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92시간 비현실적이라지만… “장시간 근로 관행 속 제도 남용 방지해야”

주애진 기자

입력 2022-07-05 03:00 수정 2022-07-05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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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 개편안 현장 반응
근로일 사이 휴식-가산수당 등 고려
고용부 “주 92시간 실현 불가” 일축
OECD 평균 대비 긴 근로 시간 여전


게티이미지코리아 제공

‘앞으로 주 92시간 일하는 게 가능해진다는데 사실인가요.’

지난달 23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주 52시간제 개편을 포함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을 발표한 뒤 인터넷에서는 이 같은 우려 섞인 질문이 쏟아졌다. 정부가 발표한 근로시간제도 개편 방향의 핵심은 현재 ‘주(週)’ 단위인 연장 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월(月)’ 단위 등으로 확대해 주 52시간제를 더 유연하게 운영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과 노동계에서는 주 92시간 근무까지 가능해질 것이라며 반발했다. 결론적으로 주 92시간 근무는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을 전제로 해야 가능하다. 그럼에도 근로자들의 걱정이 끊이지 않는 배경에는 선진국 대비 일하는 시간이 유독 긴 한국의 노동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글로벌 스탠더드”라지만 현장은 우려

4일 고용부에 따르면 현행 근로기준법은 1주일에 정규 근로시간 40시간 외에 당사자 간 합의를 전제로 12시간까지 연장 근로를 허용한다. 만약 연장 근로시간 관리를 월 단위로 한다면 한 달을 평균 4.3주로 계산해 연장 근로시간을 월간 약 52시간 내에서 맞추면 된다. 이를 두고 한 달 치 연장근로 52시간을 1주일에 몰아서 하면 정규 근로 40시간까지 총 92시간을 일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실현 불가능한 계산”이라고 반박했다. 주 6일 근무라고 가정해도 92시간 일하려면 하루 15시간 넘게 일해야 한다. 근로일 사이에 11시간 이상의 연속 휴식을 주는 등 근로자 건강 보호 조치가 병행될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도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나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사용할 때 11시간 이상 연속 휴식을 보장하도록 돼 있다. 또 연장 근로를 시키면 통상임금의 50%를 가산수당으로 줘야 한다. 따라서 연장 근로 관리 단위가 확대돼도 기업들이 무분별하게 이를 늘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고용부는 선진국에서 우리처럼 주 단위로 초과근로를 관리하는 방식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일본은 연장 근로를 월간 45시간, 연간 360시간으로 제한한다. 독일은 6개월 또는 24주 이내 하루 평균 근로시간이 8시간을 넘기지 않을 때만 하루 10시간까지 일하는 것을 허용한다. 영국은 연장 근로를 포함해 1주일에 48시간 넘게 일하지 못하지만 노사 합의로 예외를 적용한다. 독일과 영국 모두 연장 근로를 포함한 주간 근로시간은 최대 60시간이다. 미국은 연장 근로 한도를 따로 두지 않는다. 이를 강조하듯 이 장관은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 브리핑 때 여러 차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용어를 썼다.
○ 확실한 건강권 보호로 노동계 설득해야

하지만 한국은 장시간 근로 관행이 여전해 선진국의 제도와 그대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2018년 주 52시간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지난해 7월 전면 시행하는 등 근로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그럼에도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2020년 기준 1927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582시간)을 훌쩍 웃돈다. 관련 통계를 제공하는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2326시간), 코스타리카(2048시간) 다음으로 많다. 독일(1284시간), 프랑스(1320시간), 일본(1621시간) 등 선진국과의 격차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주 52시간제를 전면 시행한 지 1년 만에 근본적인 운영 방식을 고치겠다고 나서자 노동계의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10월까지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가 구체적인 근로시간제도 개선 방안을 만들 때 확실한 건강권 보호 조치와 제도 악용을 방지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노동계의 우려를 해소하고 노사가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사 합의 방식을 어떻게 규정할지가 중요하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거나 노조가 없는 영세 사업장에서는 근로자의 협상력이 낮아 사업주가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시간의 배분 문제는 노사 자율에 맡기되 근로자의 의사가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담보하는 절차를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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