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만점 카이스트 ‘女벤저스’… “첨단과학으로 여성 불편함 해결”[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허진석 기자

입력 2022-07-30 03:00:00 수정 2022-07-30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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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물질 없는 생리대 개발 ‘이너시아’… 학생신분으로 대학 사무실 빌려
전자빔 이용한 천연 흡수체 개발… 미세 플라스틱 배출 우려 없고
기존제품보다 흡수력도 좋아져… 창업 1년만에 제품 판매 ‘속도전’
“성인용 기저귀 등 활용분야 다양… 여성용품업계의 다이슨 되고파”


KAIST 재학 중 의기투합해 첨단 기술로 새 방식의 생리대를 만든 이너시아 공동창업자들. 왼쪽부터 고은비 전략팀장, 박지혜 운영팀장, 김효이 대표이사, 이승민 기술팀장. 이들은 과학과 기술로 여성의 생활을 바꾸는 위대한 발명을 꿈꾼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생리대에 어떤 혁신거리가 남았기에 명문 대학인 KAIST 출신 4명이 창업 아이템으로 삼았을까. 의료물리와 기능성 고분자 박막 등을 전공한 이들은 자신들이 알아낸 지식이 실생활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것을 보고 싶었다. 상아탑에서 발견한 지식은 대부분 학문의 세계를 넓히고 다지는 데 쓰이는 것이 답답했다. 김효이 대표이사(24)가 창업을 제안했고, 고은비(26) 이승민(26) 박지혜(23) 팀장이 동참했다. 작년 7월 KAIST 재학 중에 ‘이너시아(inertia)’를 설립했다. 이너시아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관성을 의미한다.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하고 정지해 있던 것은 계속 정지해 있으려는 성질이다. 김 대표는 “관성은 세상을 지배하는 불변의 진리다. 우리가 삶에 가까이 있는 중요한 문제들을 과학으로 해결하는 새로운 관성이 되자는 의미”라고 했다.
○남의 실험실 빌려가며 기술 축적
김 대표와 공동창업자들은 학위 연구를 하면서 면화에서 추출된 셀룰로오스 조직에 전자빔을 쏘면 흡수력이 훨씬 좋아지는 3차원(3D) 구조체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4명은 2020년 재학 중에 이 기술을 활용한 창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머리를 짜냈다. 기저귀와 생리대, 요실금 방지용 패드, 공조기에 쓰이는 필터 등 300가지가 넘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 중에서 이들은 생리대를 선택했다. 여성으로서 많이 써 봤지만 흡수력과 친환경성을 모두 갖춘 경제성 있는 제품을 찾기 어렵다는 데 모두 생각이 같았다. 전자빔을 이용한 공정은 원래 재료공학과 의공학 등에서 첨단 부품을 만들 때 쓰이는 ‘비싼’ 기술이다. 그걸 작고 가볍다고 할 수 있는 생리대에 적용한 것이다. 교수와 공정 전문가들은 의아해했다. 하지만 이들은 화학물질을 쓰지 않는 물리적 방식이어서 유해성 논란에서 훨씬 자유로울 수 있겠다 싶었다. 2017년 한 시민단체의 발표로 시중에 판매 중인 많은 생리대에 유해물질이 함유돼 있다는 것이 알려진 이른바 ‘생리대 파동’이 있었던 사실도 떠올랐다.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생리대를 전수 조사해 유해물질인 휘발성유기화합물이 함유된 생리대라 하더라도 그 함량이 기준치 이하여서 인체 위해 우려는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면 생리대가 불티나게 팔리는 등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셀룰로오스 흡수 구조체’를 안정적·경제적으로 만들 방법을 찾으면 승산이 있어 보였다. 학생 신분이던 4명은 낮에는 각자의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다가 밤이 되면 관련 장비가 있는 다른 실험실을 빌려 밤을 새우는 실험을 반복했다. 정밀한 질량을 재는 저울 하나까지 다 빌려 써야 하는 형편이었다. 이후 대학에 요청해 창업 공간을 하나 얻어 사무실로 활용했다. 따뜻한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던 창업 공간에서 1년여 동안 고생한 끝에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의 셀룰로오스 기반 흡수체 개발을 완성했다. 이 물질에 ‘셀라텍스(CELLATEX)’라는 이름을 붙이고 특허를 출원했다.

○ 무엇이 다른 생리대인가
생리대 파동 이후 생리대는 전체 성분을 표시해야 하는 제품이 됐다. 상품의 포장지를 보면 화학물질 이름들이 전부 표시돼 있다는 말이다. 생리대 파동 이후 기존 업체들은 흡수제로 쓰이는 고분자흡수체(SAP)도 천연 물질로 바꾸는 등 소비자들의 소비 성향에 대응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일반적인 면으로는 흡수력을 높이기가 쉽지 않아 여전히 SAP를 사용하는 제품이 있다. SAP는 미세플라스틱이 있는 것도 논란”이라고 했다.

이너시아의 생리대는 흡수체와 외피까지 모두 유기농 면화에 미세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만들어진다. 생리혈을 흡수해 머금고 있으려면 분자끼리 잘 결합돼 있어야 하는데, 그 결합에 화학물질이 아닌 전자빔을 이용하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다. 버려졌을 때는 자연에서 생분해된다. 그럼에도 흡수력은 SAP를 이용한 제품보다 뛰어나다는 게 이너시아의 설명이다. 기능적으로는 흡수력이 높은 유기농 생리대이고, 환경적으로는 유해성 논란이 있는 미세플라스틱을 배출하지 않는 생리대인 셈이다.

이너시아는 전자빔 기반 천연흡수체 기술로 작년 12월 한국공학한림원 차세대공학리더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올해 3월에는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 이노베이션파크 주관 펨테크(Fem-Tech·여성의 불편을 해소하는 기술) 육성프로그램의 대상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물론 미세플라스틱과 SAP, 저함량의 휘발성유기화합물이 인체에 해를 끼친다는 것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아직도 많은 소비자들이 SAP가 든 생리대를 문제없이 사용한다.

하지만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나, 민감한 신체에 닿는 제품이니 보다 확실한 상품을 선택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다. 적지 않은 기업들이 ‘SAP가 들어 있지 않다’는 문구를 생리대 포장지에 표시하거나 흡수제까지 유기농 면을 이용한 제품을 내놓은 이유다.

이너시아는 최근 와디즈펀딩을 통해 자사 생리대 ‘이너시아 더 프리즘’ 약 1억 원어치의 예약을 받았다. 당초 생각했던 2000만 원어치의 5배가 넘는 물량이다.
○“눈에 띄게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이 스타트업”

이너시아의 공동창업자들은 속도를 중시한다. 제품과 서비스의 완성에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저희가 쓰는 시간이 인건비를 생각하면 다 돈이잖아요. 저희는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빠르게 목표를 이루어 나가는 게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했다. 김 대표가 말한 똑똑한 사람이란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운 목표가 명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이다.

기초 기술을 확보한 상태에서 창업한 것도 시간 단축을 위해서다. 창업 당시 ‘1년 이내에 완제품을 선보이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해냈다. 고은비 팀장은 “시간을 아끼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지 않고 4명이 모두 달려들어 무거운 장비와 원재료를 옮겨가며 생산 과정을 최적화했다”고 했다. 제품은 이렇게 최적화한 방식으로 외부 업체에 위탁해 만들고 있다.

서울 강남구 팁스타운S6 빌딩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19일에도 공동창업자들은 새벽까지 일을 하다가 나온 상태였다. 와디즈에서 크라우드펀딩을 끝내고 제품을 발송해야 하고, 자체 쇼핑몰을 통한 본격적인 판매 준비로 바쁘다.

이너시아는 약 5000억 원인 국내 생리대 시장에서 2년 내에 연 100억 원의 매출(시장점유율 2%)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격대는 외국에서 수입되는 유기농 생리대보다는 조금 낮고 국내 유기농 생리대보다는 조금 높은 수준이다. 시간이 지나면 가격은 더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4월에는 미국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셀라텍스를 활용한 다른 시장 진출은 2024년 이후 검토할 예정이다. 친환경 생분해 고성능흡수체는 활용 분야가 많다. 성인용 패드는 물론이고 스마트팜에 쓰이는 배지, 화장품 퍼프 등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게 김 대표 설명이다.

스스로 악바리 기질이 있다고 말하는 4명의 KAIST 출신 창업자는 여성이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은 굉장히 많고, 거기에 아직 과학이 닿지 않은 부분이 정말 많다고 보고 있다. 김 대표는 “무엇을 만들든 ‘이너시아가 만드는 제품에는 제일 진보한 기술이 들어 있어’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여성용품 업계의 ‘다이슨’이 되고 싶어 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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