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강인함 속 절제의 미학… 진주빛 머금은 ‘보트 테일’로 구현하다

류청희 자동차칼럼니스트

입력 2022-05-27 03:00:00 수정 2022-05-27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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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가 맞춤 제작하는 클래식카… 20세기 초 유행 ‘보트 선미 스타일’ 재현
지나친 치장 배제하고 간결한 면과 선 조합… 구리색 운모 혼합 ‘가장 미묘한 컬러’ 구현


롤스로이스가 5월 21일에 새롭게 공개한 보트 테일 시리즈의 두 번째 모델. 롤스로이스 제공

류청희 자동차칼럼니스트
21일 이탈리아 코모 호수 연안의 빌라 데스테에서 클래식카 디자인 경연 연례 행사인 콩코르소 델레간자(Concorso d‘Eleganza)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다양한 사연과 이력의 클래식카들이 아름다움을 뽐낸다. 행사의 핵심은 클래식카를 소유한 개인이 경쟁 부문에 출품해 디자인 전문가들의 품평을 통해 우수성을 가리는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애호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인 만큼, 자동차 업체들은 특별 제작한 차들을 공개해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한다.

올해 행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많은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은 롤스로이스가 새롭게 공개한 보트 테일(Boat Tail) 시리즈의 두 번째 모델이었다.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첫 번째 보트 테일 시리즈를 공개한 바 있는데, 이번에 공개된 것을 포함해 총 세 대를 만들 예정이다.

세 대의 보트 테일 시리즈는 차체 구조·기술·주제는 같지만 디자인은 모두 다르다. 이는 롤스로이스의 비스포크(맞춤제작) 프로그램의 정점인 코치빌드 방식으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첫 글에서 다뤘던 롤스로이스 스웹테일의 제작 방식과 같다. 즉 세 대 모두 서로 다른 의뢰인의 취향을 반영해 디자인과 꾸밈새를 다르게 만들어내는 단 하나뿐인 차다.

롤스로이스의 황금기였던 1920∼30년대에 유행했던 보트 테일 차체 스타일을 재현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들이 보트 테일 시리즈라 불리는 것은 차체가 보트 테일 스타일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보트 테일은 1920∼30년대에 유행했던 차체 스타일 중 하나다. 이름처럼 차체 뒤쪽을 보트의 선미를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만들었다.

위쪽은 평평한 곡면을 이루며 뻗어 나가지만, 옆 부분은 뒤로 갈수록 좁아져 끝이 뾰족해지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보트의 덱처럼 윗면이 넓고 평평하면서 아래쪽이 비스듬히 파인 형태로 된 것들도 있다. 끝이 뾰족한 것은 배투(Bateau), 윗면이 넓고 모서리가 둥근 것은 스키프(Skiff)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자동차의 차체 형태를 가리키는 말들 가운데 상당수는 마차 시절부터 이어져 왔다. 그러나 보트 테일은 마차와 상관없이 자동차에서만 쓰이는 이름이었다. 나아가 차체 전체 형태가 아니라 단지 뒷부분만을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점에서도 특이한 사례로 꼽힌다.

어떤 경우에건 보트 테일은 보트가 주는 속도감과 고급스러움을 재해석해 멋스럽게 표현하는 목적으로 스포티한 럭셔리 카에 주로 쓰였다. 특히 1920∼30년대 미국의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였던 어번이 아름다운 모습의 보트 테일 디자인으로 이름을 날렸고, 1960년대에 만들어진 알파 로메오 듀에토, 1970년대 뷰익 리비에라 등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보트 테일 디자인의 전성기는 코치빌딩이 활발했던 1920∼30년대다. 자동차 업체는 차가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기계적 부분을 만들고, 차체 전문 제작업체인 코치빌더들이 따로 차체를 만들어 얹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시기다. 그 무렵은 롤스로이스에도 황금기였기 때문에, 지난해부터 잇따라 선보이고 있는 보트 테일 시리즈는 롤스로이스의 황금기를 재현한다는 의미도 있다.

다른 보트 테일 시리즈처럼, 이번에 공개된 두 번째 모델도 의뢰인의 요청과 이야기를 디자인에 반영해 독특한 개성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이번 모델의 의뢰인은 진주 관련 사업을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어 아버지와 가문에 대한 경의를 담았다고 한다.

한눈에 보아도 롤스로이스임을 알 수 있는 판테온 그릴과 대담한 앞모습, 지나친 치장을 배제하고 오로지 간결한 면과 선을 조합해 존재감을 표현한 옆모습과 뒷모습은 앞서 선보인 첫 번째 보트 테일 시리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체 뒤쪽에 보트 갑판을 형상화한 패널을 달고 나비 날개처럼 좌우로 열리는 리어 덱 형태도 마찬가지다. 다만 차 전체를 관통하는 색과 꾸밈새의 주제는 뚜렷하게 다르다. 이번 모델은 진주에서 영감을 얻은 로즈 골드 및 코냑 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럭셔리 보트의 갑판에도 쓰이는 로열 월넛 비니어로 차체 뒤쪽을 덮었다.
차체색부터 진주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색감의 맞춤 페인트를 사용했다. 롤스로이스는 이 페인트가 역대 롤스로이스 비스포크 페인트 중 가장 복잡하고 미묘한 색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색을 만들기 위해 롤스로이스는 의뢰인의 개인 소장품에서 엄선한 네 개의 진주 조개껍질을 참고했다고 한다. 이에 오이스터와 부드러운 장미색을 바탕으로 흰색과 구리색 운모 조각을 혼합한 페인트가 만들어졌다. 이 페인트는 빛에 따라 오묘하게 색감이 변한다.

이번에는 보닛도 특별히 개발한 코냑 색으로 칠했다. 페인트에 미세한 구리색 및 금색 운모 조각을 혼합했고 표면에는 크리스털 및 아이스 무광 클리어코트를 입혀 따뜻하면서도 깊이 있는 색감을 만들어냈다.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그릴 위쪽의 ‘환희의 여신상’ 역시 로즈 골드 색으로 되어 있고, 차체 뒤쪽 보트 테일 아랫부분 역시 로즈 골드 테크니컬 파이버 소재로 만들었다.

차체 뒤쪽에는 호스팅 스위트가 마련되어 있다.
첫 번째 보트 테일 시리즈처럼 리어 덱에는 좌우로 열리는 패널 아래에 와인 셀러와 각종 식기류를 보관할 수 있는 호스팅 스위트(Hosting suite)가 마련되어 있다. 이 부분의 덮개 역할을 하는 부분은 로열 월넛 비니어에 로즈 골드 색으로 도금한 핀 스트라이프 패턴이 차체 길이 방향으로 들어가 있다. 이 로열 월넛 비니어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색이 변해 멋을 더한다.

실내에도 차체와 통일감을 주는 디자인 요소가 폭넓게 반영되어 있다.
실내에도 가죽 내장재는 코냑과 오이스터 색을, 원목 장식에는 로열 월넛 비니어 소재를 주로 썼고, 곳곳에 로즈 골드와 진주 자개 장식 요소를 더했다. 특히 가죽 내장재는 진주와 같은 광택을 내도록 특수하게 마감 처리했다. 차체 외부에서 시각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로열 월넛 비니어는 실내 센터 터널에서도 같은 패턴으로 쓰여, 실내외에 디자인의 통일감을 준다. 아울러 센터페시아에 설치한 시계는 의뢰인이 소장하고 있던 진주 자개로 만들었고, 계기판 다이얼과 컨트롤러에도 같은 소재를 썼다. 이는 차와 소유주, 가족의 유산 사이의 관계를 상징하는 시각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 설계와 생산 방식의 변화로 고전적 의미의 코치빌딩은 이제 거의 명맥이 끊어진 상태다. 롤스로이스는 현대화된 설계와 생산 방식을 사용하면서도 코치빌딩을 구현할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자동차 업체 중 하나다.

보트 테일 시리즈와 같은 특별한 모델들을 통해, 롤스로이스는 제한된 의미의 비스포크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진정한 럭셔리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것’임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류청희 자동차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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