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작가[영감 한 스푼]

김민 기자

입력 2022-07-09 11:00 수정 2022-07-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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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를 뒤집어 보니
화려한 세계가 나타났다


지금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는 모든 것이 규칙아래 질서 정연하게 정리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이 규칙들이 우리의 삶과 일상을 보호해 주기를 기대하며 살아가죠.


그러다 어느 순간 혼란이 나타나면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를테면 최근 도심 곳곳에 ‘러브버그’라는 벌레가 등장한 것처럼 말이죠. 낯선 존재에 대한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은 이내 분노로 바뀌고, 이 벌레를 빨리 방역 조치로 없애 달라는 민원으로 이어집니다. 도시의 규칙이 빨리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겠지요.


이런 벌레의 등장은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도시에는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매일 사람들은 규칙을 조금씩 어기고, 그 중 어떤 사람은 경찰서를 드나 들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냉정히 따져본다면, 도시는 표면적으로는 규칙과 질서에 보호 받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이면에 불확실한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요? 규칙과 질서라는 건 혹시 우리의 믿음에 불과하다면 어떨까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과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공급망 위기와 인플레이션, 여기다 기후 위기에 에너지 가격 폭등까지 우려되고 있습니다. 사실 5년 뒤 세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잘 상상되지 않는 격동기 앞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변화의 파도 앞에 과연 과거의 질서와 규칙들이 유지될까 불안감이 생긴다면 과한 걱정일까요?


서두의 이야기가 장황했습니다. 아마도 오늘 이야기 할 작가가 독일 출신의 현대미술가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난 번 레터에서 다루었던 네오 라우흐 기억하시나요? 라우흐처럼 독일 현대 미술의 주요 작가로 꼽히는 다니엘 리히터의 작품들이 한국을 찾았습니다. 그의 예술 세계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카오스를 뒤집어 보니, 화려한 세계가 나타났다?
다니엘 리히터: 나의 미치광이웃

1. 독일 출신 작가인 다니엘 리히터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지금까지 믿었던 가치관이 한 순간에 붕괴되는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자신이 작가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말한다.

2. 작가는 20대였던 1980년대에 네오나치, 파시즘에 맞서는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했었고 이 때 음악이나 정치운동을 위한 디자인을 하다 30세에 작가가 되기 위해 미대에 진학했다.

3. 자신이 처한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흡수한 작품들은 현대사의 여러 사건들을 기성 사회가 규정한 의미를 깨고 다른 관점에서 보도록 해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 화려한 색채…파티 장면이 아니라고요?

다니엘 리히터, 피녹스(Phienox), 2000년, 캔버스에 유채, 252x368cm


다니엘 리히터라고 하면 이 작가를 아는 사람 대부분은 위와 같은 스타일의 그림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그림의 자세한 내용을 보기 전에 색채와 선이 뿜어내는 분위기를 한 번 읽어볼까요?


가장 인상적인 것은 화려한 색채입니다. 그런데 이 색채들이 흰 바탕 위에 빛나는 태양처럼 쨍한 컬러가 아니라는 것이 독특합니다. 오히려 검은 바탕을 밀어내는 네온 사인 같은 색채가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색채에 익숙해지고 나면 사람 형상이 보입니다. 가운데 가장 빛나는 흐물흐물한 형체의 사람이 담을 넘으려는 것처럼 보이고, 주변 사람들은 그를 돕는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비밀 파티를 하러 가기 위해 담을 넘는 펑크족일까요?


다니엘 리히터, 피녹스(Phienox), 2000년, 캔버스에 유채, 252x368cm

그러기엔 배경의 검은 기운이 불온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볼수록 즐겁고 화려한 파티보다는 음침한 비밀 모임이나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데요. 사람들은 작가가 독일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해, 이 그림을 보고 장벽 붕괴를 떠올렸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작가가 밝힌 이 그림의 모티프는 충격적이게도 1998년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케냐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사건입니다. 이 테러를 주도한 조직은 바로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으로 3년 뒤 9.11 테러라는 끔찍한 사건을 일으키게 됩니다.


1998년 탄자니아 다르에르살람 미국 대사관 테러 사건

작가는 두 사건이 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탄자니아와 베를린에서 일어난 각 사건은 공고해 보였던 구조가 붕괴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냉전의 종말과 소련의 해체를 의미한다면, 탄자니아 테러는 미국이 주도해 온 패권주의가 서서히 내리막길을 향해가며 다극 체제로 향해온 세계사의 흐름을 보여준다고 작가는 본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 모습을 왜 이렇게 화려하게 그린 걸까요.

○ 가치가 충돌하는 순간을 새롭게 보다


‘피녹스’ 작품만 본다면 다니엘 리히터가 특정한 정치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작가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작가는 사회와 정치적 이벤트에서 이미지를 끌어오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어떤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좌, 우를 가리지 않고 가치가 충돌하는 현장 자체를 소재로 삼습니다.


이를테면 전시장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작품, ‘눈물과 침’(2021)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다리를 잃은 독일 소년병 두 명이 나란히 걸어가는 장면을 모티프로 합니다.


다니엘 리히터, 눈물과 침, 2021년



제2차세계대전 당시 목발 짚은 독일 소년병(엽서 일부)


또 초기 작품 ‘흰 고릴라는 갈 길을 간다’(2000)의 제목에서 흰 고릴라는 1966년 생포돼 스페인의 동물원에서 살아야 했던 알비노 고릴라 ‘니에베’(Nieve)를 암시합니다. 그리고 ‘피녹스’ 옆에 걸린 또 다른 대형 작품 ‘투아누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도시 토우누스(taunus) 오피스 지역의 공원에서 경찰이 노숙자와 마약 중독자들을 단속하는 장면을 포착한 잡지 사진을 18세기 말 프랑스 회화의 방식으로 그려내죠.


다니엘 리히터, 투아누스, 2000년


이렇게 우리가 평소라면 생각하지 못할 전혀 다른 시공간의 시각 언어를 혼합시킨 결과물이 작품에 드러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심코 사진이나 뉴스로 접했던 사건들이 완전히 색다른 관점에서 보이기 시작하는데요.


예를 들어 위 작품을 볼까요. 먼저 단순히 경찰이 공원을 단속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본다고 상상해보겠습니다. 그러면 공원이 깨끗해져서 다행이라고 안심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고, 혹은 저 공원에는 가지 말아야 겠다는 불안함이 들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나와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무심코 지나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작가는 이 장면에 온갖 화려한 색채와 선을 가져와 그것을 주목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단속’ ‘청소’ ‘질서와 규칙’의 관점에서 당연히 없애야 할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다양한 삶들을 되살려 내려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 삶은 군인이기 이전에 소년이었던 어느 남자일수도, 동물원에 갇히기 전 숲을 누볐던 고릴라일 수도 있겠지요.


○ 끊임없이 단순화 되어버리는 세계
이해를 돕기 위해 리히터의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를 더 보겠습니다.(이번 전시에는 출품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 리히터, Tarifa, 2001년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될 무렵인 2001년에는 이것을 동화 속 이미지나 ‘아라비안 나이트’의 양탄자를 타고 나는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환상적인 색채가 그런 역할을 했겠지요.


그런데 난민 위기가 국제적인 이슈가 된 지금, 많은 사람들은 ‘보트 피플’을 떠올립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스페인 남부 항만도시 타리파로 향하는 북아프리카 난민을 그리고 있습니다. 만약 난민을 사진으로만 본다면?


아마도 고향을 떠난 불쌍한 사람이라거나, 질서를 지키지 않는 불법 체류자 둘 중 하나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화려한 색채를 만나자 이들은 동화속 인물이 됩니다. 사실 난민도 다 같은 난민이 아니며, 어떤 사람은 새로운 땅에서 야심찬 기회를 꿈꾸며 떠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리히터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규정하고 단순화하는 세계에서, 그 정의를 색채의 폭탄으로 깨부수며 모든 것을 달리 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 리히터, 흰 고릴라는 갈 길을 간다, 2000년



이렇게 예술가가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관점을 한 번에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끊임 없이 모든 것을 규정지어서 이해하며, 그것이 우리의 삶을 편하게 해주는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보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는 걸 떠올린다면, 조금은 생각을 달리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작가의 관점을 보는 데 참고가 될 수 있도록 그의 2020년 인터뷰 일부를 발췌해 소개합니다.



Q. 20대엔 무엇을 했나?


A. 익사이팅하고 꽉 찬 삶을 살았다. 많은 책을 읽었고 정치적으로도 활발했다. 함부르크에서 네오 나치의 폭력에 대항하면서 결성된 Autonome Antifa의 멤버였다. 1980년대에 함부르크와 베를린에서 대규모로 일어났던 스쿼터(무단점거) 운동으로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형성되던 때였다.


Q. 암스테르담에서도 그런 운동이 있었다.


A. 암스테르담에도 많은 친구가 있었다. 그 때 스쿼터 운동으로 일종의 커뮤니티가 생겼다. 무단 점거한 공간이 여성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되기도 하면서, 페미니즘 세대가 형성되는 역할도 했다. 그곳에서 콘서트도 열리고 온갖 종류의 정치 운동도 생겨났다.


(…)


Q. 공산주의나 막스-레닌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나?


A. 아니다. 서구 사회에서 각자의 규칙에 따라 살고 싶었다. (…) (베를린 장벽 붕괴 이전에도) 국가로서 소련이 좋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Q. 정치적 관점에서 하고 싶었던 게 무엇인가?


A. 펑크록이다.

저는 이 인터뷰를 보면서 리히터가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결국 우리의 도시를 지배하고 있다고 믿었던 규칙과 질서를 걷어낸 이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가 스쿼터 운동에 참여하며 보았던 카오스 속의 어떤 진실을 시각 언어로 드러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면서요.


흥미로운 것은 그의 이러한 모호한 시선이 컬렉터들에게 일리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며, 주요 작가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들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그 결과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현대사의 이벤트를 작가만의 독창적인 관점에서 풀어낸 작품들이 고유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쪽에 베팅한 누군가가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다니엘 리히터, 헤이 조, 2011년

오늘 레터는 지금 우리와 같은 시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현대미술가를 다루었습니다. 현대 미술이 갈수록 더 깊은 고민과 아이디어를 담다보니 그 맥락을 설명하는 데도 조금 무거운 이야기가 함께 들어갈 수 밖에 없었는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 앞에 직접 섰을 때 내 마음 속에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는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이 사이즈가 큰 작품들이어서 사진으로 볼 때와 직접 볼 때 느낌이 다를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한 번 직접 감상해보시고, 이야기 나누어 주세요.


전시 정보

다니엘 리히터: 나의 미치광이웃

2022.6.23 ~ 2022.9.28

스페이스K 서울

작품수 2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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