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운전 면허관리 강화하는 선진국… 운전자에만 맡겨둔 한국

서형석 기자 , 김자현 기자

입력 2019-05-14 03:00 수정 2019-05-1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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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고령운전 사고, 안전 해법은


12일 경남 양산시 통도사 경내에서는 김모 씨(75)가 몰던 체어맨 승용차가 갑자기 속도를 높이면서 보행자와 도로 가장자리에 앉아 쉬고 있던 사람들을 잇달아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1명이 숨지고 1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차량 운전자 김 씨는 급발진 사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운전 미숙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 중이다.

통도사 경내 사고처럼 65세 이상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가 2014년 2만275건에서 해마다 늘어 지난해 3만12건을 기록했다.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고가 급증하면서 이들의 면허증 자진 반납을 유도하는 지방자치단체들도 속속 늘고 있다.

면허증 자진 반납을 기대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정 연령에 이르면 모든 운전면허 보유자가 운전능력을 다시 평가받도록 하는 등 고령 운전자에 대한 관리를 엄격히 하는 나라들도 있다. 고령자의 운전면허증 효력을 ‘리셋(초기화)’한 뒤 운전능력 평가에서 합격점을 받은 운전자에 대해서만 면허를 갱신해 주는 것이다.

사실상 ‘강제 반납 후 재발급’으로 봐도 무방한 이 같은 제도를 운영 중인 나라는 뉴질랜드와 덴마크, 아일랜드다. 이들 국가에서는 일정 나이에 이르면 모든 운전자는 반드시 자신의 운전능력을 경찰과 의료진에 의해 평가받아야 한다. 뉴질랜드와 덴마크는 75세, 아일랜드는 70세부터 대상이다. 경찰과 의료진은 신체·인지능력과 차량 운전능력 등을 측정한다. 측정에서 ‘운전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 면허가 갱신되지 않는다. 검사를 통과하더라도 나라별로 1∼5년마다 재검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독일과 스위스, 미국의 아이오와·캘리포니아주 등에서는 고령자가 운전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 등에 제한을 두는 일종의 ‘한정 면허’ 제도를 두고 있다. 고령 운전자의 신체와 인지능력 등을 검사한 뒤 시력이 좋지 않을 경우 야간운전을 제한할 수 있다. 또 고령 운전자의 운전지역을 제한하거나 주행 속도를 도로 최고 제한속도보다 낮게 지정할 수도 있다.

스위스는 정부가 교통안전 분야 전담 의료진을 지정하고,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전국의 고령자 복지를 위한 상담창구를 운영하면서 운전과 관련된 내용도 다루고 있다. 고령 운전자가 언제든지 자신의 운전능력과 관련한 의학적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성렬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도 고령자가 자신의 운전능력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사회적 지원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의료진의 판단만으로는 고령자의 운전을 제한할 방법이 없다. 고령 운전자의 면허증 관리 강화를 위한 법안 5건이 국회에 발의돼 계류 중이다. 하지만 면허증을 자진 반납할 경우 지급하는 교통카드 등의 각종 혜택 제공에 들어가는 재원을 중앙정부가 마련하도록 했을 뿐 면허증 갱신이나 면허 조건에 제한을 두도록 한 법안은 없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도로교통연구본부 연구위원은 “고령 운전자의 면허관리 제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며 “그러려면 고령자의 이동성을 보장하기 위한 대중교통 공급 확대 등의 대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형석 skytree08@donga.com·김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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