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간 을지로 지켜온 ‘을지면옥’ 영업 중단…잇따라 문닫는 서울 노포들

최미송기자

입력 2022-06-26 15:28 수정 2022-06-2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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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동호회 회원들이랑 경기도에서 왔는데 못 먹게 돼서 너무 아쉽네요.”

25일 오후 6시경 서울의 대표적 평양냉면 전문점 중 하나인 중구 ‘을지면옥’ 앞에서 만난 김성혁 씨(45)와 동호회 회원 4명은 “오늘로 문을 닫았다니 너무나 아쉽다”라고 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1985년부터 37년간 자리를 지켜온 평양냉면집 을지면옥이 25일 영업을 종료했다. 을지면옥은 6·25전쟁 당시 월남한 김경필 씨(여) 부부가 1969년 경기 연천군에 문을 연 ‘의정부 평양냉면’에서 갈라져 나온 곳으로, 김 씨 부부의 둘째 딸 홍정숙 씨(66)가 세웠다. 실향민들이 모이는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법원 결정에 따라 시행사 측에 건물을 인도하고 이날 자리를 비워주게 됐다. 을지면옥은 측은 “새로 이전할 장소를 아직 찾고 있다”고 했다.

이날 을지면옥을 찾은 손님들은 30도가 넘는 날씨에도 냉면을 먹기 위해 100여 명이 줄을 서 순서를 기다렸다. 을지면옥은 당초 이날 오후 3시에 영업을 마치려고 했지만 손님들이 계속해서 찾아오자 사장 홍 씨는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 문을 열겠다”며 오후 4시까지도 주문을 받았다. 이후 문을 완전히 닫은 오후 6시가 지난 뒤에도 7시경까지 약 1시간 동안 100여 명의 손님이 찾아와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홍 씨는 “마지막 날이라 손님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며 “엄청나게 더운 날인데도 을지로 3가역 사거리 가까이까지 줄 서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경 방문해 30분 동안 줄을 서 기다린 후 냉면을 먹었다는 임창곤 씨(28)는 “꾸준히 찾았던 곳인데 최근 없어진다는 기사를 보고 아쉬운 마음에 일부러 왔다”라면서 “몇 년 전부터 을지로 주변 시설이 재개발 되는 것을 봐왔지만 을지면옥이 사라진다는 걸 들으니 단순히 노포 하나가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오후 6시 반경 찾아온 손님 박모 씨(23)는 “을지로가 유명해진 것도 ‘노포 감성’ 덕분이었는데 을지로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서울)시에서도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을지면옥의 30년 단골이라는 김성 씨(69)는 “단골집이 사라지는 것은 아쉽지만 노후화된 건물들을 재개발해서 손님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옳다”라고 했다.

을지면옥 주변 상인들 역시 노포의 폐업을 아쉬워했다. 을지면옥과 한 건물에서 운영하던 ‘을지다방’은 올해 3월 문을 닫았고, 최근 새로 이전할 곳을 찾았다. 을지다방 사장 박옥분 씨(65)는 “40년 가까이 을지면옥 사장님 소유 건물에서 장사했는데, 지금껏 딱 한번 세를 올렸을 만큼 착한 건물주”라며 “을지면옥이 이 자리에 있어서 주변 상권이 살아나는 효과도 있었는데 자리를 옮기게 돼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시내에서 노포들은 잇달아 문을 닫고 있다. 올해 들어 서울 동작구의 중식당 ‘대성관’, 서대문구 ‘통술집’, 동대문구 ‘동화반점’, 중구 ‘을지오비(OB)베어’ 등 유명 노포들이 줄줄이 폐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영난에 빠졌거나 지역 재개발 사업, 임대료 갈등 등으로 문을 닫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성관은 1946년 개업한 후 한 자리에서 3대가 경영을 이어왔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 불황을 이기지 못해 이달 초 폐업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원조라고 불리는 을지오비(OB)베어 역시 건물주와의 오랜 갈등 끝에 지난 4월 강제 철거됐다.

이창무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정비보다 보존에 중점을 두는) 도시재생 사업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들이 쌓이면서 노포를 그대로 유지해야 되느냐에 대한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라며 “오래된 것의 지속과 새로운 변화가 적절히 조화될 수 있도록 시 차원에서도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미송기자 cm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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