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몰리고 내쫓는 ‘도미노 전세난’… 새 임대차법 시행 6개월

김호경 기자 , 이새샘 기자

입력 2021-01-13 03:00:00 수정 2021-01-13 09: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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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실거주”에 세입자 연쇄이동… 갈곳 못찾아 5억 뛴 전세로 이사
“들어가 살겠다” 세입자 내보낸뒤 새로 전세 올려받는 편법도 등장


찾아보기 힘든 전세 임대차 2법이 시행된 지 반년이 되어 가지만 전셋값이 연쇄적으로 오르는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12일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 앞에서 행인이 매물 가격을 들여다보고 있다. 전세 매물은 단 한 건이고 나머지는 월세나 매매 매물이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사는 A 씨(38)는 한겨울인데도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가 살던 아파트는 다주택자인 집주인이 보유세 부담을 줄이려고 딸에게 증여한 집이었다. 이번에 딸이 실거주 요건을 채우려고 입주하는 과정에서 A 씨가 나가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A 씨는 2년 전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전세를 끼고 사둔 아파트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A 씨 역시 세입자 B 씨를 내보내야 했고 B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최근 5억 원 이상 오른 전셋집으로 이사해야 했다.

동아일보가 12일 임대차 2법(계약갱신요구권과 전월세상한제) 시행 6개월을 앞두고 전월세시장을 긴급 점검한 결과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전셋값 ‘도미노 인상’이 심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주인이 세입자의 보증금을 법적 상한선(5%)까지 높이면 이 세입자가 자신이 전세를 끼고 사둔 다른 주택 세입자의 보증금을 올리면서 전셋값이 연쇄적으로 뛰는 구조다.

법을 악용하는 집주인들의 편법 인상 시도까지 가세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보증금 4억3000만 원을 내고 전세로 살던 C 씨는 지난해 12월 보증금을 7억 원으로 올려 달라는 집주인의 연락을 받았다.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려 했지만 집주인은 자신이 들어와 살겠다고 했다. 결국 집을 비워줬지만 최근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해 살던 집이 전세 매물로 나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집주인이 거짓말로 직접 입주하겠다고 한 뒤 세입자를 내보낸 것이다. 그는 “세입자가 이전에 살던 집의 확정일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가 있지만 이사까지 한 마당에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까지 가야 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7∼12월) 서울 전세가격은 10.8% 올랐다. 이 같은 상승률은 1986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임대차계약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1989년 당시의 상승률(10.3%)을 웃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무리한 규제로 매물이 잠길 뿐 아니라 편법 거래까지 횡행하면서 갈 곳 없는 무주택 실수요자의 피해만 커진다”고 지적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이새샘 기자

“직접 살겠다” 엄포로 보증금 인상… 꼼수 부추기는 중개업자도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황모 씨(39)는 최근 집주인 요구로 월세를 75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올려줬다. 집주인은 자신이 세 들어 사는 아파트 소유주가 월세를 올리는 바람에 자기도 어쩔 수 없이 월세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되레 사정했다. 황 씨는 “다행히 9개월 정도만 버티면 될 거 같아 월세를 더 내기로 했지만 아이 둘 교육비에 월세까지 내려니 버거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지난해 7월 말 임대차2법이 시행된 지 반 년이 되어 가지만 전세시장은 여전히 ‘혼돈’ 상태다. 세를 주고 자신은 다른 전셋집에 사는 집주인들이 직접 입주하거나 보증금을 올리면서 그 충격이 세입자의 세입자에게까지 연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종적으로 무주택 세입자에게 부담이 쏠리고 있다.

○ 집주인-1주택 세입자-무주택 세입자로 부담 전가

서울 양천구 목동 아파트를 산 김모 씨(39)는 지난해 11월 세입자를 내보냈다. 세입자는 재계약을 간절히 원했지만 김 씨는 “직접 살겠다”며 거절했다. 김 씨는 당초 목동 아파트 재건축이 본격화할 때까지 전세로 돌릴 계획이었지만 정부가 2년 이상 거주한 집주인에게만 재건축 조합원 자격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자 미리 세입자를 내보내고 입주하기로 했다. 이 세입자는 전세가격이 오른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실거주 의무 강화와 임대차 2법 시행이 맞물리면서 전세를 줬던 집에 들어와 살겠다는 집주인이 늘었다. 전셋집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전셋집에서 쫓겨난 집주인들이 자신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세입자를 내보내는 ‘도미노 전세난’이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전세시장의 맨 끝단에 있는 무주택 세입자들이 도심에서 외곽으로 내몰리거나 늘어난 월세 부담을 고스란히 감수하고 있는 셈이다.

○ 법 악용하는 집주인, 중개업자 농간에 시장 혼란



임대차법은 학군이 좋고 교통이 편리해 거주 수요가 많지만 공급난이 극심한 지역에서는 무력화되기도 한다. 집주인의 직접 거주는 세입자의 계약갱신 요구를 합법적으로 거절할 수 있는 사유다. 하지만 실제 거주 계획이 없으면서 보증금을 더 올려 받기 위해 집주인들이 “직접 살겠다”고 엄포를 놓더라도 계속 거주를 희망하는 세입자는 이런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권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이모 씨(52)는 재계약을 앞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자신이 직접 거주할 수도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면서 재계약을 원하면 보증금 조로 3억 원을 더 달라고 했다. 이는 법정 상한(5%)을 초과한 금액이다. 이 씨로선 자녀 교육 때문에 다른 동네로 이사 갈 수도 없고 그만한 목돈을 마련하기도 어려웠다. 사정을 봐달라는 이 씨의 호소에 집주인은 보증금을 그대로 두는 대신 월세 200만 원을 추가로 내라고 했다.

서울 송파구 신축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강모 씨(73)는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5억 원 올려주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그는 인근에 재건축 아파트를 갖고 있지만 해당 아파트는 이미 철거됐다. 입주까지 최소 3년이 남아 그만큼 전세살이를 더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에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하면 시세만큼 보증금을 올려 받지 못한 집주인이 2년 뒤 자신을 내보내거나, 한꺼번에 보증금을 올려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먼저 전세금을 올려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일부 공인중개사는 집주인의 ‘꼼수’를 부추기고 있다. 거래를 빨리 성사시키기 위해 임대차시장에서 갑(甲)이 된 집주인 편을 들어 전셋값 인상을 부채질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모 씨(36)는 지난해 말 전세 보증금을 올려주지 않으면 ‘딸을 입주시키겠다’는 집주인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는 “공인중개사가 나서 중재해주길 기대했지만 오히려 ‘조건이 안 맞으면 다른 곳을 알아보라’며 집주인을 거들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2년 뒤가 더 문제”

문제는 전세난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당분간 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낮은 데다 3기 신도시 대기수요, 입주물량 감소 등 전셋값 상승 요인이 널려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올해 수도권뿐만 아니라 울산, 광주, 세종 등 지방 대도시에서도 입주물량이 줄어 전셋값이 전국적으로 더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음 달부터 수도권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아파트에 직접 거주 의무가 생긴다. 이 점도 전셋값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다음 달 19일 이후 분상제 아파트를 분양받은 당첨자들은 2∼5년 계속 거주해야 한다. 그간 신축 아파트가 준공되면 전세물량이 쏟아지면서 인근 전셋값을 끌어내렸지만 이런 효과가 원천 차단되는 셈이다. 일반분양이 4700여 채에 이르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이 다음 달 19일 전에 분양하지 못한다면 준공 이후 전세물량이 거의 나오지 않을 수 있다.

2년 뒤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계약갱신요구권을 쓴 세입자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집주인들이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면서 그간 못 올린 보증금에 4년 치 전세가격 상승분을 더해 한꺼번에 보증금을 올려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올해 공시가격 인상, 종합부동산세 인상 등으로 보유세 부담이 급등해 집주인들이 세 부담을 전가하려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정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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