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과도한 처벌 완화… 32개 형벌 조항 손본다

서영빈 기자 , 전주영 기자 , 이미지 기자

입력 2022-08-27 03:00 수정 2022-08-27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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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 첫 규제혁신회의 주재

‘증강현실 글라스’ 체험하는 尹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대구 달서구의 반도체 설계기업 아진엑스텍에서 열린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 앞서 ‘증강현실(AR) 글라스’를 체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앞으로 지주사 설립·전환 신고를 하지 않아도 벌금이 아닌 과태료 처분만 받는다. 정부가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형벌 규정을 완화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경미한 법 위반 행위에 대해 징역형이나 벌금형 대신 행정제재인 시정명령이나 과태료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대구 달서구 성서산업단지 내 반도체설계 중소기업인 아진에스텍에서 첫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주재하고 “경제형벌 규정을 원점에서 과감하게 재검토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 환경범죄단속법 등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과도한 경제형벌 규정을 손질해 기업이 투자를 늘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이날 기획재정부와 법무부는 ‘경제형벌 규정 개선 추진계획 및 1차 개선과제’를 보고하고 법률 위반으로 침해되는 법익이 낮은 17개 법률, 32개 형벌 조항에 대한 개선 방침을 밝혔다. 이 중 13개 조항은 형벌 자체를 폐지하거나 과태료 등 행정제재로 바꾼다. 나머지 19개 조항은 형벌에 앞서 행정제재를 먼저 부과하거나 형량을 낮추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주사 설립 혹은 전환 신고를 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한 경우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된 공정거래법 조항은 과태료 처분으로 대체된다.


지주사 신고지연 ‘벌금 1억’… 앞으로는 과태료만 물린다

과도한 기업 형벌 완화


징역 가능했던 식당 호객행위… 형벌 대신 등록취소-영업정지
환경영향평가 면제범위도 확대… 화학물질 규제 일괄→차등 적용
폐지-고철 등은 규제없이 재활용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단순 착오로 신고를 누락한 경우에도 벌금을 물리는 건 지나치다는 의견을 제시해왔다. 예컨대 홈쇼핑 업체인 N사는 2020년 지주사 기준을 충족했지만 신고서를 뒤늦게 제출해 공정거래위원회 제재 심의를 받았다. N사는 단순 실수이며 신고를 늦게 해 부당이득을 취한 것도 없다고 해명했지만 공정위 심의를 피하지는 못했다.

이 밖에 인가 없이 물류터미널 건설공사를 할 때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을 규정한 물류시설법 조항도 삭제된다. 사업정지 등 행정제재로도 입법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식품 접객업자가 호객 행위를 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을 규정한 식품위생법 조항도 허가·등록취소나 영업정지로 완화된다.

행정제재를 통해 피해회복이 가능한 경우 먼저 시정명령 혹은 과징금을 부과하고, 불이행 시 형벌을 물리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에 따라 납품업자가 다른 사업자와 거래하는 것을 방해하는 대기업에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한 대규모유통업법 조항은 시정명령 혹은 과징금부터 부과하도록 했다.

정부는 개발사업에 앞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환경영향평가를 줄이는 방안도 추진한다. 화학물질 취급과 관리에 관한 규제도 완화한다. 이 같은 내용의 환경규제 혁신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규제 일변도를 벗어나 지속가능한 환경정책을 추진해 달라”고 주문함에 따라 환경부에 환경규제 현장대응 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진 지 3개월 만에 나왔다.

이에 따라 환경영향평가 면제 범위가 넓어진다. 기존에는 면적 5000m² 이상의 개발사업에는 예외 없이 환경영향평가를 적용했다. 한 번 평가를 받는 데만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2년 이상 걸렸다. 하지만 앞으로는 사전검토제(스크리닝 제도)를 도입해 평가가 필요한 사업을 골라낸다.

화학물질 규제도 현재의 일괄적용 방식에서 차등적용으로 바뀐다. 2015년 ‘화학물질등록평가법’ 및 ‘화학물질관리법’이 시행된 이래 정부에 등록된 화학물질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동일한 사용량과 취급기준 규제를 받았다. 위험도와 관계없이 330여 개 규제가 동일하게 적용되다 보니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환경부는 앞으로 저위험과 고위험 물질을 세분해 차등 관리할 계획이다.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 승인 기준도 완화된다. 기존에는 폐지, 고철, 폐유리 같은 자원도 폐기물이란 이유로 까다로운 재활용 규제를 받았다. 앞으로는 유해성이 낮은 폐기물 자원은 별다른 규제 없이 재활용 제품으로 쓰일 수 있게 된다.

이날 경제단체들은 경제형벌 완화에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강력한 규제개선 실천을 주문했다. 이상헌 대한상공회의소 규제샌드박스 실장은 “과거처럼 협의만 하다 끝날 게 아니라 민간과 함께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영빈 기자 suhcrates@donga.com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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