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하던 자폐아이, 말 태워주니 ‘가자’며 말문 열기도”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입력 2022-07-28 03:00 수정 2022-07-2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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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 세러피’ 연구 박숙경 교수
말의 걸음걸이 원리 사람과 비슷… 신체적 교감 속 감각 회복 도와
소통 어려운 자폐아동 치료 효과… 특수학교서 일반학교로 전학 등
‘우영우 케이스’ 가능하다고 생각


박숙경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말을 이용한 치료 방법인 ‘호스 세러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최근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끌면서 해당 장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아직 이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다. 다만 증상 호전에 도움을 주는 치료는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사람의 마음의 병을 치료한다는 말(馬)을 매개로 한 치료, 즉 ‘호스 세러피(Horse Therapy)’다.

국내에서는 아직 흔하지 않은 치료이지만 미국과 서유럽 등에선 많이 활용되고 있다. 호스세러피를 연구하는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박숙경 교수(CO융합심리치유연구소장)를 만나 말을 이용한 치료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박 교수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실태 조사, 도가니대책위원회 간사 등의 활동을 한 장애인 인권운동가이기도 하다.


―호스 세러피가 무엇인가.


“말을 이용한 치료다. 말은 오랫동안 인류와 함께 살아온 친숙한 동물이다. 말은 사람을 자기 등에 태운 뒤 끊임없이 교감을 하는 동물이다. 말의 움직임과 사람의 움직임이 일치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감각, 운동신경 등을 끊임없이 자극해야 한다. 이런 효과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호스 세러피의 역사가 오래됐을 것 같은데….

“그렇다. 이미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도 말을 이용한 움직임 치료가 매우 효과적이라는 내용의 문헌을 남겼다. 그러나 치료 방법이 정립된 것은 근대 이후다. 제1,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에서 다친 사람들을 말에 태우면서 정신적, 육체적 치료의 보조 방법으로 활용되어 왔다.”

―어떤 질환에 도움이 되나.

“가장 전통적인 것이 말의 움직임을 이용한 물리치료다. 잘 걷지 못하거나 신경질환 때문에 일상생활을 하는 게 어려울 때 도움이 된다. 말이 걷는 방식은 인간의 걸음걸이와 동일하다. 그 때문에 말을 타면 사람들의 잃어버린 감각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말을 이용한 심리치료도 있다던데….

실제 말을 이용해 어린이들과 치료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 박숙경 교수 제공
“마음의 병도 감기처럼 누구나 앓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말을 이용한 심리치료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아이들에게 효과적이다. 말은 움직임을 통해 심리치료를 한다. 이 때문에 언어를 통한 치료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욱 도움이 된다. 특히 언어장애 또는 감각통합 문제로 말을 하기 어려운 자폐 스펙트럼, 인지장애 등을 가진 사람들에게 효과적이다.”

―치료 효과가 어느 정도인가.

“지난해 한국에서 세계재활승마대회(HETI)가 열렸다. 3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회다. 여기서 자폐아동을 대상으로 한 말 매개 심리운동 치료 효과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4명의 중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아이를 대상으로 12주간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한 뒤 ‘KTK’란 움직임 진단도구를 활용하여 아이들의 신체협응능력 변화를 측정했다. 연구 결과 모두 효과가 있었다. 이후 후속 연구로 32명의 발달장애 아이를 대상으로 신체, 감각, 의사소통, 사회성, 정서 등 5개 영역의 변화를 측정했다. 연구 결과 5개 영역 모두에서 효과가 나타났다.”


―어떤 원리로 치료가 되는 것인지.


“자폐 아동들이 말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대개 감각 통합의 어려움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몸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즉, 아이가 감각을 지각하고, 지각된 신호가 뇌로 전달돼 움직임을 하는 부분에 어려움을 가진다. 말 매개 치료를 하면 지속적으로 아동이 움직임을 통해 말과 소통하고 교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가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 쉬워진다. 말은 굉장히 배려심이 많은 동물이다. 아이와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교감을 한다. 말을 움직이려면 아이 역시 함께 움직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의도를 전달해줘야 한다. 아이 몸의 모든 감각이 자연스럽게 동원되면서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나.

“말 매개 치료 과정에서 말(言)을 하지 못했던 아이가 갑자기 ‘가자!’라고 소리치기도 한다. 전혀 말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교감하지 못하던 아이가 말 매개 심리치료를 통해 글을 쓰고,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 통해 특수학교에서 일반학교로 옮겨 교육받게 된 사례도 있다. 놀라운 것은 아무것도 못하는 줄 알았던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같은 사례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당부 말씀이 있다면….

“국내에서 말을 매개로 한 심리치료는 아직 초기 단계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 캐나다 등에선 1990년대부터 활성화됐다. 최근 ‘심리방역’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심한 우울감, 트라우마, 발달장애, 공격행동 등으로 사회적인 관계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야외에서 놀면서 말과 교감하며 움직임을 통해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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