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빚투’도 양극화… 가계대출, 고신용자 쏠림 심해진다

박희창 기자 , 신나리 기자

입력 2020-09-16 03:00 수정 2020-09-16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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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용자 비중 5년새 13.8%P 늘고 중신용 10%P, 저신용 3.8%P 줄어
저금리 대출 활용 주택-주식 투자… 평가차익 늘며 자산 불평등 커져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이모 씨(31)는 얼마 전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5000만 원을 은행에서 빌려 미국 주식에 투자해 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듣고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신용등급이 5등급인 그에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빚투(빚내서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정기예금 금리가 0%대로 떨어진 저금리 시대지만 마이너스통장 대출을 받으면 연 4% 중반의 이자를 내야 한다. 그는 “은행에서 빌려주는 돈은 친구보다 적은데 이자는 훨씬 높다”며 “빚을 지렛대 삼아 돈을 버는 친구를 볼 때 좁힐 수 없는 자산 격차가 생겼다는 걸 실감한다”고 했다.

고신용자(1∼3등급)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빠르게 늘고 있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올 2분기(4∼6월) 고신용자 대출 쏠림 현상이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푼 막대한 돈이 고신용자에게로 쏠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전체 가계대출 가운데 고신용자가 받은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76.5%로 지난해 말보다 1.6%포인트 더 커졌다. 반면 중신용자(4∼6등급), 저신용자(7∼10등급)의 비중은 각각 1.2%포인트, 0.4%포인트 줄었다. 고소득자의 대출 비중도 다시 늘고 있다. 2019년 말 전년보다 1.9%포인트 감소했던 고소득자(상위 30%) 비중은 2분기 63%로 지난해 말(62.5%)보다 더 확대됐다.

이 같은 고신용자 대출 쏠림 현상은 최근 몇 년간 심화하고 있다. 5년 전과 비교하면 고신용자 비중은 13.8%포인트 확대됐고, 중·저신용자는 각각 10%포인트, 3.8%포인트 쪼그라들었다. 신용 1등급이 전체의 약 28%에 이르는 등 고신용자가 많아진 점을 감안해도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가 내려 고신용자의 자금 조달 비용이 싸졌다. 부동산, 주식 등을 통한 투자 기회가 더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12조 원 가까이 늘어난 은행권 가계대출은 전세금과 집값을 대기 위한 자금과 주식 투자 수요 등이 겹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고신용자 대출 쏠림 현상은 저신용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1, 2등급의 평균 금리는 연 2.29%(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일반신용대출 평균 금리)로 5000만 원을 빌리면 한 달 이자가 9만5000원인 반면 5, 6등급은 4.38%로 한 달 이자 부담이 18만2000원이다. 같은 금액을 대출받아 투자를 하더라도 고신용자만큼의 이익을 손에 쥐려면 2배의 수익률을 올려야 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2014년 이후 금융 접근성이 높은 고신용자, 고소득자들이 빚을 내서 자산을 많이 사고 이것이 자산 가격 상승과 맞물리면서 자산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국이 주택담보대출 조건을 강화하고 가계대출을 조이면서 금융권의 고신용자 대출 쏠림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은행 여신 담당자는 “금융권이 문제가 될 여지가 거의 없는 고신용자들에게 대출을 더 내주는 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최근 거액 신용대출 등이 늘어나자 고신용자의 대출에 대한 ‘핀셋 규제’도 검토하고 있다. 14일 금융감독원과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 카카오뱅크 여신담당 임원은 화상회의를 열고 고액 신용대출 등 신용대출 증가 속도를 늦추는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박희창 ramblas@donga.com·신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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