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면세점…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 입찰에 지원 ‘0곳’[인사이드&인사이트]

김소민 산업2부 기자

입력 2022-06-07 03:00 수정 2022-06-0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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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 낳는 면세점, 이젠 옛말

최근 한 서울 시내 면세점의 한적한 모습. 지난달 마감된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 입찰에는 어떤 기업도 참여하지 않았다. 동아일보DB
김소민 산업2부 기자

《지난달 30일 마감된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 입찰이 흥행 참패로 끝났다. 입찰에 참여한 기업이 ‘0곳’으로 전무했기 때문이다. 한때 ‘황금알 낳는 거위’로 불리며 유통 대기업들이 앞다퉈 시내 면세점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연초에는 샤넬, 루이비통 등 글로벌 명품 업체들이 줄줄이 국내 시내면세점 철수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시내면세점 흥행 실패와 올초부터 이어진 명품 업체 엑소더스(대탈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경쟁력을 잃고 있는 국내 면세업계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인천공항 입·출국객 수는 여전히 코로나19 전 대비 10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는 반면, 이번 달이면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임대료 감면이 종료되는 등 악재가 이어져 리오프닝(경기 재개) 훈풍이 실제 면세점으로까지 번지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 수익 악화에 시내 면세점 입찰 참여 ‘제로’


6일 관세청에 따르면 2019년 이후 3년여 만에 열린 대기업 대상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 입찰에 지원한 업체는 한 곳도 없었다. 중소·중견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지역 시내면세점 특허 신청에만 세종, 전남, 강원 각 1개 업체가 지원했다. 2015년 서울 시내면세점 입찰 당시 특허권 3개를 두고 20여 개 기업이 경쟁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란 말이 나온다.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으로 타격을 입긴 했지만 코로나19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면세점은 우상향 추세였다. 2011년 32개였던 면세점은 2019년 57개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시내면세점은 10개에서 22개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하지만 2019년 정점을 찍은 국내 면세점 매출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국내 면세점 매출은 2019년 24조8586억 원에서 2020년 15조5052억 원으로 거의 반 토막 났다. 중견 면세점인 SM면세점은 2020년 4월, 신세계면세점은 지난해 7월 강남점을 폐점했다. 2019년 57개이던 국내 면세점 수는 지난해 말 48개로 줄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입국 관광객 수가 현저히 줄었기 때문이다. 2019년 하루 평균 20만 명에 달했던 인천공항 입·출국객 수는 2021년 8000명대로 떨어졌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시내면세점 하나를 새로 만들려면 규모, 입지, 인력에 따라 유동적이긴 하지만 2000억∼3000억 원 정도는 필요하다”며 “그만큼 투자해 시내면세점을 하나 더 낸다고 해도 고객이 더 유입되고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국내 면세업계 위기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는 글로벌 명품 업체 탈(脫)한국 움직임이다. 올해 1분기(1∼3월) 샤넬은 부산롯데, 제주신라에서, 루이비통은 부산롯데, 제주롯데, 제주신라에서 철수했다. 세계적인 명품을 다수 유치하고 있다는 점은 국내 면세점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는데 그 근간이 흔들리게 된 셈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할당할 총합을 정해놓고 국내 매장을 빼 중국으로 들어가고 있다”며 “일단 한 번 빠지면 다시 유치하기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 인천공항 임대료 감면도 이번 달 종료

공항 면세점 상황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인천공항의 임대료 감면 정책이 이번 달이면 종료되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면세점은 매달 일정 금액을 내는 고정 임대료 방식이었으나 코로나19로 매출이 급감하자 2020년 9월부터 2022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임대료를 매출에 연동해 납부하는 방식으로 바뀐 바 있다.

면세업계는 매달 400억 원에 달하는 고정 임대료를 지불하기엔 아직 힘에 부친다는 입장이다. 1분기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 면세점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신라면세점이 유일하게 흑자(영업이익 127억 원)를 냈지만 전년 동기에 비하면 줄었다. 하루 평균 인천공항 입·출국객 수가 지난달 3만 명대로 올라섰지만 2019년 일평균에 비하면 7분의 1 수준이다.

인천공항의 대기업 면세점 입찰도 하반기에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 사업권 기준으로 제1여객터미널 4개, 제2여객터미널에 3개 사업권이 걸려 있다. 외국인 관광객 수요가 회복세라 업계의 관심도가 높다. 하지만 임대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라 관련 업체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지금처럼 팬데믹이 언제 또 어디서 발생할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리해서 들어가야 하나 회의감이 많이 든다”며 “인천공항 입찰 조건에 따라 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하는 정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대외 위기 속 ‘9년째 제자리’ 면세한도

코로나19로 인한 타격 속에서 9년째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면세한도도 국내 면세업계에는 큰 부담이다. 올해 3월 내국인 면세점 구매한도 5000달러(약 600만 원)가 폐지됐지만 면세한도 600달러(75만 원)는 그대로 남아 있어 소비 진작 효과가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600달러까지만 면세 혜택을 받고 600달러 초과 금액에 대해 두 번의 과세(고가품 기준인 185만2000원까지 20%, 나머지 초과분에 대해 50% 간이과세)를 거치면 최종 구매가 기준 면세점 가격이 백화점 가격보다 비싸지는 사례도 속출한다. 면세한도 상향 없이는 구매한도를 폐지해도 실질적인 소비 진작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면세한도는 중국 5000위안(94만 원), 일본 20만 엔(192만 원), 미국 800달러(100만 원)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다. 업계 관계자는 “3월 구매한도 폐지 이후 매출이 늘긴 했지만 내국인 매출이 워낙 낮은 상태에서 관광 재개 기미가 보이니까 어느 정도 회복된 것이지 구매한도 폐지에 의한 영향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면세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하이난을 면세특구로 개발하면서 면세한도를 10만 위안(1883만 원)으로 대폭 상향하고 하이난을 방문한 내국인이 본토로 돌아간 후에도 6개월간 온라인으로 면세품을 살 수 있게 했다. 영국 면세 전문지 무디리포트에 따르면 중국국영면세점그룹(CDFG)은 2020년 세계 면세점 시장 1위에 등극했다. 중국이 전폭적인 정부 지원 덕에 급성장하는 한편 수년간 세계 면세점 시장 1위를 지켜왔던 스위스 듀프리그룹은 매출이 전년 대비 70%가량 증발하며 4위로 내려앉았다.

정부 주도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면세시장은 특히 중국 단체 관광객을 상대로 성장해온 국내 면세산업으로선 큰 악재일 수밖에 없다. 이훈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장은 “코로나19와 중국 면세점의 급성장에 따라 국내 면세업계도 고객 세분화나 동남아 시장으로의 다변화 등 영업 전략을 다양하게 세워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면서 “면세점 쇼핑이 한국 관광의 큰 매력으로 작용해왔던 만큼 산업 근간이 유지될 수 있도록 면세한도 상향 등 일정한 기반을 만들어주는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소민 산업2부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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