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금리를 내리는 나라가 있다고? [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이스탄불=김성모 기자

입력 2022-07-03 08:00:00 수정 2022-07-03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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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17)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금리를 올리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지난달 17일 단행했다. 이달에도 0.5¤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영국 중앙은행(BOE)도 기준금리를 1.25%로 0.25%포인트 올렸다. 스위스 중앙은행(SNB)은 무려 15년 만에 금리를 0.5%포인트 끌어올렸다.

신흥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멕시코는 최근 기준금리를 7.75%로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했다. 브라질은 11번 연속으로 금리를 올렸다. 지난해 3월 2.0%였던 기준금리를 11%포인트 넘게 인상했는데, 더 올리겠다고 밝힌 상태다. 아르헨티나의 현재 기준금리는 연 52%나 된다. 최근 3%포인트를 한 번에 올려버렸다. 전 세계가 물가를 잡기 위해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 있다. 은행을 찾는 것이 치과에 가는 것만큼이나 무서울 것 같다.

그런데, 홀로 ‘백스텝’을 밟고 있는 국가가 있다. 바로, 터키(튀르키예)다. 터키는 지난해 9월부터 꾸준히 기준금리를 인하해 당시 19%였던 기준금리가 14%까지 떨어진 상태다. 최근 6개월 동안은 금리를 동결했다.

미국 등 주요 국가들과 금리가 반대로 가다보니 터키 화폐(리라화) 가치는 연일 떨어졌고, 인플레이션은 치솟았다. CNBC방송에 따르면 5월 터키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73.5% 상승했다. 베네수엘라(222.30%), 수단(220.70%), 레바논(206.24%), 시리아(139.0%), 짐바브웨(131.7%) 다음으로 높았다.

터키인들은 현재 물가 수준을 얼마나 체감하고 있을까. 터키 정부는 왜 금리를 올리지 않고 있는 것일까. 지난달 9일 이스탄불에 직접 가봤다.


일러스트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 “미사일만큼 물가가 무섭다”
도착 후 공항 바로 앞 모스크(이슬람 예배당) 둥근 지붕부터 눈에 띄었다. 곳곳에서는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가 퍼졌다. 도심으로 이동하자 보스포러스 해안에 정박한 페리가 보였다. 유럽과 아랍의 교차점에 있는 이스탄불을 실감했다. 이스탄불은 중동의 서쪽 끝에 자리해 유럽과 아랍을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한다.

서민들의 물가 체감을 느끼기 위해 이스탄불에서 서쪽으로 10㎞ 떨어진 에센레르를 찾았다. 이곳은 중·저소득층이 주로 살고 있는 지역이다. 도심과 다르게 대부분의 여성이 히잡을 쓰고 있었고, 외국인이 낯설었는지 기자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출발 전, “인터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현지인의 조언이 있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친 이슬람’ 정책으로 신앙심이 강한 서민들의 표심을 꽉 잡고 있다고 했다. 고(高)물가로 힘들어도 싫은 내색을 안 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공공장소에서 금지됐던 히잡을 쓰게 허락하는 등 임기 동안 이슬람주의를 강화해왔다.

예상외로 현지인들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 각종 원자재값부터 월세, 인건비, 전기세 등 안 오른 게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에센레르에서 20년째 찻집을 운영 중인 이미라 티피티크 씨(53)는 반년 전 225리라(1만6800원)에 샀던 5kg짜리 찻잎이 현재 500리라(3만7400원)까지 올랐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차 한 잔 가격을 2.5리라(187원)에서 3리라(224원)로 0.5리라(37원)만 올렸다. 그는 “지난해보다 고객이 70%나 줄어 가격을 더 올릴 수 없었다”며 “지금도 모은 돈을 써가며 가게를 열고 있다. 월세를 1년 사이 2번이나 올려줬는데 또 인상 요청을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주마 픈드크자데 시장에서 가게를 하는 에르도안 벨칸 씨(57)도 “가게 운영비가 1년 만에 3배가 됐다”며 “지난해 175리라(1만3000원)였던 레몬 25kg이 현재 1016리라(7만6000원)다. 내일은 얼마일지 모른다”고 했다. 이 시장 역시 이스탄불 서민들이 주로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 식당 주인은 “반년 전 7000리라(약 52만3000원)였던 월 전기요금이 지금은 1만9000리라(약 142만 원)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베이자 쇤메즈 씨(25)는 스마트폰에서 한 마트의 카이막(우유로 만든 크림) 200g 가격을 보여줬다. 지난해 10월 29일 9.75리라(728원)였던 이 제품의 가격은 11월 3일 10.9리라(813원), 12월 10일 15.9리라(1186원), 올해 3월 10일 14.75리라(1100원), 4월 28일 18.25리라(1362원)로 수차례 바뀌었다. ‘가격표를 수정할 직원을 뽑는다’는 문구를 내건 한 가게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사람을 정말 뽑는 것인지, 현실을 풍자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만큼 물가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문직도 하늘로 치솟은 물가 수준이 버거운 듯하다. 이스탄불에서 19년째 약국을 운영 중인 약사 아이셰 페이한 튀르케르 씨(48)는 “‘마시모두띠’ 옷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자라’도 못산다”고 한탄했다. 다른 한 50대 남성은 다른 국가와 다르게 금리를 내리는 정부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노벨 경제학상에 도전 중”이라고 비꼬았다. 그는 “우리도 전쟁 중인 것 같다”며 “미사일 못지않게 물가가 무섭다”고 했다.

지난달 11일(현지 시간) 터키 이스탄불 외곽의 에센레르 지역에서 20년째 찻집을 운영 중인 이미라 티피티크(53), 알리 오스만 티피티크 씨(66) 부부가 차를 준비하고 있다. 오른쪽은 티피티크 부부 찻집에서 차를 즐기는 손님들 모습. 이스탄불=김성모 기자 mo@donga.com

● 터키는 왜 ‘금리’를 포기하지 못할까
이 같은 상황에서도 터키가 금리를 올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에르도안 대통령이다. 그는 “고금리는 만악의 근원”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할 만큼 금리 인상에 부정적이다. 고금리가 국민을 빈곤과 실업, 기아에 몰아넣는다는 이유에서다. 2019년에는 금리 인하를 거부한 중앙은행 총재를 해고하기까지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금리 정책이 물가상승을 억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어 “고금리와 저환율의 악순환 대신 투자와 생산, 수출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주장은 금리를 높이면 시장에 풀리는 돈이 제한되고, 지출과 투자가 축소돼 물가를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는 경제학 이론과 배치된다. 이를 두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에르도안의 주장은 경제학자의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만들기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터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타격을 입은 국가 중 하나다. 관광이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경제가 선방했다.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2020년 터키의 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1.8%였고, 지난해에는 11%까지 치고 올라왔다. 기저 효과로 보기에는 올해 1분기(1~3월) 성장률도 7.3%로 높은 편에 속했다. 인플레이션 ‘숫자’만 보면 터키 상황이 엉망으로 보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경제가 그만큼 나쁘지는 않은 셈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투자와 생산, 수출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것도 금리 인상으로 경기 불씨를 꺼뜨리기보다 인플레이션을 감내해서라도 경제 성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을 내비쳤다. 메흐메트 파티흐 차크르 터키 산업기술부 차관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터키는 현재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는 중요한 기점에 있다”면서 “글로벌 상황 못지않게 터키 내부 경제에 정책을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명동 분위기가 나는 터키 이스탄불의 탁심 광장 인근 거리. 이스탄불=김성모 기자 mo@donga.com

● 세계의 중심에 서고 싶은 ‘터키’

그렇다면 터키 정부가 말하는 산업 패러다임 전환은 무엇이고, 글로벌 경기 침체의 위기 속에 터키 경제는 어떻게 선방할 수 있었을까.

터키는 유럽과 중동, 넓게는 아시아까지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갖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회사들이 2000년 전후로 공급망 관리를 위해 터키를 거점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BMW 벤츠 현대차 등 자동차 제조사들이 잇달아 터키에 진출했다. 터키는 자동차 말고도 기계, 철강, 의류 등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을 키웠다. 제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터키 정부는 부품 등 중간재 제조산업을 집중육성산업으로 지정하고,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해왔다. 터키투자청에 따르면 터키의 연 자동차 생산량은 2020년 기준 129만 대로 세계 14위권이다. 자동차 분야의 수출 규모는 전체 산업 수출액의 15%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동차 수출액 중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비중은 63%다.

국내 한 중소기업은 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하기 위해 터키를 찾았다가, 포드와 르노 등 다른 완성차 업체의 수주를 따내기도 했다. 포드오토산(미 포드자동차와 터키 코치홀딩의 합작법인)의 쉔예네르 바리쉬 경영 총괄은 “자동차로 1~2시간 거리에 대부분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부품회사가 있다. 터키에 자리를 잡는 것 자체가 ‘세일즈’”라고 했다. “공장이 항구에 인접해 있는 것도 큰 장점”이라며 “우리 공장에서 배까지 500m만 움직이면 차를 실을 수 있다”고도 했다.

터키 정부는 이 같은 ‘허브 DNA’를 정보기술(IT)에도 적용하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모빌리티 전기차 게임 등 신사업을 중점적으로 육성 중이다. 선진국들이 자국의 스타트업을 키우려는 것과는 다르게 터키는 국내외 스타트업과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센터를 터키 안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쓰고 있다. 부락 다을로을루 터키투자청장은 “터키는 우리나라 기업과 해외 기업에 동일한 혜택을 제공한다”고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같은 공간도 마련했다. 터키 정부와 은행 등 민간 기업은 IT 산업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위해 2019년 게브제 지역에 IT 센터 ‘빌리심바디시’를 열었다. 350만 m²(106만여 평) 부지의 11개 빌딩에 300여 개 회사가 입주한 상태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의 기업들도 이곳에 사무실과 연구개발(R&D) 센터를 열었다. 세르다르 이브라힘지을루 빌리심바디시 총괄본부장은 이곳을 “터키와 실리콘밸리를 합친 ‘튀르키밸리’”라고 소개했다.

터키 정부는 빌리심바디시와 별도로 주요 대학에 테크노파크를 조성해 산학 협력도 유도하고 있다. 법인세·소득세 면제 등으로 창업을 독려하고 있다.


터키 IT 센터 ‘빌리심바디시’에 자리한 터키 메타버스 스타트업 루프스택스(Roof Stacks) 사무실(왼쪽 위 사진)과 직원들이 탁구 치는 모습. 빌리심바디시에 입주한 디자인센터의 프나르 시파히 디렉터(왼쪽 아래 사진)가 ‘에어카’ 모형을 들고 있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스타트업 에어카는 디자인센터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UAM 모델 디자이너를 발굴했다. 게브제=김성모 기자 mo@donga.com

● 실리콘밸리 꿈꾸는 ‘튀르키밸리’
그간 노력에 대한 성과도 있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글로벌 자금이 모였다. 2017년 1억1400만 달러(1473억 원)였던 터키 벤처 투자 규모는 2020년 1억4800만 달러(1913억 원)로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15억5000만 달러(2조32억 원)로 10배 이상으로 뛰었다. 코로나19 이후 풍부해진 글로벌 유동 자금이 IT 산업을 집중 지원하기 시작한 터키에 몰린 것이다.

터키도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최근 3년 내 6개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 달러가 넘는 스타트업)이 탄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중은 1%로, 5년 전에 비해 2배로 늘어났다.

기업용 서비스형 소프트웨어(B2B SaaS) 스타트업 ‘인사이더’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2년 설립된 인사이더는 올해 ‘첫 터키산 유니콘’에 등극했다. 이 회사는 기업들이 소비자 행동과 각종 정보를 분석해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고객이 특정 제품을 온라인상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잊고 있으면, 며칠 뒤 “상품이 아직 장바구니에 있는데 구매하시겠습니까?” 등의 알림을 보내준다. 고객의 선호도를 파악해 맞춤형 상품을 추천하기도 한다. 차을라르 이체르 인사이더 COS(Chief of Staff)는 “굉장히 단순한 사례를 언급한 것”이라며 “우리의 인공지능은 훨씬 더 정교하게 분석하고 고객에게 맞춤형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인사이더의 고객사에는 삼성 유니클로 이케아 CNN 토요타 에스티로더 등 글로벌 대기업들이 즐비하다. 500여 명의 직원들이 800곳이 넘는 고객사들에게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신선한 아이디어를 들고 나온 스타트업들도 있다. 터키 스타트업 모비큐(MOBIQU)는 오토바이 뒤에 부착하는 배달용 스마트박스를 개발했다. 박스 내부를 두 칸으로 나눠서 각각 더운 공기와 찬 공기가 내부에 순환하도록 개발했다. 음식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찬 음식과 뜨거운 음식을 동시에 배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모비큐 관계자는 “한 번 전기로 충전하면 이틀은 간다”고 했다.

코모디프(Comodif)는 전기차의 운전자 정보를 활용하는 모빌리티 스타트업이다. 코모디프는 현재 연료로 주행 가능한 거리 등 전기차에서 받은 데이터들을 운전자에게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보여준다. 차에 타고 있지 않을 때는 도난 경보도 해준다. 보험사에는 운전자가 얼마나 안전하게 주행을 했는지 등의 정보를 제공해 보험료를 할인받을 수 있게 해준다. 이들은 완성차 업체인 피아트와 협력해 전기차 모델에 관련 서비스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LG전자의 식물생활가전 ‘틔운’과 비슷한 제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도 있다. 터키 스타트업 바하(Vahaa)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집에서 각종 작물을 키울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다. 식물이 잘 자랄 수 있게 하는 조명 구성과 온도와 산소 등을 체크하는 센서가 핵심 기술이다.


터키 스타트업 모비큐 관계자가 배달용 스마트박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왼쪽 위 사진). 이 회사는 박스 내부를 두 칸으로 나눠서 따뜻한 음식과 찬 음식의 온도를 각각 유지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바하는 집에서 작물을 키울 수 있는 스마트 가전을 만들었다. 기자가 제품에 다가서자 민트와 레몬 향이 풍겼다(오른쪽 아래 사진). 이스탄불=김성모 기자 mo@donga.com

● 터키 자랑은 케밥·카이막 아닌 ‘이것’
글로벌 벤처캐피탈(VC) 500스타트업 터키 지사의 훌리 이니스 파트너는 “유럽에서 영국과 프랑스 독일 스타트업들이 주로 주목받았는데, 최근에는 터키에 자리한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성장 중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 받은 바이오 회사도 있다”고 했다.

그는 “터키는 유럽 전체를 공략할 수 있다는 지리적 장점도 있지만, 인구 구성이나 정부 지원 같은 요소들도 무시할 수 없다”며 터키의 잠재력을 언급했다. 인구 8400만 명인 터키는 평균 연령은 32세로 유럽보다 12세, 독일보다 15세 젊다.

젊은 인구 구성만큼 무서운 것이 교육열이다. 메르트잔 캅타노을루 에닥 매니징디렉터는 “터키 대학 졸업자는 연 110만 명으로 독일에 이어 가장 많고, 이 중 절반이 기술을 전공한다”고 말했다.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엔지니어링 회사 에닥은 2020년 터키에 R&D 사무실을 열었다. 현지에서 만난 학원강사 아슬란 치라이 씨(38)는 “인플레이션이 이렇게 높은데 학원 수강생은 줄지 않았다”며 “학부모들이 구멍 난 양말은 못 바꿔도, 애 학원은 보낼 정도로 터키 교육열은 높은 편”이라고 했다.

기자가 “인드라 누이(펩시콜라의 최장수 CEO) 같은 인도 출신뿐만 아니라, 터키 개발자들이 앞으로 글로벌 기업의 CEO를 맡게 될 것 같다”고 하자, 한 터키 정부 관계자가 “코카콜라 CEO가 누구였는지 살펴보라”며 웃었다. 터키 출신인 무타르 켄트 전 코카콜라 CEO를 언급한 것. 켄트 CEO는 2007년 12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코카콜라를 이끌었다.

현지에 있는 글로벌 기업들은 “정부의 강한 드라이브”를 터키의 강점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터키가 국가 산업으로 탄생시킨 전기차 업체 토그(TOGG)가 대표적이다. 토그는 터키 손으로 만든 첫 ‘국민 자동차’다. 올해 전기차 양산에 돌입하는 토그는 유럽 외 북미, 아시아 등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17만대 이상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1000여 명의 직원들이 내년 3월 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한국의 현대모비스가 토그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터키 첫 전기차 업체 ‘토그’가 제작한 차량. 게브제=김성모 기자 mo@donga.com

● 터키의 ‘마이웨이’와 인플레이션
터키의 잠재력과 팬데믹 이후의 빠른 회복세에도 인플레이션과 환율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70%가 넘는 인플레이션을 보면, ‘경제 상황이 불안정한 나라에 투자해도 괜찮은 것일까’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과도한 인플레이션에 대해 차크르 터키 산업기술부 차관은 “흑해에서 발견된 천연가스와 관련해 가스관 착공이 오늘(지난달 13일) 시작됐다”며 에너지 공급을 늘려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문제”라고도 했다. 부락 다을로을루 터키투자청장은 “환율 등을 안정화시킬 여러 정책들을 준비 중”이라며 대응책을 예고했다.

터키는 코로나19 전후로 불이 붙은 경제 성장의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눈치다. 금리를 올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리를 낮게 유지한다고 경제에 마냥 좋은 것은 아니라는 예측도 있다. 터키 최대 경제인연합(TUSIAD)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기젬 오즈토크 알틴작는 이코노미스트에 “터키에서의 가격 인상(인플레이션)이 수요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언급했다. 금리를 낮게 유지한다고 해도 지나친 물가 상승이 사람들의 소비를 줄여 기업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러모로 터키 정부도 고민이 많을 듯하다.

그럼에도 차크르 차관은 “연 평균 5%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터키는 경제를 지키면서 물가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전 세계가 터키의 실험에 주목하고 있다.


이스탄불=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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