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분쟁, 5년새 2배… “시정조치 강제해 실효성 높여야”

김광현 기자

입력 2022-06-30 03:00 수정 2022-06-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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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이렇게 풀자]〈1〉아파트 공화국의 ‘국민 스트레스’
이웃 갈등에 살인-폭행 잇따라도… ‘당사자간 해결’ 말곤 별 대책 없어
8월 시행하는 층간소음 확인제… 바닥충격음 기준 초과땐 시정 권고
강제성 없고 새 아파트만 적용 한계… “저소음설계 등 비용 현실화” 지적도



“가슴에 칼을 품고 삽니다. 언제 윗집에 올라갈지 저도 겁납니다.”(층간소음에 시달리는 직장인 A 씨)

“아랫집 사람들이 너무 예민해요. 걸핏하면 올라와 항의해서 아이들까지 무서워합니다. 이젠 초인종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벌렁거려요.”(워킹맘 B 씨)

아파트 등 공동주택 층간소음이 심각한 생활 환경문제로 자리 잡은 가운데 최근 5년간 층간소음 민원이 2배 넘게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층간소음 갈등에서 비롯된 칼부림 살인이나 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당사자끼리 해결하는 게 사실상 유일한 해결책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공동주택 거주 비율이 높은 만큼 분쟁 해결 장치 강화 등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 우울증부터 살인까지 부르는 층간소음
28일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의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신고된 층간소음 민원은 2021년을 기준으로 4만6596건으로 5년 전인 2016년(1만9495건)의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는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2만6257건)보다 77% 늘어난 수준이다.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층간소음 민원도 폭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층간소음 갈등에 따른 이웃 간 폭행 등의 사건사고가 전국 각지에서 끊이지 않는다. 이달 20일 오후 9시 53분 인천 부평구 청천동의 한 빌라 3층에서 50대 남성이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위층 이웃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조사 결과 층간소음과 담배연기로 인한 갈등이 원인이 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9월 전남 여수에서 아래층 30대 남자가 흉기를 휘둘러 위층 부부 2명이 사망한 것도 층간소음이 갈등의 씨앗이 됐다.


층간소음 고통의 특징은 장기간 지속된다는 점이다. 소음이나 진동이 들리면 즉각 신고하는 경우도 있지만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3년간 참다가 신고에 이르는 경우가 더 많다. 서울 송파구의 정신건강의학과의원 A 원장은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되면서 층간소음에 따른 환자가 부쩍 늘었다”며 “대부분 불면증, 우울증을 호소하지만 소음 발생이 줄어들지 않는 한 약물 치료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당사자끼리 해결’ 말고 뾰족한 대책 없는 현실
전문가들은 한국은 총 가구 수의 77.2%(2019년 인구주택총조사)가 공동주택에 거주해 층간소음 문제에 취약할 수밖에 없지만 분쟁해결 방식은 사적(私的) 해결에 기대는 등 초보적 수준에 그친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층간소음제 사전예방책도 여전히 부실하다. 올해 8월부터 실시되는 ‘층간소음 사후확인제’가 대표적이다. 아파트를 다 짓고 난 뒤 바닥충격음을 측정해 기준치에 미달하는 아파트에 시정 조치를 권고하는 제도다. 하지만 기존 아파트는 물론이고 사업승인을 받은 신축 아파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나마 건설사에 ‘권고’하는 것에 그쳐 우려가 앞선다. 층간소음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시정 조치에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롯데건설 DL이앤씨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민간 건설사와 공기업은 층간소음 저감 설계 연구, 바닥재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추가 비용 부담이 적지 않다. 분양가상한제도 걸림돌이어서 층간소음 방지 비용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층간소음은 당사자끼리 해결하려다가 분쟁으로 이어지기 쉽다”라며 “분쟁 해결 장치를 강화하고 정부도 고통을 호소하는 국민 입장에 서서 좀 더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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