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골프채, 日서 사면 10만원 싸”… 强달러에 해외직구 지형 요동

김도형 기자 , 신지환 기자

입력 2022-07-18 03:00 수정 2022-07-18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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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달러 시대]
해외직구-투자에도 변화 바람



최근 미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골프 셔츠를 직구(직접구매)하려던 직장인 김모 씨(36)는 국내 쇼핑몰로 발걸음을 돌렸다. 셔츠 가격이 80달러(약 10만6000원)인데 급등한 원-달러 환율과 배송비를 감안하면 국내 판매가보다 고작 1만 원 정도 저렴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가격 차이도 별로 없는데 바다 건너오길 기다리느니 배송도 빠르고 반품도 쉬운 국내 쇼핑몰을 택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20여 년 만에 찾아온 ‘슈퍼 달러’가 국내 소비자들의 해외 직구와 투자 지형을 뒤바꾸고 있다. 달러당 1300원대 환율이 일상이 되면서 해외 쇼핑몰 대신에 국내로 유턴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반면 ‘역대급 엔저’에 일본은 인기 직구 시장으로 떠올랐다. 엔화가 쌀 때 사두려는 투자자가 잇따르면서 엔화 예금과 펀드에도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 “미국 골프채, 일본이 10만 원 더 싸”

17일 BC카드 신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BC카드 고객들이 해외 직구로 결제한 금액은 1년 전에 비해 9.6%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결제 건수도 1.4% 줄었다. 올 들어 환율 상승세가 계속되면서 해외 직구가 갖는 가격상 장점이 줄어든 탓이다.




특히 가장 인기 있는 직구 시장인 미국의 결제 건수는 1년 새 18.3% 급감했다. 지난해 말 1180원대를 오가던 원-달러 환율이 올해 4월 1250원을 넘어선 데 이어 최근 1300원대가 굳어졌기 때문이다. 15일엔 13년 만에 가장 높은 1326.1원까지 치솟았다.

그동안 싼 가격과 무료 배송으로 인기를 끌었던 중국 직구도 시들해지고 있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 결제 건수는 1년 전보다 14.8% 감소했다. 원-위안화 환율이 올 초 187원대에서 최근 195원 선으로 뛴 데다 중국의 봉쇄 조치로 배송길이 막힌 영향이 크다.

이와 달리 일본 직구는 ‘나 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40만 원대 미국 브랜드 골프채를 미국에서 직구하려던 최모 씨(36)는 환율을 계산해 보고 일본을 택했다. 최 씨는 “환율을 따져 보니 미국보다 일본에서 사는 게 10만 원이나 싸다”며 “일본 직구는 언어 장벽도 있고 배송도 불편할 때가 있지만 이제 가격 메리트가 더 크다”고 말했다.

올 초 100엔당 1030원대였던 원-엔 환율은 현재 5년 만에 가장 낮은 950원대로 떨어졌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도 1998년 이후 24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최 씨 같은 소비자가 늘면서 상반기 일본 직구 결제 건수는 1년 새 21.3% 급증했다.
○ “미리 엔화 환전하거나 엔화 예금 가입”
엔저 상황이 계속되자 일본 여행이나 투자를 위해 엔화를 미리 사두려는 ‘엔테크’(엔화+재테크) 움직임도 활발하다. 직장인 박모 씨(35)는 최근 10만 엔을 환전해 현금으로 갖고 있다. 그는 “일본 개인 여행이 허용되면 쓰려고 미리 바꿔 놨다”며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더 하락하면 투자를 겸해 더 사놓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현재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6068억 엔(약 5조8000억 원)으로 올 들어서만 1071억 엔 이상 늘었다. 국내에서 손쉽게 엔화 직접 투자를 할 수 있는 ‘타이거 일본엔선물 상장지수펀드(ETF)’도 올 상반기 개인들이 90억 원어치 넘게 사들였다.

서울 중구 명동에서 환전소를 운영하는 김모 씨(40)는 “엔화 투자를 문의하는 손님이 늘었다”며 “최근 1억 원을 환전하겠다고 찾아온 사람이 있을 정도로 환전소에 엔화가 부족한 형편”이라고 했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위원은 “엔화 가격이 충분히 떨어졌다고 보고 매수에 나선 개인과 수입 대금 등을 미리 준비해두는 기업들이 많다”며 “다만 당분간 엔화 약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여 과도한 투자는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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