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 상인 “흙범벅 상품 어쩌나”… 물-전기까지 끊겨 애태워

하동=김태언 기자 , 안성=이청아 기자 , 제천=박종민 기자

입력 2020-08-12 03:00 수정 2020-08-1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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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피해]
구례-안성 등 피해복구 현장 르포


물에 젖은 가재도구… 섬진강 하류 범람으로 침수 피해를 입은 전남 구례군 5일시장 골목에 11일 가구, 이불 등 물에 젖은 가재도구들이 쌓여 있다. 구례=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우리 집 생계가 이것뿐인데 어쩌겠어요. 깨끗하게 빨아서 반값에라도 팔아보려고 이렇게 빨고 있어요.”

11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5일시장에서 옷 가게를 하는 조모 씨(69·여)는 흙탕물에 물들어버린 옷 수백 벌을 일일이 손으로 빨고 있었다. 사흘 전 섬진강 하류가 범람해 시장이 침수되면서 조 씨의 가게 안으로 흙탕물이 가득 들어찼다. 당시 어른 키 높이까지 물이 차올라 조 씨는 몸만 겨우 대피했다. 이날 조 씨는 수도꼭지 옆에 딸, 며느리와 둘러앉아 오전 내내 빨래에 방망이질을 했지만 빨랫줄에 널린 옷은 수십 벌이었다. 그는 “옷에 얼룩이 져서 팔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빨아봐야죠”라고 말했다.

○ 복구 인력 부족한데 물, 전기까지 끊겨

복구는 언제… 산사태와 침수 피해를 입은 경기 안성시 죽산면의 한 마을에서 11일 주민이 고개를 떨군 채 피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안성=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500mm 이상 폭우가 쏟아진 구례군에서 주요 피해지역 중 하나인 이 시장에 10, 11일 이틀간 공무원, 소방대원, 군인, 경찰, 자원봉사자 등 복구 인력 1300여 명이 투입됐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은 인력 부족을 호소했다. 그릇 가게를 하는 박모 씨(47)는 “가게 안의 쓰레기를 모아서 내놓는 데에만 이틀이 걸렸다. 이제 가게 안을 물청소 하고 내다 팔 그릇을 씻고 있는데, 자원봉사자 5명이 와서 돕고 있는데도 끝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는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3일째 물과 전기가 끊겨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주방용품을 파는 차모 씨(67)는 “흙에 범벅이 된 제품들을 씻어야 하는데 물이 없으니 소방차가 가져다주는 물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약초 가게를 하는 김모 씨는 “복구할 게 아직 산더미인데 전기가 안 들어와서 오후 5, 6시까지밖에 작업을 못 한다”며 답답해했다.

산사태로 1명이 사망했던 경기 안성시 일부 지역은 피해 발생 열흘째인 11일까지도 복구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죽산면에서는 165가구가 산사태와 침수 피해를 입었다. 5일부터 피해 복구에 615명이 투입됐지만 상당수는 추가 산사태 피해를 막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쌓아 올리는 작업에 매달렸다. 자원봉사자 이규강 씨(45)는 “비가 계속 오고 있어 모래주머니로 막지 않으면 다시 산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복구 작업에 전력해도 모자랄 텐데 일단은 응급처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죽산면 일대에는 산사태로 떠내려온 큰 나무들이 교량과 도로를 막고 있어 복구 장비를 동원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안성시 관계자는 “유실된 도로를 모래로 채워야 해 시간이 걸린다. 폐기물 처리도 용역업체를 통해 분리수거를 해야 해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치워도 치워도 흘러드는 쓰레기
11일 충북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충주호 주변은 폐타이어와 스티로폼, 플라스틱 병이 둥둥 떠다녀 거대한 ‘쓰레기섬’으로 보였다. 쓰레기 더미에서 새어나오는 악취에 숨쉬기도 힘들었다. 굴착기 4대가 동원돼 호수에 떠있는 쓰레기 더미를 육지로 걷어냈지만 육지에서 수십 m 반경까지 퍼져 있는 쓰레기를 걷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굴착기 기사 이모 씨(55)는 “치워도 치워도 쓰레기가 상류에서 계속 내려온다. 10일째 꼬박 치우고 있는데 아직도 저렇게 많이 남았다. 악취도 힘들지만 언제 끝날지 까마득한 상황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최근 집중호우로 인해 충주호로 떠내려온 부유물은 약 3만 m³에 달한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이 쓰레기를 모두 걷어낸 뒤 처리하는 데 2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모래주머니라도… 광주 광산구 직원들이 9일 광산구 송정동 송정나들목 공영차고지에서 호우로 무너진 제방을 복구하기 위해 방수용 모래주머니를 만들고 있다. 광주=뉴스1
북한강 주변의 댐들도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환경부는 이번 장마로 10일까지 댐에 유입된 고사목과 풀, 생활쓰레기 등이 충북 충주댐 3만 m³, 강원 소양강댐 2만6000m³, 한탄강댐 1만 m³, 횡성댐 300m³에 달한다고 밝혔다.

수해로 생긴 쓰레기는 바다까지 흘러들어 갔다. 영산강 상류 집중호우로 전남 목포 앞바다가 쓰레기로 뒤덮이면서 선박을 동원한 수거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영산강 수위 조절을 위해 7일부터 하굿둑 수문을 개방하면서 평화광장과 남항, 여객선터미널 등 목포 앞바다 10만 m²에 걸쳐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다. 목포지방해양수산청은 9일부터 청항선과 어항관리선, 해경방제정 4척의 선박과 10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 쓰레기 160t을 수거했지만 역부족이다.

하동=김태언 beborn@donga.com / 안성=이청아 / 제천=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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