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유영국… ‘심연의 산’에 초대합니다

김태언 기자

입력 2022-06-14 03:00 수정 2022-06-14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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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제갤러리 ‘20주기 기념전’
‘Work’ 연작-드로잉 등 선보여… 철저히 계산된 색채의 변주
“산은 내 앞 아닌 내 안에 있다” 심연의 풍경을 추상적으로 표현


산맥을 표현한 유영국의 ‘Work’(1961년). 그는 “산에는 뭐든지 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단면, 다채로운 색”이라고 말했다. 국제갤러리 제공

유난히 말이 없던 작가는 끊임없이 심연의 산을 그렸다. 산이 많은 고장 경북 울진에서 자란 탓이었다.

‘산’ 연작 시리즈로 유명한 유영국(1916∼2002)은 김환기와 함께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작가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선 9일부터 유영국의 20주기 기념전 ‘유영국의 색’이 열리고 있다. ‘Work’ 연작 등 작가의 시기별 대표 회화 68점과 드로잉 21점, 사진작품, 아카이브 자료 등을 선보인다.

전시 주제는 유영국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색’이다. 전시를 기획한 이용우 홍콩 중문대 문화역사학과 교수는 “연대기적 순서가 아닌 시대를 앞서간 작가의 일생과 색채의 변주에 초점을 맞췄다”며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초록색과 군청색, 보라색, 검은색이 올라오는 최절정기 대작들을 한자리에 모았다”고 밝혔다. K1 전시장에는 1950, 60년대 과도기 작품, K2 전시장은 1970∼90년대 정착기 작품, K3 전시장은 추상이 절정에 달했던 1960년대 중반∼1970년대 초기에 그린 작품이 걸렸다.

1950, 60년대 그림은 색과 형태가 모호하지만 구상화의 느낌이 강하다. 파란색, 붉은색, 검은색 등으로 산맥을 표현한 ‘Work’(1961년)가 대표적이다. 당시 유영국은 가장으로서 배를 몰거나 양조장을 경영하며 그림을 그렸다. 이 교수는 “가족을 부양하고 생업에 종사하며 작가로서 흔들리는 순간이 많았을 것”이라며 “생업과 작품 활동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던 작가의 삶이 작품에 투영됐다”고 설명했다.

유영국은 1963년 김환기와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한 뒤 변화를 맞는다. 이듬해 마흔 여덟의 나이로 전업 작가의 삶을 선택한 것. 지난 20년을 만회하려는 듯 매일 침실과 아틀리에만 오가며 작업에만 매달렸다. 그의 작품에서 구상적 요소가 사라지고 기하학적 추상이 본격화된 것도 이때부터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말을 남긴 그는 압도적인 집중력으로 심연의 풍경을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1964년 서울 신문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후 그의 추상세계는 명확해졌다. 형태가 또렷해지고 원색에 가까워지는데, 이는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다. 미묘하게 변주된 여러 주홍색을 사용해 작열하는 해와 산을 표현한 ‘Work’(1967년)는 기하학적 추상이 본격화된 시기의 대표작 중 하나다. 8월 21일까지.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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