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매출 1조 사업도 “성장성 떨어진다” 정리… 포트폴리오 개편 박차

서동일 기자 , 홍석호 기자

입력 2021-07-27 03:00 수정 2021-07-2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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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M&A 생존게임]M&A로 활로 찾는 기업들
“변해야 산다” 이종사업 품기 경쟁
“M&A, 기업변화 앞당길 급행열차”



SK㈜는 지난달 미국 수소기업 모놀리스 지분 및 이사회 의석을 확보하는 투자에 성공했다. 수소에너지 분야 원천 기술을 확보한 모놀리스의 지분을 탐내는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한화솔루션도 그중 한 곳이었다. 한화솔루션은 3월 이사회 의결을 통해 모놀리스 지분 투자 협상 참여를 결의하는 등 막판까지 SK㈜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올해 상반기(1∼6월) 수차례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출장에 글로벌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CS) 고위 관계자가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CS는 두산인프라코어, 대한항공 기내판매사업 매각 등 수많은 기업 거래에 참여한 투자은행이다. 투자은행과 동행해 SK텔레콤, SK하이닉스가 투자할 인수합병(M&A) 기업 후보군을 물색한 것이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M&A에 팔을 걷어붙이며 ‘업(業)의 재정의’에 나서고 있다. 과거에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조 단위의 과감한 기업 인수를 통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제2, 제3의 성장사업을 찾기 위해 뛰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지난해 M&A 규모를 이미 넘어섰고, 연간 역대 최대인 32조 원+알파(α) 규모의 M&A가 예상되는 이유다.

기존 사업 및 자산을 팔아 치우고 포트폴리오 개편에 속도를 내는 기업도 늘고 있다. 매년 1조 원 규모 매출을 거두고 있지만 미래 성장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철강 트레이딩 사업을 종료한 SK네트웍스, 서울 성동구 성수동 본사 건물 매각을 검토하는 신세계그룹, 모바일 사업에서 철수한 LG전자 등이 대표적이다. SK루브리컨츠 지분 40%를 매각해 1조1000억 원의 실탄을 확보한 SK이노베이션은 추가로 자회사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모두 경영 환경 변화에 따른 투자 재원 마련이 이유다.

LG전자는 26년을 이어온 모바일 사업 철수를 결정한 뒤 해외 기업에 매각 의사를 타진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24개 분기 적자를 이어왔지만 지난해 총매출 1조3850억 원에 한국, 북미 시장 점유율 3위인 사업이어서 인수자가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결국 매각이 아닌 철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재계 관계자는 “LG 내부적으로 당장 높은 매출, 영업이익을 거두고 있어도 성장 가능성이 없다면 시장에서 제대로 된 가치평가를 받기 힘들다는 깨달음이 컸다”고 말했다. 올해 LG는 미국 실리콘밸리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중심으로 미국 메타버스 업체 웨이브, 이스라엘 산업보안 솔루션 업체 클라로티 등에 투자하며 변화 속도를 높이는 중이다.

에너지, 유통, 건설이 주력인 GS는 최근 사업자 거래정보 관리 업체 ㈜한국신용데이터, D2C(소비자 직접 판매) 업체 ㈜비마이프렌즈에 잇따라 투자했다. GS 지주사가 국내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한 것은 처음이다. GS칼텍스는 카카오모빌리티에 300억 원을 투자했다.


기업 M&A 경쟁에 속도를 붙인 촉매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다. 지난해 초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자 기업들은 경기 침체 장기화에 대비해 고정자산 매각 등을 통한 유동성 확보 및 재무구조 개편에 나섰다. 여기에 한계 기업들이 쓰러지고, 주요 기업들의 미래 성장 가능성이 작은 보유자산이나 사업부문이 함께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전방위적인 온라인·디지털화도 변화에 대한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정부의 경기부양책, 각국 중앙은행의 확장적 통화정책 등으로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진 것도 M&A 거래 급증의 주요 이유로 꼽힌다. 미 폭스비즈니스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상반기 미국 기업 M&A 규모(1조7400억 달러)를 보도하며 금융권 저금리와 기업 실적 호조, 활발한 투자 유치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재계에서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빠른 속도로 신사업 분야에서 투자를 결정하고 글로벌 선두권에 오르지 못하면 생존을 담보하기 어려운 시기가 왔다는 공감대가 마련됐다.

국내 10대 그룹에서 신사업 투자를 총괄하는 고위 임원은 “사실상 모든 기업이 원천 기술과 양질의 인력, 시너지를 낼 이종사업을 찾기 위해 인수합병 대상을 찾고 있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기업의 업(業)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판단을 바탕으로 기업 변화 속도를 높일 수 있는 M&A 급행열차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과거엔 외환위기 같은 큰 위기가 아니면 기업이 어려워도 오너 숙원 사업이라며 붙들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기업 인수를 탐탁잖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고 전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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