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3만2000원” 폭염에 물가 ‘비상’…美선 식량수확 줄고 소 폐사

박성민 기자 , 김소민 기자 , 대구=장영훈 기자 , 김민 기자 , 이은택 기자 , 파리=김윤종 특파원

입력 2022-06-25 03:00 수정 2022-06-25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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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위기속 폭염 덮친 지구촌-국내]
韓, 이른 더위에 배추-감자값 50% 급등… ‘장바구니 긴축’ 나서


가스요금, 전기요금 인상이 예고된 가운데 한 시민이 공동주택 내 전력량계를 가리키고 있다. 올 7, 8월은 기온이 예년보다 덥거나 비슷할 가능성이 80%에 이르는 등 고온 현상이 예고됐다. 뉴스1
한국도 이른 폭염에 노숙인 등 취약 계층과 서민들의 피해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열사병 환자가 6월부터 폭증하는 것은 물론 폭염이 불러일으킨 물가상승이 서민 가계를 옥죄면서 ‘복합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올여름은 예년보다 더울 것으로 보여 정부와 지자체의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이른 폭염에 77% 늘어난 온열질환자
노숙인 등에게 무료급식과 임시 거주공간을 제공하는 경기 안양시 ‘유쾌한공동체’에는 최근 주거지원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대부분 낮 최고기온 35도에 이르는 폭염을 견디다 못해 도움을 호소하는 이들이다. 이 단체는 이들을 위해 16일부터 온라인 모금을 시작했다. 무더위 쉼터 운영 등에 필요한 750만 원을 모으는 게 목표다. 하지만 24일까지 2만 원을 모았다. 윤유정 유쾌한공동체 사무국장은 “이대로 여름을 날 수 있을지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찍 찾아온 폭염으로 건강에 ‘직격탄’을 맞는 건 취약계층과 서민들이다. 폭염경보에도 작업을 멈출 수 없는 실외 근로자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22일까지 집계된 온열질환자는 163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92명) 대비 77.2% 급증했다.

장마도 더위를 식히기 역부족이다. 기상청은 올해 ‘폭염, 폭우, 다시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을 예보했다. 20일 경북 경산시, 구미시, 의성군에는 올해 첫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지난해 대구시 등에 발효됐던 폭염경보(7월 11일)보다 20일이나 빠르다. 대구시는 이미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 등에게 3개월 동안 매일 얼음 생수 1병과 선풍기, 보양식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8월까지 기록적인 폭염이 나타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기상청은 올 7, 8월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을 50%, 비슷할 확률을 30%로 예보했다. 기상청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 바렌츠해의 빙하와 티베트고원의 눈이 녹아 발생한 고기압이 한반도의 여름 기온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 가뭄에 폭염까지 밥상 물가 ‘비상’

가뭄에 폭염까지 겹치면서 밥상 물가도 비상등이 켜졌다. 채소류 가격은 줄줄이 급등세다. 한 대형마트에 따르면 24일 감자 가격은 100g당 590원으로 전년 동기(390원) 대비 51.3% 올랐다. 같은 기간 배추(1통)는 2480원에서 3890원으로, 깻잎(100g)은 1580원에서 2190원으로 가격이 올랐다.

일상적으로 먹는 채소와 과일 가격이 오르자 시민들은 강제 ‘긴축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의 50대 주부 박모 씨는 “동네 과일가게에서 수박을 두드려 보다 한 통에 3만2000원 가격표를 보고서 그냥 나왔다”고 전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로 13년 9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원유, 곡물 등 원자재 가격 상승과 원-달러 환율 상승세 등이 겹치면서 이달 물가 상승률이 6%를 넘어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식품과 생활용품을 기부 받아 결식아동과 홀몸노인 등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푸드뱅크도 물가 상승의 타격을 받았다. 최근 밀가루 값이 오르면서 라면 비축분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 강훈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푸드뱅크사업단장은 “무더위가 지속되면 유통기한이 짧은 식품은 기부가 더 어려워진다”며 “운영난을 호소하는 지역조직이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美, 식량수확 줄고 소 폐사… 佛선 전기가격 일주일새 64% 폭등



[복합위기속 폭염 덮친 지구촌-해외]

17일(현지 시간) 미국 애틀랜타의 한 고속도로 공사장에서 차량 통제 업무를 하는 근로자가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을 마시고 있다. 애틀랜타=AP 뉴시스

미국 켄터키주에서 옥수수 농장을 하는 조지프 시스크 씨는 23일(현지 시간) 회색 반점이 곳곳에 핀 옥수수 이파리를 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 얼룩진 이파리는 가뭄이 너무 오래 이어지고 있다는 경고”라고 했다. 그는 더운 공기로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제발 비가 오기를 간절히 빌고 있다”고 했다. 농장이 밀집한 이 지역의 올해 강수량은 예년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켄터키주의 한 지역 매체는 “한 달간 이어지고 있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폭염’이 농부들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고 전했다.

폭염과 가뭄이 불러온 미국 농가의 위기는 글로벌 식량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 악화로 이어질 조짐이다. 당장 미국 옥수수 선물가격은 올 1월 1부셸당 5.87달러에서 이달 16일 7.88달러로 34% 올랐다.
○ 곡물 수확 급감, 소들 폐사…식품 물가 올라
미국 공영라디오 NPR에 따르면 미국의 대표적 밀 생산지인 캔자스주는 폭염과 가뭄 때문에 올해 밀 생산량이 예년보다 3분의 1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밀가루, 빵, 파스타 등 가공식품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캔자스주의 한 목장에서는 폭염에 스트레스를 받은 소 2000여 마리가 폐사해 약 400만 달러(약 52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중부 테네시주에서 목축업을 하는 브라이언 플라워스 씨는 소들이 폭염 스트레스로 우유가 적게 나온다며 “우유 매출이 이전보다 하루 400달러(약 52만 원) 정도 줄었다”고 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하는 식량가격지수(Food Price Index·FFPI)는 곡물, 육류 등 55개 농식품의 가격 변화를 나타내는데 지난달 지수가 157.4까지 치솟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2020년에 98.1이었던 이 지수는 지난해 공급망 위기가 더해지며 125.7로 올랐는데, 올해 글로벌 복합 위기까지 겹쳐 또다시 대폭 상승한 것이다.

옥수수는 섬유, 가구, 인조 고무, 화장품, 의약품 등 생필품의 원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식량 위기는 일반 공산품 물가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많다.
○ 파리 시민들 에어컨 쐬러 ‘미술관 피신’
유럽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감축으로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폭염까지 겹쳐 에너지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낮 기온이 37도를 넘어섰던 18일 시민들이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등 실내 관광지로 피신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프랑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폭염은 1947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이른 시기에 시작됐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1947∼1989년 사이 42년간 9번의 폭염이 발생했는데 1989∼2019년 사이 30년간에는 무려 32차례의 폭염이 있었다”며 “이제 파리는 에어컨 없이 도저히 살 수 없는 도시로 변하고 있다”고 했다. 냉방용 전력 수요가 급증하자 프랑스의 최근 전기 도매가격은 MWh(메가와트시)당 380유로(약 52만 원)를 넘어서며 일주일 새 64% 넘게 올랐다.
○ 냉방기기 가동 여력 있느냐가 생사 좌우

저소득층과 저개발국 국민들은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 21일 AFP통신에 따르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일부 지역은 최근 기온이 50도를 넘었다. 남부 바스라는 45도에 달했다. 이 지역 인구 상당수는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에어컨 없이 부채 등으로 버티고 있다.

전력 인프라가 열악한 상황에서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맞추기 위해 발전소를 무리하게 가동할 경우 정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폭염에 정전이 발생하면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중서부 지역에선 극심한 가뭄으로 수력발전소의 수위가 낮아져 가동률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중서부 지역 15개 주에서 전력망을 운영하는 업체인 MISO는 이 중 11개 주에서 정전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고 이달 초 밝혔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지역에서는 노숙인 수천 명이 40도가 넘는 더위를 길거리에서 견디고 있다. 지난해 이 지역의 폭염 사망자 339명 중 최소 130명이 노숙인이었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공공의료·재난센터의 데이비드 아이젠먼 국장은 “더위 때문에 하루에 16명이 사망한 적도 있다”고 했다. 미국 NBC 뉴스는 “냉방기기를 살 수 있느냐, 또 가동할 돈이 있느냐는 이제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제가 됐다”고 전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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