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전세’ 500채 팔고 잠적… 전세사기 의심 1만3961건 적발

정서영 기자

입력 2022-08-25 03:00 수정 2022-08-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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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단속 자료 경찰청 넘겨


#1. 건축업자 A 씨는 자신이 지은 신축 빌라 500여 채에 세입자들을 들였다. 전세보증금만 총 100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매물 대부분이 시세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거나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거나 비슷한 ‘깡통 전세’였다. 신축 빌라는 시세를 정확히 알 수 없어 깡통 전세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계약 이후 A 씨는 보증금 상환능력이 없는 B 씨에게 매물을 모두 매도한 뒤 잠적했다. 이 과정을 도운 공인중개사에게는 전세금의 약 10%를 수수료로 지불하기도 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이미 피해자 100여 가구에 보증금 300억 원가량을 대신 갚아 준 상태다. 경찰은 A 씨를 전세사기 혐의로 수사 중이다.

#2. 집주인 C 씨는 전세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은 이력 때문에 악성채무자로 분류돼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금지됐다. 이 때문에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C 씨는 지인 D 씨와 공모해 주택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집 명의를 모두 D 씨 앞으로 돌렸다. D 씨는 C 씨 주택으로 200여 명과 전월세 계약을 체결한 뒤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했다. C 씨는 결국 보증금 550억 원을 돌려주지 않아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전세사기 의심사례 1만3961건을 경찰청에 넘겼다고 24일 밝혔다. 이는 국토부가 전세사기 단속을 위해 지난달 말부터 최근까지 HUG, 한국부동산원과 함께 전국 전세사기 의심 사례를 수집·분석한 결과다.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보유한 집주인이 담보대출을 제때 갚지 않아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숨긴 경우도 있었다. 해당 집주인은 공인중개사와 공모해 연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세입자 30여 명과 전월세 계약을 맺고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주택 여러 채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보증가입 의무를 위반해 과태료를 낸 임대사업자 9명도 있었다. 이 중 임대사업자 E법인은 주택 200여 채를 임대하고 있으면서도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하지 않아 과태료 약 3000만 원이 부과됐다.

이번에 국토부는 ‘집중관리 채무자’ 200명의 정보도 경찰에 통보했다. HUG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대신 갚은 뒤에도 해당 보증금을 오랫동안 상환하지 않고 있는 집주인들을 말한다. 이들이 맺은 거래는 3353건, HUG가 대신 갚은 금액(대위변제액)만 6925억 원에 이른다.

또 전세사기 가능성이 높은 계약에 관한 정보 1만230건도 경찰에 넘겼다. 전세계약을 맺은 뒤 대량으로 매매거래가 이뤄졌거나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 100%가 넘어가는 거래 등이다. 해당되는 집주인은 825명, 보증금 규모는 총 1조581억 원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경찰청과 공조를 진행해 필요할 경우 직접 수사도 의뢰할 계획”이라며 “9월 중 법무부 등과 함께 전세사기 예방대책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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