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숍 꼭 직설적일 필요있나… 은유적 디자인일때 더 통한다”

손택균 기자

입력 2021-01-27 03:00 수정 2021-01-27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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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폴리 꼬또’ 기획한 전범진 소장
비공개 사유지 정원으로 개조
벽체-소품에 업체 정보 감춰두고
방문자가 주인공된 느낌 갖게해


공간 기획을 총괄한 전범진 스튜디오베이스 소장은 “브랜드숍 디자인은 기업이 전하고 싶은 이미지와 함께 방문객이 즐기길 원하는 행위에도 주목해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서울 강남구 논현동 주택가의 완만한 오르막길. 붉은 벽돌을 담요처럼 덮어 두른 듯한 외관의 2층 건물 입구에 한 식당 팻말이 조그맣게 걸려 있다. 메뉴는 카레와 라면. 근방 여느 식당과 비슷한 가격에 맛과 양이 무난하다. 23일 점심 나절 1시간여 동안 이곳에서 식사를 마친 손님들 중 들어왔던 출입구로 곧바로 나간 사람은 드물었다. 약속한 듯 모두들 식당 안쪽 통로 계단을 따라 옥외 정원으로 올라가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후 천천히 흩어졌다.

야트막한 건물 옥상정원을 깔끔하게 단장해 열어놓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즐거워한다. 차례를 기다려 벽돌계단 둔덕을 올라 벤치에 앉아보거나, 영국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이 디자인한 팽이 모양 의자에 몸을 기대 돌려보고, 차양에 일렬로 달린 도기 풍경(風磬)을 건드리며 사진을 찍는다.

‘롤리폴리 꼬또(rolypoly coto·오뚝이 식당)’라는 상호를 내건 이곳은 식품기업 오뚜기의 브랜드숍이다. 공간 기획을 총괄한 전범진 스튜디오베이스 소장(51)은 “처음 받은 의뢰는 260m² 면적의 길가 식당뿐이었다. 안쪽 유휴 공간을 리모델링해 정원을 포함한 총 1650m² 규모의 공간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내가 역으로 제안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롤리폴리 꼬또’는 원래 있던 공간의 쓰임을 명료하게 정돈하는 작업의 효용을 실감하게 한다. ⓒ박우진
“본질에 솔직하게 충실한, 음식에만 집중하는 직설적인 공간에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 다시 말해 기업의 미래 고객은 본질보다 즉물적 현상에 몰두하는 경향을 뚜렷이 보인다. 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은유적 이미지를 체험하는 여유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비공개 사유지였던 공간을 정원으로 개조하고 방문 체험의 스토리를 구성했다. 업체를 드러내는 정보는 벽체와 시설물의 색채, 소품의 조형에 은근히 감춰두고 방문자 개개인이 공간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갖도록 유도했다. 동선(動線)이 겹치지 않도록 이동 공간에 여유를 두면서 손과 시선이 닿는 모든 부분의 디테일에 공을 들였다. 시공, 조경은 물론 가구, 조명, 식기 선정 등 음식 관련 영역을 제외한 모든 작업을 전 소장이 도맡았다. 공간 이름 고안과 팻말 손글씨 작업, 매장에 흐르는 음악 리스트 선정도 직접 했다.

“회사명의 ‘베이스(vase)’는 내가 하는 일이 꽃병 빚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골랐던 단어다. 공간디자인은 스스로 주인공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작업이다. 주인공인 내용물이 한층 돋보이도록 물러나 있으면서 단단히 지지해줘야 한다. 그 물러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디자인한 공간의 흐름과 단절된 허술함을 한 톨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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