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배송’ 치열한 경쟁에… 한밤 화물차 사고 1년새 12배 껑충

서형석 기자

입력 2019-12-13 03:00 수정 2019-12-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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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운전 1000명을 살린다]
<23> 소형 배달차량 안전대책 시급


지난달 19일 오후 10시 50분경. 대전시의 한 왕복 4차로 도로. 흰색 화물차 한 대가 주행차로인 1차로를 똑바로 달리지 못하고 차선을 넘나들었다. 1t짜리 택배차량이었다. 인근에서 저녁식사 모임을 마친 A 씨 일행 4명이 마침 길을 건너고 있었다. 화물차 운전사는 횡단보도가 아닌 곳으로 건너던 이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중앙선을 넘어 A 씨 일행을 치었다. 당시 사고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를 보면 화물차는 갑자기 방향이 꺾어지면서 중앙선을 넘었다. 이 사고로 2명이 목숨을 잃었고 1명이 다쳤다. 사고 경위를 조사한 경찰은 화물차 운전사가 졸음운전을 한 것으로 봤다.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배달 물량 증가와 유통업체 간의 배송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늦은 밤이나 새벽시간대 도로를 달리는 화물 차량이 많아졌다. 요즘은 이른바 ‘새벽 배송’을 앞세워 강조하는 온라인 업체들도 많아졌다. 업계에 따르면 2015년 100억 원대였던 새벽 배송 시장 규모가 지난해에는 4000억 원을 넘어섰고 올해는 작년의 2배인 8000억 원가량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운수업 조사 잠정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육상운송업 중 도로화물 분야 업체 수는 19만4107개로 전년보다 4.4% 증가했다. 종사자 수는 45만1614명으로 1.9% 늘었고 매출액은 약 36조1590억 원으로 2.3% 많아졌다. 통계청은 “1t 이하의 소형 용달화물 차량 증가가 눈에 띈다”고 분석했다.

새벽 배송으로 대표되는 택배운송업계의 치열한 경쟁으로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시간대에 운행하는 화물차량이 증가하면서 사고도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1∼9월 국내의 한 손해보험사에 접수된 화물차 사고 중 오후 10시∼다음 날 오전 6시에 발생한 사고는 1021건이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79건에 비해 13배로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오전 6시∼오후 10시에 발생한 사고가 1971건에서 2310건으로 1.2배가량으로 늘어난 것과는 차이가 크게 난다.

지난해 8월에도 오전 5시 20분경 서울의 한 고가도로에서 택배용 1t 화물차량이 앞서가던 승합차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들이받으면서 8m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화물차 운전사가 4시간을 운전하면 30분 동안 의무적으로 쉬게 하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2017년부터 시행 중이지만 위반 사례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운행하는 차량들은 과속을 하는 경우가 잦아 한번 사고가 나면 큰 피해로 이어진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오전 6시∼오후 10시 발생한 화물차 교통사고의 경우 100건당 사망자는 2.9명이었지만 오후 10시∼다음 날 오전 6시 발생한 사고는 100건당 사망자가 6.2명으로 2배 이상 많았다. 치킨가게 등이 배달을 할 때 주로 이용하는 오토바이도 오후 10시∼다음 날 오전 6시 발생 사고 100건당 사망자가 3.9명으로 그 외 시간의 2.5명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5일 오전 서울 중구 퇴계로 지하철 4호선 회현역 인근에 있는 오토바이 조업 주차구역에서 한 퀵서비스 기사가 오토바이를 대고 있다. 서울시는 화물차와 오토바이 등 배달 차량 운전자들이 불법 주정차를 하지 않고 안전하게 물건을 싣고 내릴 수 있도록 차로와 인도 사이에 별도의 주차공간을 만들어 지난해 5월부터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화물차량의 상당수가 물류회사 소속이 아닌 개인용 차량이라는 점도 사고를 부추기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택배 차량 운전사의 대부분은 자신이 소유한 화물차를 갖고 택배회사와 계약해 배송할 물량을 받는 이른바 ‘지입제’ 구조에서 일을 한다. 택배기사가 택배회사의 유니폼을 입고 있어도 법적인 신분은 개인사업자인 것이다. 실어 나르는 물량에 따라 손에 쥐게 되는 돈의 액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과속이나 과로운전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그동안 여러 차례 있어 왔다.

국토교통부의 지난해 자동차 등록대수 현황보고에 따르면 국내 화물차 359만939대 중 회사 소속이 아닌 개인 소유 차량은 315만2275대로 87.8%에 이른다. 강동수 한국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연구개발원장은 “화물차 지입제 물류구조에서는 운전사의 이력과 차량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며 “지금과 같은 지입제 구조에서 화물차가 실어 나르는 물량이 계속 늘어나는 건 사고 발생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지적했다.

최근엔 배달산업이 활기를 띠면서 오토바이를 이용한 배달이 교통안전의 사각지대로 꼽히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산업재해로 숨진 18∼24세 중 사망 원인이 ‘사업장 외 교통사고’로 표시된 사망자가 6명 있었다. 사업장 외 교통사고는 배달 중 발생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12명이나 됐다. 지난 한 해 동안 618건이었던 퀵서비스 업체의 산업재해 신청 건수가 올 상반기에만 600건이나 됐다.

이성렬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배송량 증가로 소형 화물차, 오토바이의 교통량이 늘어나고 있는데 안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며 “화물차와 오토바이 운행 관련 안전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차로 줄여 화물차 작업공간… 교통흐름 더 좋아져 ▼

서울시 ‘도로 다이어트’ 실험
조업차량 불법주정차 문제 해결… 인도 폭 넓어져 보행여건도 개선

화물차와 오토바이 등 운송업 차량 운전자들의 안전과 원활한 작업을 돕기 위한 서울시의 이른바 ‘도로 다이어트’ 실험이 주목을 끌고 있다. ‘도로 다이어트’는 서울시가 배달 차량의 불법 주정차 문제를 해결하고 운전자들의 안전한 작업도 돕기 위해 차로를 줄여 별도의 주차 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서울 중구 퇴계로의 지하철 4호선 회현역 6번 출구 앞에는 차로와 인도 사이에 1t 화물차 2대가 앞뒤로 나란히 주차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마련돼 있다. 차량 진행 방향 기준으로 보면 인도가 역 ㄷ자 모양으로 움푹 팬 모습이다. 인도보다는 조금 낮은 곳에 있다. 여기에 주차하는 차량은 주로 인근의 남대문시장과 상가를 오가며 물건을 실어 나르는 1t 이하 화물차들이다. 퀵서비스 오토바이 기사들도 자주 주차를 한다. 이곳에 차를 세운 운전자들은 바로 옆 차로의 교통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물건을 싣고 내릴 수 있다.

이곳은 서울시가 2017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공사를 벌인 ‘퇴계로 보행공간 재편 사업’의 하나로 마련된 화물차 조업 주차구역이다. ‘퇴계로 보행공간 재편 사업’은 인도 폭이 좁게는 1.5m밖에 되지 않았던 퇴계로 회현역∼퇴계로2가 사이 1.1km 구간의 보행 여건을 개선하고 교통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됐다. 편도 기준 4개였던 차로 수를 3개로 줄이는 대신 인도를 넓혔다.

하지만 차로 수를 줄이는 것에 대해 주변 상인들은 못마땅해했다. 그동안에도 맨 끝 차로에 불법 주정차를 한 채 물건을 싣고 내리는 차량들 때문에 불편을 겪었는데 차로 수가 줄면 교통 정체까지 심각해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서울시가 이 같은 상인들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로 생각해 낸 것이 화물차량을 위한 별도의 조업 주차구역이다.

서울시는 사업 구간인 퇴계로에 조업구역 2곳을 만들었다. 한 곳은 1t 화물차 2대, 다른 한 곳은 3대가 주차할 수 있는 넓이로 설치했다. 오토바이 전용 조업 주차구역도 2곳을 만들었는데 각각 10대 이상 주차할 수 있는 크기다.

서울시는 2020년 착공해 2021년까지 마무리할 예정인 세종대로와 을지로 보행공간 재편 사업에서도 퇴계로와 같은 형태의 조업구역을 마련할 방침이다. 서울 종로구가 오토바이 불법 주정차를 막기 위해 2011년 7월 종로6가 동대문종합시장 주변에 마련한 오토바이 조업구역의 경우 낮 시간대에는 빈자리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최근 종로구는 오토바이 조업구역 추가 확보를 위한 설계에 착수했다.

○ 공동기획 :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tbs교통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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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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