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물 주면 사라지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나왔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1-05-03 03:00 수정 2021-05-03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저절로 썩는 ‘생분해성 플라스틱’… 온도 조건 등 까다로워 활용도 낮아
최근 물만으로 상온서 사라지거나… 효소로 빠르게 분해하는 기술 개발
2025년 관련 시장 2배로 성장 예상… 상용화 위해 전용매립장 만들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플라스틱 사용량이 크게 늘었다. 대부분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지는 마스크는 땅속에 묻어도 썩지 않아 새로운 오염원으로 우려를 낳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3월 한국인은 2.3일당 마스크 1개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버려지는 폐마스크가 2000만 개라고 보면 연간 73억 개 이상이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이에 과학자들은 막대한 폐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대안을 찾고 있다. 특히 썩거나 녹아 없어져 친환경적인 이른바 ‘생분해성 플라스틱’에 주목하고 있다.

○까다로운 분해조건이 활용에 제약

플라스틱은 땅에 묻어도 수백 년간 썩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남아있는 게 보통이다. 반면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땅에 묻으면 썩어서 사라진다. 원료의 특성 덕분이다. 생분해성 플라스틱 재료로는 짚, 톱밥, 식물성 기름 등이 있는데 주로 옥수수 전분에서 유래한 PLA란 물질이 쓰인다. 뜨거운 음식을 담거나 아기가 물거나 빨아도 환경호르몬은 물론이고 중금속 등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아 안전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공기가 잘 통해 기존 플라스틱 비닐보다 과일이나 야채가 더 신선하게 유지된다는 장점도 있다.

PLA를 땅에 묻으면 식물의 자양분이 되는 퇴비처럼 자연스럽게 썩는다. 하지만 플라스틱이 썩으려면 온도 58도 이상, 수분 70% 이상의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조건을 갖춰야 반년에 걸쳐 90% 이상 분해된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쓰는 제품들이 크게 늘지 않는 이유는 이런 처리 조건을 만족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설프게 썩으면 미세플라스틱을 만드는 원인이 되거나 재활용이 가능한 다른 플라스틱을 오염시키는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

○효소 이용 퇴비화 촉진 기술 개발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가 개발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왼쪽 사진)은 땅에 묻고 따뜻한 물만 부어주면 상온에서도 일주일 만에 80%가 사라진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제공
최근에는 좀더 쉬운 조건에 분해가 이뤄져 기존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쉬팅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재료과학 및 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물만 있으면 상온에서 분해되는 플라스틱을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지난달 22일 공개했다.

쉬팅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플라스틱은 땅에 묻고 따뜻한 물만 부어주면 상온에서도 일주일 만에 80%가 사라진다. 물의 온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분해 속도는 빠르다. 온도를 50도까지 올리면 6일 이내 완벽한 분해도 가능하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플라스틱 제작 단계에서 PLA를 잡아먹는 효소를 넣었다. 효소가 따뜻한 물에 노출되면 PLA의 단단한 구조를 풀어줘 분해가 더욱 빨리 일어나게 하는 원리다.

알랭 마르티 프랑스 국립응용과학원 연구원팀은 플라스틱 페트병 하나를 10시간 안에 90% 이상 분해하는 획기적인 효소를 발견해 지난해 4월 네이처에 공개했다.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효소를 이용해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방법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플라스틱 병 하나를 분해하는 데 며칠씩 소요되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이 발견된 효소는 현재까지 보고된 어떤 효소보다 플라스틱 분해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도 최근 문제가 심각한 폐마스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올해 3월 황성연 한국화학연구원 바이오화학소재연구단장팀은 한 달 안에 100% 자연 분해되면서도 습기에 강하고 재사용이 가능한 마스크용 생분해 플라스틱 필터를 개발했다.

○2025년 10조 원 규모 시장으로 성장
매년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플라스틱은 3억5900만 t으로 이 중 절반인 1억5000만∼2억 t이 쓰레기 매립지나 자연에 버려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은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해결과 탄소 저감을 위한 대안으로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선택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기존의 플라스틱 일회용 식기와 그릇, 비닐 포장재, 농업용 비닐 등을 대체하고 있다. 중국도 올해부터 그릇이나 식기, 비닐봉지 등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360i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생분해성 플라스틱 시장은 지난해 51억 달러(약 5조6814억 원)에서 2025년에는 두 배인 약 89억 달러(약 9조9146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외 석유화학기업들도 생분해성 플라스틱 생산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탈리아의 노바몬트, 미국 다이머같이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도 있다. 국내에서는 CJ제일제당과 LG화학, SK종합화학 등이 생분해성 플라스틱 시장에 뛰어들었다. 황 단장은 “국내에 아직까지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매립할 수 있는 전용매립장이 없어 시중에 유통된 생분해성 플라스틱 중 70% 이상이 소각되고 있다”며 “소비자에게만 재활용이나 처리를 맡기지 말고 플라스틱 생산자들이 전용매립장을 만들도록 하는 등 정책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