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발전의 진화… 지상 타워형 시대 가고 공중에서 연 날리듯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1-05-10 03:00 수정 2021-05-10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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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기연구원 국내 첫 시연

4일 경남 창원시 ‘마산해양신도시’ 조성부지 상공에 붉은색 패러글라이더 형태의 연이 두둥실 떠올랐다. 연은 바닷바람을 타고 지상 100m까지 떠오르더니 ‘8자’ 모양으로 빙글빙글 돌며 실을 잡아당겼다. 실 끝에 연결된 얼레가 감겼다 풀렸다를 반복하자 얼레에 연결된 발전기가 돌아가며 전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론으로만 제시되던 ‘공중 풍력발전’ 기술이 국내에서 첫 시연에 성공한 순간이다.

한국전기연구원은 이날 한국전력공사, 창원시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5kW(킬로와트)급 공중 풍력발전기 시제품을 공개했다. 이주훈 전기연 에너지시스템 제어기술팀장은 “바람은 땅에서 가까운 곳보다 높은 고도에서 더 강하고 고르게 분다”며 “공중 풍력발전은 이런 바람의 특성을 이용해 소규모부터 대규모 발전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고고도 풍력발전 활용 땐 1800TW 전력 생산


공중 풍력발전은 고도가 높을수록 바람이 세지는 자연 현상을 적극 활용한 친환경 전력 생산 방식이다. 바람은 고도 80m에서 보통 초속 4.3m로 불지만 고도가 400m로 올라가면 초속 5.3m로 빨라진다. 규칙적으로 부는 바람의 풍속이 올라가면 그만큼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는 2013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지구 전역에서 고고도 풍력발전을 활용하면 이론적으로 1800TW(테라와트·1TW는 1조 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전 세계 에너지 수요의 90배에 이르는 수치다.

공중 풍력발전은 타워에 거대한 날개를 붙여 돌리는 현재의 지상풍력과 해상풍력 발전의 한계를 극복하는 노력에서 탄생했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으로 풍력발전 설치량이 급격히 늘었지만 전력 생산량은 잠재 생산량 400TW의 0.2%인 743GW(기가와트·1GW는 10억 W)에 머물고 있다. 지상풍력은 사람이 적게 살고 바람이 강한 지역에, 해상풍력의 경우 수심이 깊은 곳에 설치해야 하는 제약이 있어 비용이 늘고 있다. 반면 공중 풍력발전은 이 같은 제약에서 자유롭다. 바람이 잘 불지 않는 지역이라도 고도가 올라가면 바람이 고르게 불기 때문이다. 연의 크기를 조절하거나 고도를 조절하면 바람 상황에 따라 전력을 최대한 뽑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이 팀장은 “바람이 평상시보다 강하게 불면 운영 고도를 낮추고 연의 크기를 바꿔 날리면 된다”고 말했다. 전기연은 마을버스 옆넓이만 한 19m² 크기로 연을 만들어 고도 500∼1000m를 오르내리며 20kW의 전력을 생산하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유럽은 공중 풍력발전 기술에 가장 앞서 있다. 유럽 각국은 타워형 발전기의 교체 주기가 다가오자 이를 공중 풍력발전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네덜란드 기업 ‘앰픽스 파워’는 네덜란드 정부와 유럽연합(EU) 자금 지원을 받아 연 대신 글라이더를 날려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길이 12m의 글라이더를 띄워 1MW(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하는 게 목표다.

○물레방아형·날개 없는 풍력 발전기도 속속
스페인 스타트업 ‘보텍스 블레이드리스’는 날개가 없이 바람에 의한 진동으로 발전하는 막대형 풍력발전기를 선보였다. 보텍스 블레이드리스 제공
공중 풍력발전 외에 기존 풍력발전을 대체할 새로운 기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영국 ‘알파311’은 가로등이나 전봇대에 설치하는 물레방아 형태의 풍력발전기를 개발했다. 길이 68cm인 이 풍력발전기 10개를 가로등에 설치하면 영국의 가정집 23곳이 1년 내내 쓸 수 있을 충분한 양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스페인 스타트업 ‘보텍스 블레이드리스’는 아예 날개가 없는 막대형 풍력발전기를 3월 선보였다. 2.75m의 막대가 바람을 맞으면 진동을 일으켜 전기를 생산하는 원리다. 기존 풍력발전기보다 효율은 떨어져도 촘촘히 설치 가능하고 소음도 없다. 보텍스 블레이드리스는 “날개가 새를 해치는 일도 막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

하지만 신기술 도입에는 경제성을 증명해야 하는 숙제가 따른다. 글라이더 프로펠러로 전기를 생산하고 지상에 보내는 공중풍력 업체 ‘마카니 파워’는 2013년 구글에 인수돼 화제가 됐으나 지난해 9월 사업을 접었다. 폐업 후 공개된 보고서에 따르면 최적 속도를 유지하기 어려워 기존 터빈의 10분의 1밖에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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