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기억을 가로질러 건너가면… 추억 속의 네가 기다리고 있을까[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글·사진 영주=전승훈 기자

입력 2022-07-09 03:00 수정 2023-06-23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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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 있는 ‘선비 고을’ 영주
정겨움 한폭 놓인 외나무다리
서원과 테마파크로 보는 선비문화
예술혼과 피란민들의 보금자리


경북 영주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외나무다리는 오롯이 혼자 건너는 외로움의 길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렇게 마음이 굽은 듯 외나무다리를 건너거들랑 물너울에 마음을 뺏기지 말아야 한다’(위초하의 시 ‘무섬 외나무다리에 서면’)

《경북 영주는 소백산 자락에 둘러싸인 은자(隱者)의 땅이다. 산 깊은 골에 맑은 물소리와 글을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선비의 땅이다. 조선 최초의 서원이자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에서는 지금도 소나무 숲속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린다. 휘돌아 가는 강물에 둘러싸인 무섬마을은 17세기 병자호란 후 출사를 단념한 선비들이 충절과 은자의 정신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해 생겨난 마을이다. 그런가 하면 6·25전쟁 이후에는 피란민들이 모여들었다.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은 풍기인삼과 풍기인견을 지역의 명물로 만들었다. 마을 공동체가 살아 있는 문화도시인 영주에서 품격 있는 선비문화를 체험하는 여행을 떠나 보자.》
○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외나무다리
이른 새벽, 밤새 내린 비가 그치고 나니 새소리에 잠을 깼다. 새벽 공기에 강물 위에는 옅은 안개가 끼었다. 금빛 모래가 펼쳐진 들판에는 느릿한 강물이 곡선을 그린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노래가 저절로 떠올려지는 풍경이다.

강물이 산에 막혀 물도리동을 만들어낸 영주의 무섬마을. 무섬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란 뜻이다. 행정지명은 수도리(水島里)다. 앞은 물로 가로막혀 있고 뒤는 산으로 둘러싸여 섬처럼 고립된 마을이다. 풍수지리상 ‘물 위에 핀 연꽃(蓮花浮水)’ 또는 ‘매화 떨어진 자리(梅花落地)’로 풀이되는 길지다. 17세기에 박수가 병자호란 후 출사를 단념하고 이곳에 들어와 만죽재를 짓고 살면서 생긴 집성촌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이 마을에 들어가려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했다. 널찍한 콘크리트 다리(수도교)가 놓인 후에도 S자 모양으로 생긴 외나무다리(약 150m)는 그대로 남아 있다. 반원형으로 자른 나무를 대충 다듬은 뒤 얕은 물길 위에 세운 것이다. 폭이 20∼30cm에 불과한 외나무다리를 건너면 짜릿한 스릴이 넘친다. 가끔 가다가 삐걱대고, 덜커덩거리는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행여나 물여울에 마음을 뺏겨도 안 된다. 물멀미가 나 균형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마주 오는 사람과 만나면 한 사람이 앉고, 그 위를 타고 넘어갔다고 한다. 지금은 중간중간에 ‘잠깐 비켜다리’를 만들어 놔 마주 오는 사람과 인사하고 대화도 나눌 수 있다.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는 드라마, 영화, 광고 촬영지가 되기도 하고,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돼 명소가 됐다.

다리를 건너서 들어간 무섬마을은 기와집과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길이 정겹다. 돌로 쌓은 담장에는 접시꽃이 한창이다. 초가집에는 ‘까치구멍집’이라는 설명이 쓰여 있다. 지붕의 용마루 양쪽에 구멍이 뚫려 있는 미음(ㅁ)자형 집이다. 까치구멍은 난방이나 조리 시 발생하는 연기를 배출하고, 낮에는 빛을 받아들이고 통풍과 습도를 조절하는 숨구멍 역할을 한다고 한다. 무섬마을에서 까치구멍집, 기와집 중에 골라서 민박을 해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선비문화 체험할 수 있는 선비세상
소수서원 강학당에서 글을 읽는 선비들
무섬마을에서 나와 발걸음을 소수서원으로 옮긴다.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최초의 성리학자인 회헌 안향 선생(1243∼1306)을 기리고자 세운 서원이다. 소수서원 입구에 들어서니 울창한 소나무가 반긴다. 서원 앞 죽계천에는 퇴계 이황이 터를 닦고 ‘취한대(翠寒臺)’라 이름 붙인 정자가 그림처럼 놓여 있다. 죽계천에는 주세붕이 쓴 ‘경(敬)’ 자가 새겨진 바위도 있는데, 그 앞에서 검은 가마우지 한 마리가 놀고 있었다. 서원 안으로 들어가니 장맛비 떨어지는 처마 너머로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 강학당 안에는 머리에 탕건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어르신 두 명이 있었다. 황영회 씨(72)는 “소수서원을 찾는 방문객에게 선비정신을 보여주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조를 짜서 강학당에서 글을 읽는다”고 말했다.

선비문화를 체험해볼 수 있는 영주 선비세상 테마파크.
소수서원 인근에는 영주의 선비문화를 현대적으로 되살린 테마파크도 조성됐다. 9월 3일 문을 여는 K문화 테마파크 ‘선비세상’이다. 한옥, 한복, 한글, 한국 음악, 한지, 한식촌 등 6개 테마별 전시관을 갖췄다. 선비의 이상향을 주제로 한 몰입형 미디어아트와 한지 뜨기 및 다도 체험, 한글놀이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영주도령의 장원급제 행렬을 18m 규모로 구현한 ‘오토마타’ 인형극이 볼만하다. 부지 면적만 96만974m². 영주시는 사업비 1700억 원을 투입해 9년 만에 선비세상을 완공했다.

공식 개관을 앞두고 22일부터 8월 15일까지 매주 토, 일요일과 광복절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료 임시 개방을 한다. 선비세상 퍼레이드 공연과 ‘힙(hip)선비’ 크루의 풍류한마당, 뮤직콘서트, 저잣거리酒페스티벌夜, 한스타일 플리마켓 등 다채로운 이벤트도 열릴 예정이다.
○마을공동체가 살아 있는 문화도시
영주 148아트스퀘어에서 열린 민경인 재즈피아니스트의공연. 이현우 씨 제공
지난달 24일 영주시내 경북전문대 안에 있는 148아트스퀘어에서는 이여운 작가가 수묵화로 그린 철원 노동당사 그림 앞에서 민경인 재즈피아니스트의 공연이 펼쳐졌다. 100여 명의 관객들은 공연이 끝난 후에 민경인, 이여운, 권무형 작가와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은 한때 연초제조창이었던 담배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역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예술 창작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 공연장(117석)을 비롯해 전시장, 연습실, 북카페, 창작작업실을 갖추고 있다.

옛 영주역 주변의 골목길과 중앙시장, 365시장, 후생시장 근처에는 영주 근대 역사 문화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그중에서 영주1동 두서길 일대 ‘관사골’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영주역에서 근무하던 철도 직원들이 거주하던 관사가 모여 있는 마을. 골목길 곳곳에는 담장 가득 ‘은하철도 999’가 그려져 있는가 하면, 아예 커다란 기차 조형물이 설치된 벽도 있다. 마을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 부용대에서는 소백산 능선의 아름다운 풍경과 영주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이 있는 부석사 인근은 ‘콩 마을’로 불린다. 영주의 특산물인 ‘부석태’라는 콩이 나기 때문이다. 콩세계 과학관에 가면 부석태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고, 콩마을에는 부석태 콩타령을 부르는 ‘콩할매 합창단’이 유명하다. 콩할매 합창단과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모둠북 타악팀 ‘락&무’는 폐교를 리모델링한 영주 소백예술촌에서 연습과 공연을 한다. 소백예술촌은 손진책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 자료와 비품이 보관돼 있고, 연습실과 의상실 등을 갖추고 있다.
○난세를 피해 오는 곳
6·25전쟁 직후 영주 풍기읍에는 북한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몰려들었다. 민초들이 난세에 몸을 보전할 최적지는 ‘교남양백(嶠南兩白·영남의 소백과 태백 사이)’이라는 ‘정감록’에 예언된 말을 믿고 온 피란민들이다. 이들 중엔 명주의 본고장인 평안도 영변 덕천 등지에서 남하한 직물공장 경영자와 기술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나무에서 실을 뽑은 인견사를 원료로 한 인견직물을 짜기 시작했다. 한때 풍기에는 인견을 짜는 집이 2000여 가구가 넘었다고 한다. 풍기인견은 시원하고 정전기가 생기지 않아 ‘에어컨 이불’ ‘냉장고 섬유’로 불리며 요즘 같은 끈적끈적한 여름철에 인기 만점이다.

풍기인삼이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는 데에도 개성과 황해도에서 앞선 재배 기술을 익힌 피란민들의 영향이 크다. 전국 냉면 마니아들의 순례지로 꼽히는 풍기읍내 정통 평양냉면집 ‘서부냉면’도 피란민들 덕분에 생겨난 곳이다.

영주에는 묵집도 많다. 그런데 묵집에서는 김치찌개와 비슷한 ‘태평초’라는 독특한 묵 메뉴가 인기다. 잔칫날 먹고 남은 메밀묵과 돼지고기, 김치를 넣어 끓여 먹은 찌개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먹고살기 힘들던 시절, 어머니께서 묵을 쑤어 배고픈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던 영주의 향토음식이다.




글·사진 영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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