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보테가 거느린 케어링그룹 후원… 셀카 원조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아시아 첫선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입력 2022-08-04 17:46 수정 2022-08-0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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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권익↑ ‘우먼 인 모션’ 일환
서울 성수서 오는 11월 13일까지 사진전
8개 섹션·270여 작품 전시
‘흑백 셀카·살아있는 표정·아기자기한 스토리’ 눈길
혐오 없는 페미니스트 사진작가


럭셔리 브랜드 구찌와 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등을 거느린 프랑스 패션그룹 케어링(KERING)은 그룹 차원에서 전개하는 ‘우먼 인 모션(Women In Motion)’ 프로그램 일환으로 국내에서 열리는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을 후원한다고 4일 밝혔다.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은 서울 성수동 소재 그라운드시소성수에서 오는 11월 13일까지 방문객을 맞는다.

케어링은 지속가능경영에 초점을 맞춘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을 선도하는 패션그룹으로 꼽힌다. ESG경영을 실현하기 위해 ‘지구를 위한 배려(Care)’, ‘사람과 협업(Collaboratin)’, ‘비즈니스 혁신(Creation)’ 등 크게 3가지 비전에 중점을 둔 활동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이번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후원은 ‘사람과 협업’ 분야 핵심 프로젝트인 우먼 인 모션 프로그램을 실천하는 것이다. 지난해 9월 프랑스 파리 뤽상부르뮤지엄과 올해 2월 이탈리아 토리노 왕립박물관에서 열린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을 후원한데 이어 한국이 세 번째다.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리는 전시이기도 하다. 케어링 측은 패션과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에서 이번 사진전 뿐 아니라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여 그룹 비전 알리기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구찌와 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등 개별 패션 브랜드를 통해 확인한 국내 시장 잠재성과 위상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케어링 우먼 인 모션은 여성 인권을 위한 기업의 사명으로 그룹이 주도해 출범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창조와 변화를 근본으로 삼고 있는 문화예술계 내 성 평등 확립을 목표로 지난 2015년 출범했다. 영화계 내 카메라 앵글 안팎에서 활약하고 있는 수많은 여성을 기리기 위해 칸영화제를 후원하고 해마다 영감을 주는 인물로 떠오르는 신예 여성 아티스트에게 ‘우먼 인 모션 상’을 수여한다. 현재는 영화계를 넘어 사진과 순수미술, 문학, 춤 등 지원 범위를 확대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문화예술계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성찰하는 데 기여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케어링 측은 강조했다.
미국 뉴욕 출신 비비안 마이어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진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특히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21세기에 발견돼 유명세를 탔다. 작품 활동이 활발한 시기에는 사회적 인식과 편견으로 인해 무명작가에 불과했다고 한다. 사진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본업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사진 교육을 정식으로 받지도 않았다. 작품에 대한 비비안 마이어의 열정과 고난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때문에 이번 사진전은 개최 그 자체만으로 문화예술계에 감동으로 다가온다는 평가다. 사진작품을 통해 조용하게 시대를 풍미한 비비안 마이어의 삶을 재조명하고 전 세계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케어링 관계자는 설명했다.
전시는 앤 모렝(Anne Morin) 디크로마포토그래피(diChroma Photography) 디렉터의 큐레이션을 거쳤다. 사진전은 거리(street)와 인물(portrait), 몸짓(gesture), 영화(cinematic), 자화상(self portrait), 색(color), 어린시절(childhood), 양식(forms) 등 총 8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270여개 작품을 선보인다. 앤 모렝 디렉터가 비비안 마이어의 전체 사진을 보고 주제를 분류해 구성한 것이다. 전시 공간 곳곳에는 비비안 마이어가 직접 촬영한 비디오가 재생되고 있다. 비디오로 촬영하고 곧바로 사진을 찍은 흔적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사물을 재빠르게 포착하는 비비안 마이어의 생전 감각과 재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비비안 마이어가 촬영한 사진을 통해 시간 흐름에 따른 관심 변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사진 촬영 당시 작가의 생각과 기분, 의도를 추정해볼 수 있다. 앤 모렝 디렉터는 비비안 마이어는 깊이가 남다른 작품을 남긴 아티스트로 작가에 대해 연구해야 하는 분야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전시된 작품은 비비안 마이어가 항상 메고 다닌 롤라이플렉스로 촬영됐다. 일부 컬러 사진은 라이카카메라를 사용했다. 실제로 사용한 카메라와 버킷햇, 필름 등 소장품도 사진과 함께 전시됐다.

거리와 인물 사진을 보면 당시 시대상황과 생동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구도나 세부 묘사는 사진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인물 사진에서는 피사체 상단부분을 남긴 공통점도 발견할 수 있다. 사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작품 감상이 유익할 것으로 보인다.
여성 인권 향상에 초점을 둔 우먼 인 모션 프로그램 취지에 맞게 비비안 마이어 역시 페미니스트였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페미니스트의 의미가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비안 마이어 작품에는 그러한 요소가 없다. 수많은 남성 인물 사진 속에서 혐오는 느껴지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표정이 살아있는 느낌뿐이다. 1950~1960년대에는 분명 지금보다 시대적인 차별이나 제약이 심했을 법한데 비비안 마이어가 촬영한 인물 사진 속에서 성별이나 나이, 인종, 환경 등과 관련된 차별이나 제약은 발견되지 않는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묵묵히 찰나의 순간에만 집중해 평등한 시각으로 인물을 바라본 비비안 마이어를 통해 진정한 페미니스트의 의미를 느껴볼 수 있다. 자화상 섹션에서는 요즘 말로 ‘셀카’를 찍은 비비안 마이어를 확인할 수 있다. 비비안 마이어는 셀카를 창시한 사진작가인 셈이다. 인물과 사물이 아기자기하게 담긴 작품은 사진 한 장만으로 한 편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느낌이다.
앤 모렝 디크로마포토그래피 디렉터는 “케어링의 후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투어를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며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이 한국에서도 재능 있는 여성 아티스트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티에리 마티(Thierry Marty) 케어링 아·태지역 북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대표는 “케어링이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후원을 통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우먼 인 모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며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문화예술계 융성에 기여한 여성을 조명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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