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도 “한국라면 해장”… 해외서 통한 K푸드, 공장 풀가동

박성진 기자

입력 2020-08-11 03:00 수정 2020-08-11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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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속 빛난 K기업]식품업체들 눈부신 성장



미국 뉴저지 호보컨에 살고 있는 톰 브래넌 씨(36)는 과음한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한국 라면으로 해장을 한다. 한국 출장길에 기내식으로 처음 맛봤던 라면 맛에 흠뻑 빠지면서다. 뉴욕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됐을 때 그가 가장 먼저 구입했던 식품 중 하나도 라면이었다. 그는 “비상 상황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으로 라면을 선택했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는 가운데도 ‘K푸드’는 눈부신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해외에서 간식 개념이 강했던 K푸드가 코로나19 전후 식사 대용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국내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꾸준히 해외시장 문을 두드려 왔던 식품제조업계 입장에서는 코로나19가 기회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K푸드 열풍은 기업의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농심이다. 농심의 올해 상반기(1∼6월) 미국법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성장한 1억6400만 달러(추정치)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대형마트인 월마트와 코스트코의 상반기 매출이 각각 35%, 51% 늘어났고, 아마존에서는 79% 성장했다. 최근 ‘신라면블랙’은 뉴욕타임스가 운영하는 제품 리뷰 사이트(와이어커터)가 꼽은 가장 맛있는 라면으로 선정됐다. 미국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일본과 중국 라면을 제친 결과다.

농심의 폭풍 성장은 깜짝 결과가 아니다. 1971년부터 반세기 가까이 해외시장 문을 두드린 끝에 맺은 결실이다. 농심은 세계 최대 라면 시장인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 1999년 국가대항전인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을 창설해 현재까지 대회를 주최하고 있다.

현지인의 라면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한 마케팅도 주효했다.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데워 먹는 ‘포면 문화’가 일반적인 중국에서는 시식 행사를 통해 끓여 먹는 조리법을 알렸다. 미국에서는 신라면에 치즈를 넣어 먹는 등 라면을 다양하게 즐기는 방법이 확산되도록 마케팅을 벌였다. 영화 ‘기생충’의 흥행으로 짜파구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해외 소비자가 쉽게 즐길 수 있도록 전자레인지 조리가 가능한 형태로 ‘짜파구리’를 출시했다.

정확한 수요 예측을 통한 생산 및 제조 공정에 대한 발 빠른 대처도 K푸드 열풍의 한 축이다. 농심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올해 1분기(1∼3월) 국내외 공장을 풀가동했다. 생산량을 늘리자마자 미국 등에서는 라면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오리온도 경쟁 제품인 감자칩 ‘레이즈’를 만드는 미국 펩시코의 중국 우한 제조 공장이 생산 차질을 빚는 동안 ‘오감자’와 ‘예감’ 등 감자 과자 생산량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그 결과 올해 1분기 중국 시장에서 영업이익 474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 16.5% 늘어난 수치다.

K푸드 열풍의 한가운데에는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도 있다. CJ제일제당의 지난해 만두 매출 9000억 원 가운데 해외 매출이 60%를 넘어섰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는 지난해 연매출 3600억여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50% 성장했다. 미국에서의 성과는 선제적인 인수합병(M&A) 덕에 가능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약 3조 원 가치의 미국 대형 식품기업 슈완스 컴퍼니를 인수했다. CJ제일제당이 추진한 M&A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당시 업계에서는 냉동 피자를 주로 생산하는 슈완스 인수합병 효과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었다. 하지만 CJ제일제당은 슈완스를 통해 국내 식품기업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 가장 어려울 거라 우려했던 유통 인프라 문제를 해결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슈완스를 통해 미국 전역에 걸친 식품 생산 및 유통 라인을 확보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수합병 효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식품기업들은 현지에 특화된 제품 개발 등을 통해 K푸드 열풍을 이어갈 계획이다. 오리온은 러시아에선 현지인들에게 익숙한 베리맛 초코파이 제품들의 구성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중국에서는 ‘초코파이 마차’의 성공을 토대로 한 신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수제형 만두’ 개발에 주력할 방침이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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