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적신호… 주범은 무분별한 ‘의료 쇼핑’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입력 2022-08-24 03:00 수정 2022-08-2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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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갑상샘 결절 진단
양성이어도 일상에 문제 없지만, 일부서 과도하게 절제술 시행
신체 균형 맞추는 도수치료도 잦아… 비용 기준 없어 병원마다 천차만별
과도한 의료이용 행태 반복되면, 대다수 가입자가 보험료 부담 안아


국림암센터 김열 암관리학과 교수. 국립암센터 제공



환자가 여러 병원을 오가며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진료를 받는 것을 의미하는 ‘의료쇼핑’에 대한 경고등이 켜졌다. 일부 이용자의 의료쇼핑에 의료기관의 과잉진료가 더해지면서 비급여 항목 진료비가 급증해 건강보험 재정은 물론 민간보험의 손해율까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상샘(갑상선) 결절 고주파 절제술, 도수치료, 다초점 렌즈 백내장 수술, 비타민·영양주사, 자궁근종 하이푸 시술 등 일부 비급여 항목에 대한 과도한 이용이 의료쇼핑 문제로 꼽히고 있다.


급증하는 갑상샘(갑상선) 결절 고주파 절제술… ‘제2의 백내장’ 되나


의료쇼핑의 주요 항목으로 지적받는 갑상샘 결절 고주파 절제술은 갑상샘에 생기는 혹 또는 종양의 크기를 줄이기 위한 치료법이다. 갑상선 결절은 나이가 들수록 발생률이 증가하는 가장 흔한 내분비질환의 일종이다. 암이 아닌 갑상샘 결절은 양성 결절로 확인되면 그냥 두어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대부분 건강검진 등을 통해 발견될 때까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김열 국립암센터 암관리학과 교수는 “최근 갑상샘 결절 진단이 늘어난 것은 검사를 많이 받기 때문”이라면서 “검사를 하지 않으면 평생 모르고 살 수 있으며, (양성 결절은) 발견돼도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갑상샘 결절에 대한 치료 지침은 결절의 크기가 커져 미용상 이유가 발생하거나 압박감이나 이물감 등이 생길 때다. 하지만 일부에서 과도하게 갑상샘 결절 고주파 절제술을 시행해 문제가 되고 있다.

일정한 주파수로 진동하는 교류 전류를 이용해 결절을 괴사시키는 고주파 절제술은 한 번의 시술로 결절이 사라지지 않는다. 여러 번 반복해서 치료해야 하며 결절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갑상샘 결절은 치료보다 전문가와 적절한 진단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결절의 크기가 너무 크거나 불편한 증상이 생기면 예외적으로 치료를 고려할 수 있지만, 적정한 치료 시기 역시 진단이 되고 난 후 증상이나 병의 위험성을 잘 평가해서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수치료 및 피로 해소·미용 목적 비급여 주사제, 부작용 제대로 알아야


도수치료는 뼈 골절이 잘 되거나 피부 질환이 있는 사람은 피해야 하는데 무분별한 치료가 이뤄져 문제가 되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의료쇼핑의 또 다른 주범으로 꼽히는 ‘도수치료’는 신체 불균형이나 근골격계 질환의 증상 개선을 위해 치료사가 통증 부위를 손으로 진단해 척추와 관절 등 몸의 균형을 맞춰 통증을 줄이는 치료법이다. 수술에 비해 환자의 위험 부담이 적고, 전 연령대에서 적용 가능한 치료다. 그래서 근골격계 통증으로 도수치료를 받는 사람이 많다.

문제는 도수치료 비용이 의료기관별로 천차만별인 데다, 수백 회를 받더라도 근골격계 질환의 통증 개선이 미미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19년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의료기관 간 도수치료 진료비용은 상급종합병원과 의원 사이에 약 3.5배나 차이가 났다. 여기에 골다공증 등 뼈가 골절되기 쉬운 사람이나 염증, 피부손상, 대상포진 등 피부 질환이 있는 사람의 경우 도수치료를 피하는 것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치료가 이뤄지기도 했다.

전문의들은 도수치료를 받으려면 반드시 의사의 진단과 상담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환자의 상태와 관계없이 마사지 개념으로 자주 받을 경우 디스크가 파열되거나 통증이 악화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또 피로 해소, 미용 목적의 비급여 주사제도 주요 의료쇼핑 항목이다. 지난해 말 국내 비급여 주사제 처방 규모는 2000억 원으로, 2017년(1000억 원)의 2배로 증가했다. 피로 해소, 영양 공급, 노화방지 등을 목적으로 한 영양제와 비타민주사 등의 경우 원칙적으로 식약처 허가 사항에 따라 ‘치료받은 경우에만’ 보험금이 지급되도록 관련 규정도 바뀌었다. 정부가 피로 해소, 미용 목적의 비급여 주사제에 대한 보험금 지급 규정을 강화한 것은 실손의료보험 처리가 가능해 일부 병의원에서 주사제 가격을 부풀리거나 동일 진료, 동일 항목임에도 의료기관별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지적이 반복돼서다.

허가 사항 외 항노화, 피로 해소 등 과장된 효능으로 신데렐라주사, 물광주사, 샤넬주사 등 성분을 이해하기 어려운 명칭을 써 불분명하게 처방되는 경우가 많아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보건당국에 보고된 미용주사 부작용 이상 사례는 1378건에 달한다. 이 중 116건은 패혈증 쇼크 등 중대한 건강 이상을 일으켰다.


다초점 렌즈 백내장 수술, 노안 교정용으로 40, 50대도 불필요한 수술 받아


노화가 가장 큰 원인인 백내장은 눈 속 투명한 수정체가 단백질 구조 변화로 뿌옇게 혼탁해지는 질환이다. 사물이 흐려 보이고 시력이 저하되는 증상이 대표적이다. 백내장은 시력 저하가 심하지 않거나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으면 수술보다 비수술적 관리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백내장 수술이 과도하게 이뤄지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안과에서 의사 1명이 1개월간 수백 회의 백내장 수술을 하거나, 안과의사가 백내장 수술을 한 환자들에게 돈을 준 것으로 알려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백내장 수술 시 삽입되는 인공수정체 중 단초점 렌즈의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기에 수술비가 저렴하다. 그러나 근거리와 원거리 초점을 다 맞추는 다초점 렌즈의 경우 비급여 항목으로, 의료기관별 진료비용이 최대 60배가량 차이 난다.

전문의들은 다초점 렌즈의 경우 백내장과 노안을 동시에 교정할 수 있는 대안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빛 번짐이나 눈부심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망막 질환이 있거나 망막 질환 고위험군이라면 향후 수술을 받을 수 있으므로 다초점 렌즈 삽입 수술에 신중해야 한다.


소수의 과도한 의료이용, 건보 재정 부담으로 작용


의료쇼핑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는 이유는 과도한 의료이용이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2020년 보험연구원이 발표한 ‘실손의료보험 청구 특징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이용자의 과도한 의료이용 행태 때문에 의료를 전혀 이용하지 않거나 꼭 필요한 의료이용을 하는 대다수 가입자에게 보험료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

보고서를 보면 실손의료보험으로 입원을 청구한 환자의 상위 10%는 연평균 전체 지급 보험금의 48.5%를 수령하고 있다. 또 상위 10명의 평균 외래 진료 횟수는 2041회, 1년간 방문 의료기관 수는 23.5개 달했다.

감사원 역시 ‘건강보험 재정관리 실태’ 감사 결과를 통해 고령화 및 급여항목 확대 등에 따라 2010년 34조 원이던 건강보험 지출 규모가 2020년 73조7000억 원으로 급격히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또 현재의 건강보험 지출 추이가 지속되면 2026년에는 건강보험료율이 법적 상한인 8%에 도달하고, 2029년 건강보험 적립금이 완전히 소진될 것으로 전망했다. 예상 누적적자도 2040년 678조 원, 2060년 5765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건강보험이나 실손보험 등 비급여 항목에 대한 관리가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비급여 풍선효과가 작용해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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