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최저임금도 못받다 실직, 은행 대출 높은 벽… 20대에 파산 멍에
박상준 기자
입력 2021-10-20 03:00 수정 2021-10-20 05:08
[20대 파산 역대 최대]
학자금에 부친 수술비까지 대출… 이중상환 허덕이다 파산 신청
모친 “집 재계약 돈 필요” 요구에 연이율 24% 대부업체서 돈 빌려
신용등급 낮아 고금리 대출 불가피… 금융지식 부족, 사기범죄에도 노출
수도권의 한 전문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권예슬(가명·28) 씨는 5년 전 전공을 살려 작은 회사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취업했다. 하지만 취직한 지 1년 만에 회사의 경영난으로 해고 통지를 받았다.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로 한 권 씨는 제2금융권에서 생활비 대출을 받은 뒤 서울에서 2년간 공부를 했다. 2년 연속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권 씨는 지난해 경북 지역의 소규모 회사에 다시 취직해 회사의 온라인 홈페이지와 상담 창구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코로나19로 회사가 경영난을 맞으면서 일을 그만둬야 했다. 부모님이 사는 집으로 들어와 구직 활동을 하던 중 우울증과 불안증세가 찾아온 권 씨는 가족들의 부양을 받으며 올해 초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취업은 물론 실직 등 고용시장의 불안정성이 더해지면서 벼랑 끝에 몰린 20대 청년들의 파산 신청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질병 등으로 급전이 필요하거나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상황에서 대부업체 등에서 돈을 빌렸다 불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청년들도 적지 않다. 인천에 사는 안상혁(가명·26) 씨는 지난해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한 20대 청년 884명 중 한 명이다. 이혼가정에서 자란 안 씨는 특성화고를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6년 전 수도권의 한 전문대 기계과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 모아놓은 돈으로는 원룸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 2000만 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용접공이 돼 학자금 대출을 갚겠다는 계획은 암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수술을 받게 되면서 무너졌다.
신용등급이 낮았던 그는 페이스북에서 무직자에게 소액대출을 해준다는 광고를 보고 대부업체에서 500만 원을 빌려 아버지 수술비를 댔다. 불어나는 이자를 갚지 못한 안 씨는 지난해 9월 파산 선고를 받았다.
경기도의 한 도시에 거주하는 김은혜(가명·23) 씨. 그는 어머니 동거남의 성폭행 등을 견디다 못해 고3 때 집을 나왔다. 네일아트숍에 취직한 그는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한 채 월 80만 원의 임금을 받으며 생활하다가 19세에 처음으로 120만 원의 신용카드 빚을 졌다. 이후 2019년 전자담배가게에 취직해 신용카드 빚을 갚던 김 씨는 지난해 3월 어머니로부터 “집 재계약을 해야 하니 돈을 보내 달라”는 전화를 받고 거절하지 못했다.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는 빌릴 수 있는 돈이 적어 연이율 24%로 대부업체에서도 돈을 빌린 김 씨는 총 1500만 원을 어머니에게 보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가게 사장으로부터 “코로나19로 유지가 힘들고 손님도 없다. 그만둬 달라”는 연락을 받았고 결국 올 9월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2017년 둘째 아이 병원비가 필요했던 그는 휴대전화를 개통한 뒤 두 달 동안 요금을 내주면 기기를 반납한 뒤 100만 원을 주겠다는 말에 휴대전화 3개를 개통했다. 100만 원을 주겠다던 업체는 연락이 없었고 정 씨 빚은 어느새 2000만 원으로 늘어났다. 이달 12일 파산 선고를 받은 정 씨에게는 아직도 채권 추심 업체에서 “집에 찾아가 재산 조사를 하겠다”는 문자 메시지가 온다. 현재 정 씨는 마스크팩을 접어 포장지에 넣으면 개당 1.4원을 받는 부업으로 매달 20만∼30만 원을 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학자금에 부친 수술비까지 대출… 이중상환 허덕이다 파산 신청
모친 “집 재계약 돈 필요” 요구에 연이율 24% 대부업체서 돈 빌려
신용등급 낮아 고금리 대출 불가피… 금융지식 부족, 사기범죄에도 노출
수도권의 한 전문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권예슬(가명·28) 씨는 5년 전 전공을 살려 작은 회사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취업했다. 하지만 취직한 지 1년 만에 회사의 경영난으로 해고 통지를 받았다.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로 한 권 씨는 제2금융권에서 생활비 대출을 받은 뒤 서울에서 2년간 공부를 했다. 2년 연속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권 씨는 지난해 경북 지역의 소규모 회사에 다시 취직해 회사의 온라인 홈페이지와 상담 창구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코로나19로 회사가 경영난을 맞으면서 일을 그만둬야 했다. 부모님이 사는 집으로 들어와 구직 활동을 하던 중 우울증과 불안증세가 찾아온 권 씨는 가족들의 부양을 받으며 올해 초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취업은 물론 실직 등 고용시장의 불안정성이 더해지면서 벼랑 끝에 몰린 20대 청년들의 파산 신청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 부모 질병에 대부업체에서 수술비 대출
신용등급이 낮았던 그는 페이스북에서 무직자에게 소액대출을 해준다는 광고를 보고 대부업체에서 500만 원을 빌려 아버지 수술비를 댔다. 불어나는 이자를 갚지 못한 안 씨는 지난해 9월 파산 선고를 받았다.
경기도의 한 도시에 거주하는 김은혜(가명·23) 씨. 그는 어머니 동거남의 성폭행 등을 견디다 못해 고3 때 집을 나왔다. 네일아트숍에 취직한 그는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한 채 월 80만 원의 임금을 받으며 생활하다가 19세에 처음으로 120만 원의 신용카드 빚을 졌다. 이후 2019년 전자담배가게에 취직해 신용카드 빚을 갚던 김 씨는 지난해 3월 어머니로부터 “집 재계약을 해야 하니 돈을 보내 달라”는 전화를 받고 거절하지 못했다.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는 빌릴 수 있는 돈이 적어 연이율 24%로 대부업체에서도 돈을 빌린 김 씨는 총 1500만 원을 어머니에게 보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가게 사장으로부터 “코로나19로 유지가 힘들고 손님도 없다. 그만둬 달라”는 연락을 받았고 결국 올 9월 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 사기 등 범죄피해도 파산으로 이어져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미혼모 정가은(가명·25) 씨에게 채권 추심업체에서 보내온 문자메시지 캡처. 정가은 씨 제공
인천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정가은(가명·25) 씨는 동거남의 생활비로 시작된 채무와 사기 등 범죄 피해로 인해 이달 12일 파산 선고를 받은 경우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동거남 A 씨(26)는 7년 전 정 씨 이름으로 대부업체에서 3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식당에서 서빙일을 하며 혼자 돈을 벌던 정 씨는 A 씨가 술을 마시고 아이를 때리는 것이 두려워 A 씨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2017년 둘째 아이 병원비가 필요했던 그는 휴대전화를 개통한 뒤 두 달 동안 요금을 내주면 기기를 반납한 뒤 100만 원을 주겠다는 말에 휴대전화 3개를 개통했다. 100만 원을 주겠다던 업체는 연락이 없었고 정 씨 빚은 어느새 2000만 원으로 늘어났다. 이달 12일 파산 선고를 받은 정 씨에게는 아직도 채권 추심 업체에서 “집에 찾아가 재산 조사를 하겠다”는 문자 메시지가 온다. 현재 정 씨는 마스크팩을 접어 포장지에 넣으면 개당 1.4원을 받는 부업으로 매달 20만∼30만 원을 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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