진용 공간을 만드는 것은 지양한다. 유정수 글로우서울 대표는 “포토존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 다르다는 의미”라면서 “현장에 머무르는 동안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고 싶고, 이 경험에서 감동을 얻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진도 찍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진 기자 truth3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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