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일곱에도 50km 완주 거뜬…“페달 밟을 땐 무릎 안 아파”

양종구 기자

입력 2022-07-23 14:00 수정 2022-07-2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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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세 이성우 씨(가운데)가 정상근 대한사이클원로회 회장(왼쪽), 윤재극 씨와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사이클을 타고 있다. 80세 중반까지 축구를 하던 이 씨는 무릎 연골이 닳아 사이클로 바꿨고 5년 전 정 회장과 윤 씨를 만나 주말마다 함께 라이딩하며 건강한 노년을 즐기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아흔둘입니다.”

“헉, 저보다 열한 살 형님이네요.”

97세 이성우 씨가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사이클을 타고 있다. 그는 80세 중반까지 축구를 즐기다 무릎 연골이 닳아 더이상 뛸 수 없자 사이클로 갈아탄 뒤 건강한 노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정상근 대한사이클원로회 회장(86)은 5년 전 서울 한강공원에서 사이클을 타다 만난 이성우 씨(97)를 보고 “같은 또래인줄 알고 인사를 건넸다 깜짝 놀랐다”고 했다. 90세 넘어 사이클을 탄다는 자체도 놀라운데 아주 젊어 보였기 때문이다.

시니어사이클계에서 이 씨는 화제의 주인공이다. 100세를 눈앞에 둔 나이에도 거뜬히 40~50km를 완주하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협응력이 떨어져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해 넘어질 수 있는데 전혀 문제없이 질주하고 있다. 특히 사이클의 경우 바퀴도 얇아 더 균형 잡기기 힘들다.

이 씨는 50세 무렵인 1970년대 중반부터 축구를 했다. 80세 중반에 이르자 무릎이 아파 더 이상 공을 찰 수 없었다. 그때부터 사이클을 탔다. 의사도 자전거를 권했다. 페달을 밟을 땐 무릎이 아프지 않았다. 이 씨에게 사이클은 최고의 건강 지킴이이자 친구다.

“사이클은 축구를 대체한 운동이었죠. 너무 좋아요. 사이클 탈 땐 진짜 무릎이 전혀 아프지 않아요. 운동도 되고. 인생 후배들과 경기 용인, 남양주 등까지 사이클 타고 가서 맛난 것 먹고 돌아오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이 씨는 시속 30~40km로 달릴 정도로 수준급이지만 혹 다칠 수 있어 운동 겸 여행 삼아 천천히 달린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공휴일엔 한강사이클클럽 회원들과 40~50km를 달리고 있다. 20~30km 갔다 그 지역에서 점심 먹고 다시 돌아오는 4~5시간 코스다. 사이클 타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이를 얘기하면 ‘지금까지 만나본 최고령’이라며 다들 놀라 자빠진다. 이 씨는 요즘 젊은이들이 즐기는 업힐(오르막) 라이딩과 전국일주는 부상 위험과 체력적인 문제로 하지 않는다. 그는 “평탄한 길을 좀 길게 달리는 게 내 몸엔 가장 맞다”고 했다.

경찰 공무원 출신인 이 씨는 지난해까지 각종 정부 제출 서류를 대리 작성해주는 행정사로 일했다. 아직 보청기도 착용 안하고 신문도 안경 없이 본다. 80대 어르신들이 후배로 볼 정도로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관리를 잘 해왔다.

“서울 광진구축구연합회 구의축구회에서 공을 찾죠. 당시엔 백남봉, 남보원 등 연예인 축구팀과도 경기를 했어요. 매주 회원들과 공차는 재미로 살았죠. 지방 원정도 많이 다녔습니다. 나이 들어 연골이 닳아 없어져 사이클을 탔는데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죠. 사이클이 없었다면 정말 재미없는 세상이었을 겁니다.”

혼자 사이클을 즐기던 이 씨는 라이딩 중 만난 정 회장, 윤재극 씨(85) 등과 매주 함께 달린다.

86세 정상근 대한사이클원로회 회장이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사이클을 타고 있다. 사이클 국가대표 출신인 그는 20여년 전부터 생활사이클계에서 사이클 타기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사이클 국가대표 출신 정 회장은 20여 년 전부터 생활 사이클계에서 활동하며 ‘사이클 타기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선수 땐 1958년 서울 소공동 앞에서 출발하는 제1회 전국일주 대회부터 4회 대회까지 참가했다. 대한사이클연맹에서 경기이사도 했다. 2006년 한강사이클럽을 만들어 회원들과 함께 질주하고 있다. 그는 20년 전 서울에서부터 전남 해남 땅 끝 마을까지 19시간 30분 만에 질주했다. 그 기록이 전설로 남았다. 당시엔 길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고 지금은 길이 정비돼 있는데도 젊은이들도 20시간을 훌쩍 넘긴다고 한다. 아직도 서울 북악스카이웨이, 남산 등 업힐도 거뜬히 오른다. 그는 70년 넘게 사이클을 타며 건강을 지키고 있다. 정 씨는 “한강사이클클럽 회원이 한때 240명까지 갔었는데 요즘은 분화돼 30~40명 정도 된다”고 했다.

2000년 쯤 다시던 외국인 회사를 그만 둔 윤 씨는 서울 한강공원에 나갔다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보고 아들 자전거를 빌려 타기 시작했다. 정 회장을 만나 한강사이클클럽에서 본격적으로 사이클을 탔다. 윤 씨와 정 회장은 4대강은 물론 제주 일주 등 전국에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투어도 많이 했다.

정 회장은 “(이)성우 형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제 또래인줄 알고 인사를 건넸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한강을 누비는 최고령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마도 국내에서 현재 사이클을 자유자재로 타는 최고령일 것”이라고 했다. 윤 씨는 “성우 형님은 식사도 잘 하신다. 우리보다 많이 드신다. 술도 한잔씩 하신다. 진짜 낼 모레 100세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얼굴 좀 봐라. 주름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이 씨는 “뭐 이렇게 살아보는 것이다. 최후 발악으로…. 달릴 수 없으니 사이클 타고 달린다. 건강해야 움직일 수도 있다. 누워 있다 죽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이 씨는 주로 주말에 장거리 질주를 하고 평일엔 뜻 맞는 사람들 있으면 가끔씩 타고 있다고 했다. 정 회장은 “월수금토일, 주 5일 이상 탄다”고 했다. 사이클 타기 그 자체가 삶이다. 윤 씨는 “평일엔 동네에서 자전거 타고 주로 주말에 사이클 장거리 질주를 한다”고 했다. 이들은 계절에 상관없이 사이클을 탄다. 하지만 이 씨와 윤 씨는 비나 눈이 오면 타지 않는다. 정 회장은 “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탄다”고 했다.
85세 윤재극 씨가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사이클을 타고 있다. 20여년 전 은퇴한 그는 사이클을 타며 노년 건강을 지키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세 사람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전거 인기가 좋아지는 것은 좋은데 너무 위험하게 탄다”고 아쉬워했다. 이 씨는 “뒤에서 ‘가요’ ‘가요’하며 경쟁하듯 타는데 정말 위험하다. 넘어지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고 했다. 정 회장은 “나도 앞 사이클 뒷바퀴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다. 갈비뼈 4개가 부러졌다. 정말 위험하다”고 했다.

세 사람은 입을 모았다.

“뭐 우리 나이에 다른 즐거움이 있나요. 건강하고 가끔 맛있는 것 먹으며 인생을 즐기면 되지…. 사이클은 진짜 좋은 스포츠입니다. 나이 들면 무릎이 안 좋은데 사이클을 타면 오히려 무릎이 좋아집니다.”

특히 정 회장은 “100가지 보약보다 자전거 한대가 더 좋다는 말이 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하는데 자전거를 타면 무릎에도 부담을 주지 않는다. 정말 좋은 스포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몸에 좋다고 고령에 사이클을 바로 타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송홍선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스포츠과학연구실장(52)은 “자전거를 타려면 근력과 밸런스, 운동신경 등을 조화시키는 협응력이 좋아야 한다. 97세에도 탄다는 것은 젊었을 때부터 꾸준히 관리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동아사이클대회 챔피언(1982, 1984년) 출신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60)는 “고령에는 자전거를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자세로 시작해야 한다. 젊었을 때 탔어도 나이 들면 협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조심히 타야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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