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소리만으로 치유…삶의 강박을 내려놓으려 찾는 그곳”[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전승훈 기자

입력 2022-06-11 16:00:00 수정 2022-06-11 16: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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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없어도 서핑보드 위에 누워 있으면 그 자체로 좋습니다. 가만히 물이 출렁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지요. 삶의 강박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강원 양양은 대한민국 서핑의 성지다. 여름에는 물론이고 한겨울에도 높은 파도 속으로 뛰어드는 서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2030세대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로 꼽히는 서핑은 동해안의 풍경과 문화, 라이프스타일까지 바꾸어 놓고 있다. 양양 서프시티 협동조합의 김나리 대표는 “바다에서 심신을 힐링하는 ‘해양치유’의 중심에 서핑이 있다”고 말한다. 설악산과 아름다운 해변, 온천이 샘솟는 양양은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웰니스 관광’의 대표적 명소로 손꼽힌다.


사계절 서핑, 해양치유의 중심
양양에 있는 21개의 해변에서는 모두 서핑을 즐길 수 있는 파도가 있다. 심지어 한겨울 눈 내리는 영하의 날씨에도 슈트와 장갑, 후드로 무장한 서퍼들이 보드를 들고 파도로 뛰어든다.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동해의 수온은 7도 내외로 물속에서는 그렇게 춥지 않기 때문에 서핑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겨울에도 동해안에 서퍼들이 몰리는 것은 계절풍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북동풍이 불어 동해안에 2m가 넘는 파도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서핑을 제대로 즐기려면 겨울에는 동해안을 찾아야 합니다. 여름철엔 남서풍이 불기 때문에 제주 서귀포 중문이나 부산에서 파도가 크고 높습니다. 여름철 동해안은 상대적으로 잔잔한 파도가 치기 때문에 초심자들이 안전하게 서핑을 배우기 좋습니다.”(김 대표)

우리나라의 서핑은 1990년대 후반부터 제주 중문 색달해변과 부산 송정해변에서 자생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서핑문화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곳은 양양의 죽도해변과 인구해변 일대다. 2009년에 죽도에 서핑스쿨이 자리 잡으면서 숙박, 음식, 패션, 게스트하우스, 요가, 캠핑, 교육, 영화제 등 서핑 관련 문화산업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양양은 서울에서 2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서핑 천국으로 떠올랐다.

양양의 서핑문화는 점차 북쪽 해변으로 확산되면서 낙산해수욕장에도 초보 서퍼들을 위한 ‘양양서핑학교’가 들어섰다. 2017년 12월에 문을 연 서핑학교는 ‘사계절 서핑 활성화’를 모토로 내걸었다. 겨울에 3개월 과정으로 주말마다 교육을 하는데, 매년 1200명 정도가 겨울바다에서 서핑을 즐긴다. 강사진은 서핑 국가대표 코치도 포함돼 있는데,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처음으로 서핑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국가적인 관심도 커지고 있다.

요즘 서해안, 남해안, 동해안 등 바다를 끼고 있는 지자체에는 ‘해양치유센터’가 곳곳에 건립되고 있다. 바닷물과 모래, 해산물과 같은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을 이용한 치료시설이다. 김 대표는 ‘해양치유’의 효과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중심에는 서핑이 있다고 설명한다.

“강한 바닷바람을 맞는 것은 신진대사를 증가시켜 면역력을 향상시키고, 강한 자외선에 닿게 되면 우울증 해소에 도움을 줍니다. 바닷바람에 함유된 미세한 소금입자는 기관지를 통해서 염증을 감소시키고, 파도 소리는 백색소음으로서 심리적 안정감을 주지요.”

실제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작전명: 서핑’에서는 전쟁에서 살인기계로 활약하다가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퇴역 군인들이 서핑을 통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치유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퇴역 군인이 서핑에 빠지면 내일 파도는 어떨지 궁금해하기 시작합니다. 내일 파도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오늘 자살할 생각을 안 하죠. 앞으로 의사들이 처방전을 쓸 땐 약과 함께 서핑수업을 처방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영화 속 대사는 감동을 준다.

김 대표는 “파도 위에서 홀로 서야 하는 서핑은 굉장히 이기적인 스포츠”라고도 말했다.

“원 웨이브, 원 맨(one wave, one ma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파도에는 한 사람밖에 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멋진 파도가 오더라도 그 파도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만이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게 서핑의 유일한 룰입니다. 한번 파도에 올라타면 잊을 수 없는 매력이지요.”
설악산과 바다에서 온천힐링

단풍으로 유명한 양양의 설악산 오색(五色)지구는 ‘하늘 아래 온천 1번지’로 불릴 정도로 약수와 온천이 유명하다. 오색은 주전골의 암반이 다섯 가지 빛을 발하고, 봄이면 다섯 가지 색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오색지구에서는 탄산약수를 마시고, 탄산온천을 경험해봐야 한다. 오색그린야드호텔은 지하 470m에서 끌어올린 탄산온천의 명소다. 해발 647m 지점에 있는 미지근한 탄산온천수에 입욕하면 탄산기포가 온몸을 감싼다. 탄산온천은 피부의 이물질을 제거해 ‘미인온천’이라고도 불린다. 호텔에는 강황 등 건강 식재료를 활용한 면역증강 메뉴 식단도 마련돼 있다. 전문 숲길지도사와 함께 주전골 트레킹을 통해 설악산의 비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1박 2일 세러피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온천에서 1년 이상 장기 숙박하며 치유를 하는 투숙객도 있다.



양양국제공항 옆에 지난해 6월 개장한 온천리조트 설해원(雪海園)은 이름 그대로 ‘설악산과 동해를 품은 정원’이다. 100% 원탕의 온천수가 공급되는 야외 온천 수영장에 몸을 담근 채 설악산을 바라보는 경치는 일품이다. 건축가 양진석이 설계한 설해원은 편백나무와 물을 테마로 한 ‘오리엔탈 모더니즘’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일본의 온천이나 동남아 풀빌라가 부럽지 않은 시설이다. 설해원의 면역공방은 투숙객이 아닌 일반 고객도 이용할 수 있다. 원적외선 파동을 이용해 몸 안에 있는 각종 독소, 노폐물, 콜레스테롤 등의 유해성분을 체외로 배출시키는 ‘디톡스 온열요법’ 힐링체험 공간이다.



양양 중광정해수욕장에서 국도 7호선을 건너면 있는 ‘솔향기 언덕’은 소나무 숲속에 자리 잡은 카페에서 책을 읽으면서 힐링할 수 있는 장소다. 한국검인정교과서협회 양양 연수원 안에 있는 북카페는 도서 1만3000여 권을 갖추고 있다. 책을 보며 커피를 마신 후 400m 구간에 이르는 솔밭산책로를 걸으며 향긋한 솔향기를 맡아보길 권한다.

인근 가볼 만한 곳
양양의 북쪽에 있는 속초에는 올해 3월 개장한 ‘속초아이’가 있다. 영국의 템스강을 내려다보는 ‘런던아이’와 비슷한 대관람차다. 속초아이에서는 속초해수욕장, 외옹치해변, 청초호, 속초항, 동명항, 영금정 등 바다 주변을 구경할 수 있다. 15분 남짓한 시간에 최대 높이 65m까지 올라가는 캐빈을 타고 있으면 동해를 향해 서서히 올라가는 시선의 확장을 느낄 수 있다. 야간에는 8가지 패턴의 화려한 발광다이오드(LED) 퍼포먼스를 펼친다.

지난해 12월 개관한 강릉 아르떼뮤지엄은 ‘영원한 자연’을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가 입소문을 타면서 벌써 41만 명이 다녀갔다. 마치 진짜 해변에라도 온 듯이 출렁이는 파도 앞에서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고, 연인은 바닷가에 나란히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전시관에 들어서는 순간 관객은 하늘과 맞닿은 바다, 꽃잎이 흩날리는 숲속에서 노니는 사슴, 8 m 높이서 쏟아지는 폭포, 굉음과 함께 꽂히는 벼락에 이내 빠져들고 만다. 진짜보다 더 실감 나는 자연을 보여주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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