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값 오르고 환율 불안… “10조 투자계획, 부담 1조 늘어날 판”

뉴욕=유재동 특파원 , 송충현 기자 , 세종=최혜령 기자 , 김창덕 기자 , 김민 기자

입력 2022-06-20 03:00 수정 2022-06-2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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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올해-내년 마이너스성장” 한국기업들 비상경영 준비
뉴욕 연준 “인플레 속 경제 비관적”…글로벌 CEO 76% 경기침체 예상
삼성-SK-현대차-LG 등 대책 분주…정부, 유류세 연말까지 37% 인하



심각한 인플레이션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 경제가 올해와 내년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예상했다. 글로벌 복합 위기로 인한 세계경제 침체 위기가 가시화되자 한국 기업들은 비상경영 체제를 대비하고 나섰다.

정부는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연말까지 유류세 인하 폭을 법정 최고한도인 37%로 확대하기로 했다. 하반기에 예정됐던 전기·가스요금 인상은 최소화하기로 했다.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산하 뉴욕 연준은 17일(현지 시간) 보고서에서 “미 경제 전망이 이전보다 상당히 비관적으로 변했다”며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0.6%, ―0.5%로 제시했다. 3월에는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각각 0.9%, 1.2%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지만 불과 3개월 만에 각각 1.5%포인트, 1.7%포인트씩 낮췄다.

뉴욕 연준은 또 올해 미 경제가 연착륙할 가능성이 10%에 불과하다고 예상했다. 1990년대와 비슷한 경착륙을 할 가능성은 80%에 달하는 것으로 봤다.

글로벌 기업 경영자들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기 침체 가능성을 높게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미 비영리 경제조사기관 ‘콘퍼런스보드’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세계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 중 76.1%가 “이미 경기 침체에 접어들었거나 내년 말까지 경기 침체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대기업은 경기 침체 가능성이 심각하다고 보고 대응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21일 시작하는 하반기(7∼12월) 전략회의에서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의 위기 상황 대처 방안을 집중 논의한다. 재계 관계자는 “공급망 위기, 유가 및 환율 불안, 소비 침체가 잇따르면서 기업들이 코너에 몰리고 있다”고 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9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어 유류세 인하 폭을 연말까지 현행 30%에서 37%로 높이고,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기준단가를 L당 1700원으로 50원 낮춰 지급액을 늘린다고 밝혔다. 또 철도·도로 통행·우편·상하수도 등 공공요금은 하반기 동결을 원칙으로 하고, 전기·가스요금은 인상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고유가에 따른 대중교통 이용 촉진 및 서민 부담 경감을 위해 하반기 대중교통 신용카드 소득공제율을 현행 40%에서 80%로 높인다.

기름값 고공행진이 계속 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내 한 주유소의 유가 정보판.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국내 기업들 비상경영 준비
공급망 위기에 소비 부진까지 겹쳐…글로벌 CEO 15% “이미 침체 진행”
삼성 전자제품 일부국가 판매 28%↓…현대차그룹 북미 판매 30% 감소
러 반도체용 ‘稀가스’ 수출제한…SK-LG 등 ‘계열사 대책회의’ 가동






“시장의 혼돈, 변화, 불확실성이 많았습니다.”

유럽 출장에서 돌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글로벌 경영 위기 상황을 이렇게 요약했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 국내 기업들의 위기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 원자재값 및 유가 급등, 환율 불안 등에 이어 소비 침체까지 대형 악재가 연이어 덮치고 있어서다.
○ 소비 침체는 ‘우려’ 아닌 ‘진행형’

글로벌 소비 침체는 수출 중심인 국내 기업들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미국 유럽 등 주요 글로벌 시장 일부에서 전자제품 판매 실적이 전월 대비 약 28%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북미 시장 전체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29.8%나 빠졌다. 4월 ―16.9%의 2배에 가까운 수치다. 현대자동차그룹도 5월 판매량이 전년 동월 대비 30.0%나 줄었다.

수출 기업들이 원-달러 환율 상승기에 일정 부분 ‘환율 특수’를 본다는 건 예전 얘기다. 유로화 가치 급락 등 불안정한 금융시장으로 인해 달러에서 환율 효과를 보더라도 다른 지역에서 상쇄돼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 부담도 커진다. 국내에 생산설비를 짓더라도 미국 등 해외에서 장비를 들여오는 경우가 많아 환율 변동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내 5대 그룹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우리가 10조 원을 투자한다고 했을 때 환율이 10% 오르면 가만히 앉아서 1조 원을 추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공급망 위기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올라 켈레니우스 CEO는 유럽 경영환경에 대해 “척박한 산업 환경”이라고 표현했다. 이 부회장은 출장 기간 중 유럽 현지 법인들로부터 소비 침체와 공급망 불안 등을 보고받고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한국에서는 못 느꼈는데 유럽에 가니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훨씬 더 (실감 나게) 느껴지더라”고 했다.

특히 러시아는 지난달 말부터 비우호적 국가에 대해 반도체 제조 등에 사용되는 ‘희(稀)가스’ 수출 제한을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러시아의 수출 제한이 본격화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기업들은 복합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삼성전자는 21∼28일 모바일, 가전, 반도체 등 주요 사업부서별로 글로벌 전략회의를 연다. SK는 17일 최태원 그룹 회장 주재로 각 계열사 CEO들이 모인 확대경영회의를 열었다. LG도 지난달 말부터 계열사별 전략보고회를 진행하면서 중장기 전략은 물론이고 위기 대처 솔루션을 찾고 있다.
○ 글로벌 기업 76%가 “올해 또는 내년 침체”
글로벌 기업들의 경기 전망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비영리 경제조사기관 콘퍼런스보드가 글로벌 기업 CEO와 고위 임원 등 7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 가운데 CEO들이 경기 침체 가능성을 유독 높게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시기에 대해 설문에 참여한 CEO 중 15.0%는 ‘이미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올해 중반’과 ‘올해 말’이 각각 12.3%, 31.0%였다. ‘내년’이라는 답변(17.8%)까지 더하면 76.1%가 적어도 내년까지는 침체가 온다고 답한 셈이다.

콘퍼런스보드는 “하나의 심각한 악재 또는 여러 개의 작은 악재가 결합해서 세계 경제를 침체로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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