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공항 일손 없고, 美는 조종사 부족… 항공대란 1년 더 갈듯[인사이드&인사이트]

변종국 산업1부 기자

입력 2022-07-19 03:00 수정 2022-07-19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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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 인력부족 ‘예고된 혼란’

14일 한 트위터 사용자가 올린 영국 히스로 공항의 모습. 수백 개의 여행용 캐리어가 주인을 찾지 못한 채 공항에 방치돼 있다. 해당 트위터에는 “한 달 넘게 수하물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악몽과도 같은 여행이었다” 등의 답글이 수십 개 달렸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혼란스러운 여행 경험담이 넘쳐나고 있다. 사진 출처 트위터
변종국 산업1부 기자

《 ‘런던 히스로 공항 혼잡에 따라 7월 15일∼9월 11일 KE908 항공편 예약이 마감됐고 추가 예약도 불가능합니다.’

최근 대한항공의 공지 내용이다. 기존 예약자를 제외하면 9월 11일까지 영국 런던의 히스로 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오는 KE908 항공편은 이용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좌석이 일찌감치 다 팔렸다는 뜻이 아니었다. 히스로 공항의 탑승객 제한 탓이었다.

이런 초유의 사태는 런던 히스로 공항의 인력 부족에서 비롯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당시 히스로 공항도 여느 공항들처럼 인력을 대폭 줄였다. 공항 내 발권이나 수하물 처리 능력이 올 들어 갑자기 늘어난 여객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됐다. 히스로 공항은 결국 각국 항공사에 운항 취소나 탑승객 제한을 걸었다. 대한항공에도 운항 취소를 요구했다. 국토교통부까지 나서 가까스로 운항 취소는 막았지만, 승객을 70%까지만 채우기로 합의해야 했다. 에미레이트항공은 14일 “히스로 공항의 무능과 무대책으로 인해 ‘에어마겟돈’(에어포트+아마겟돈) 상황에 직면했다. 비용과 혼란을 항공사와 여행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 성명을 내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혼란이 런던만이 아닌 전 세계적 상황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로 굶주리던 글로벌 항공업계가 갑작스러운 폭식에 심한 복통을 앓고 있다. 》


○ 혼란 그 자체인 세계 공항들

최근 네덜란드 스히폴 공항을 방문한 서모 씨(34)는 “전쟁이 난 줄 알았다”고 했다. “공항에서 지체가 많이 된다고 해 출발 4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발권에만 두 시간, 보안 검색에도 1시간 반이 더 걸려서 탑승 못 할 뻔했어요. 직원에게 항의하는 사람, 바닥에서 자는 사람, 전전긍긍하는 사람 등 난리더라고요.”

온라인엔 유럽이나 미국 공항 경험담이 줄을 잇고 있다. “히스로 공항에 수하물(캐리어) 수백 개가 쌓여 있다” “지옥이 따로 없다” 같은 목격담부터 “짐을 기내에 들고 타라” “유럽 여행은 육로를 이용하라” 등의 조언까지.

1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1∼10일 벨기에 브뤼셀 공항에서는 항공편 72%가 지연됐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헝가리 부다페스트, 프랑스 샤를드골 등 유명 공항의 연착률도 60%를 넘었다. 4월 1일∼6월 30일 네덜란드 스히폴 공항에선 1만4000편의 항공편이, 영국 히스로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선 8000건 이상의 항공편이 취소됐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공항도 항공편 취소와 연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CNN에 따르면 5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뉴어크 리버티 공항, 라과디아 공항의 항공편 취소 비율은 7%를 넘는다. 비행기 연착률이 30%를 상회하는 공항도 시카고 미드웨이 공항, 올랜도 공항, 존 F 케네디 공항 등 5개나 됐다.

한 유럽 항공사 임원은 “일손이 너무 부족해 어제까지 일하던 직원이 오늘 너무 힘들다며 그만두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하물 분실에 따른 항의도 많다. 지연도 비일비재하다. 항공사가 손쓸 방도가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 조종사가 없어 뜨지 못하는 미국 비행기

미국은 조종사 부족이 부각되고 있다. 지난달 미국에서는 하루 수십∼수백 건의 항공편이 취소됐다. 조종사가 없다는 이유였다. 아예 노선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미국 아이오와주 더뷰크 지역 공항에 유일하게 취항하던 아메리칸항공은 9월부터 노선 운항을 중단하기로 했다. 조종사 부족으로 미국 지방 공항 수십 곳의 운항 일정이 30∼50% 줄었다는 조사도 있다.

스콧 커비 유나이티드항공 최고경영자는 “대부분의 항공사가 조종사 부족을 겪고 있어서 항공편을 얼마나 제공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면서 “최소 5년 동안 조종사 부족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말라키 블랙 미국 지역항공사연합 대표는 “들어오는 조종사보다 나가는 조종사가 더 많다”며 “항공기 조종사는 자격증 취득이 어려운 데다 훈련비용도 비싸 바로바로 수급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미국 내에서는 조종사 채용 조건을 완화해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력 기준을 낮추고, 훈련 시간을 단축하며, 훈련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하자는 등이다. 올해만 미국에서 5700여 명의 조종사가 은퇴할 예정이다. 조종사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정년을 65세에서 67세로 연장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 부메랑으로 돌아온 인력 조정

공항과 항공사들의 인력 부족은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경영상 어려움을 겪던 회사들은 희망퇴직이나 해고로 인력을 대폭 줄였다. 임금이 줄어들자 스스로 항공업계를 떠난 직원들도 많았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항공사와 공항의 경우 코로나19 기간 내 각 사별로 10∼40% 정도 인력을 줄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객 수요가 너무 빨리 회복됐다는 ‘해명 아닌 해명’도 나오지만 업계가 이런 인력 부족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코로나19 이후 여객 수요가 늘면서 지상 처리 작업에서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내 공항이나 항공사들에서 상대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여행 수요가 아직은 코로나19 이전의 25%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이나 미국은 단시간 내 80% 이상으로 가파르게 수요가 회복하면서 수용 능력 부족이 더 두드러졌다.

한편으로는 고용유지 지원금 덕분이라는 얘기도 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관계자는 “항공업계가 고용유지 지원 대상이 돼 인력 이탈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며 “다만 발권이나 청소, 수하물 처리, 콜센터 등의 인력은 코로나 이전보다 20%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 업계 정상화 1년 이상 걸릴 것

항공업계는 인력 부족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로빈 헤이스 제트블루항공 최고경영자는 “앞으로 2, 3년이 지난 후에야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항공업계의 현재 인력 부족은 임금 상승을 야기하고, 이것이 추가적인 인력 채용을 방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고임금 일자리가 많아지면서 복잡하고 힘든 항공업계를 기피하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아크바르 알 바케르 카타르항공 대표는 “재택근무가 사람들의 습관을 바꿔 놨다. 사람들과 실제로 마주하는 (항공)산업으로 갈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한 탓에 “항공업계는 언제든 고용 불안에 시달릴 수 있다”는 이미지를 준 것도 고용 회복 속도를 늦추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항공업계는 결국 각국 정부가 나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윌리 월시 IATA 사무총장은 “각국 정부가 비전문적이고 비협조적으로 나오는데 어떤 항공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겠느냐”며 “정부의 국경 봉쇄 등 잘못된 관리로 인한 비용은 상당했다. 경제는 파괴되고 공급망은 붕괴했으며 일자리는 사라졌다”고 날을 세웠다.



변종국 산업1부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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