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中 경제 포위망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공급망 핵심에 한국 반도체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입력 2022-06-05 12:52 수정 2022-06-05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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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포함한 새로운 개념의 협정… 美·中 경제 패권 놓고 본격 대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0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평택 캠퍼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기자단
“코로나19 대유행과 푸틴의 잔혹하고 이유 없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들에 경제 및 국가 안보를 의존하지 않으려면 주요 공급망을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부각했다. 한국과 미국처럼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들이 반도체 생산 협력 등 공급망 구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5월 20일 한국을 방문해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생산기지인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평택 캠퍼스)을 둘러본 후 연설한 내용 중 한 대목이다. 삼성전자는 데이터 저장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메모리 반도체 업체 중 세계 1위다. 연산 처리를 담당하는 시스템 반도체에선 미국 인텔이 세계 1위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선 대만 TSMC가 세계 최대 업체다.

한국 반도체 시장점유율 세계 2위

미국이 주도하는 IPEF 출범 정상회의가 5월 23일 화상으로 열렸다. 미국 백악관
한국 반도체산업은 메모리 분야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별 반도체 시장점유율은 미국 49.8%, 한국 19.9%, 유럽 8.8%, 일본 8.8%, 대만 8.3%, 중국 3.6% 순이다. 미국 처지에선 한국과 협력을 통해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인도·태평양 지역을 처음으로 순방하면서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를 가장 먼저 찾은 것도 이런 의도 때문이다.

미국 언론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고 있으며 반도체가 그 핵심에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대통령이 전용기로 한국에 내린 후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정부청사도, 대사관도, 군사기지도 아니었다”며 “21세기 진정한 격전지를 대표하는 거대한 반도체 공장이었다”고 보도했다. CNN 방송도 “일부 중국산 (반도체) 부품의 출하가 중단되면서 자동차와 트럭을 포함한 미국 제조업에 피해를 줬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부족을 완화하고자 지난 몇 달 동안 노력해왔고 미국 산업을 중국 중심 공급망과 분리하는 것을 우선시해왔다”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 대만과 함께 중국의 기술적 부상에 맞서고 반도체, 배터리 등 미래 핵심 기술에서 우위를 유지하려는 미국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핵심 국가”라고 보도했다.

한국은 그동안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정책에 따라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중시해왔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을 성사시키기 위해 친중 노선을 견지했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 동참 요청을 거부했고, 홍콩 등 중국의 인권 탄압 문제도 외면했다. 미국 조야에선 친중 성향의 문재인 정부 때문에 한국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약한 고리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자 미국 정부는 발 빠르게 윤석열 대통령과 관계 강화 행보에 나섰다. 한국을 반중(反中)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한 필수 국가로 간주한 셈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물론 한국 처지에서 볼 때도 반도체 설계와 장비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과의 협력은 중요하다. 반도체 전문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설계 부문에서 상위 5개 기업 가운데 4개가 미국 기업이었다. 또 반도체 장비 부문에서도 상위 5개 기업 중 3개가 미국 기업이었다. 한국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의 45%를 미국으로부터 들여온다. 한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선도 국가를 유지하려면 미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5월 23일 두 번째 순방국인 일본에서 반도체를 핵심으로 한 반중 공급망 구축을 위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IPEF에는 미국과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피지, 아세안 10개 회원국 중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모두 14개국이 참여했다. IPEF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7일 화상으로 개최된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처음 언급한 바 있다. 이후 백악관은 2월 11일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통해 IPEF 추진 방향을 제시했다. IPEF는 △무역 △공급망 △청정에너지·탈탄소화·인프라 △조세와 반부패 등 4개 필러(pillar·분야)를 중심으로 한 반중 경제 포위망을 말한다.

유럽에선 TTC, 아시아·태평양에선 IPEF

특히 미국 정부는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반도체, 배터리, 핵심 광물 등 전략 품목의 공급망을 구축해 중국을 견제할 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 언제든 중국 목줄을 죄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미래 성장엔진인 디지털 경제의 표준,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의 규범, 노동·환경의 기준을 설정하는 등 새로운 경제 모델을 제시할 계획이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IPEF의 목표는 디지털 경제를 발전시키고, 공급망의 취약성을 줄이며, 녹색경제에 투자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조세와 반부패 표준을 만들어 더욱 공정한 경제를 구축하는 것”이라면서 “IPEF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제협력을 심화하면서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가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추진해온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외면한 것도 IPEF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CPTPP의 노동, 환경, 디지털 무역 조항은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데 상당히 미흡하다. CPTPP에는 또 공급망 재편, 반도체, 수출 통제, 인프라 관련 조항이 아예 없다. 반면 IPEF는 경제는 물론, 안보까지 포함한 협정이다. 예를 들어 IPEF에 디지털 무역의 표준 조항을 만들 경우 중국이 군사적으로 활용 가능한 첨단기술 분야를 통제할 수 있다. IPEF에는 노동의 기준으로 인권 보호 원칙이 제시될 수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3일 중국 신장웨이우얼(위구르)자치구에서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위구르족 강제노동 금지법’에 서명한 바 있다. 또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견제하려고 IPEF에 인프라 투자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시킬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 등 주요 7개국(G7)은 지난해 6월 정상회의에서 ‘더 나은 세계 재건’(Build Back Better World·B3W)이라는 인프라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도상국들에 투명하고 지속가능한 자금을 제공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IPEF는 상품과 서비스 시장 개방 위주인 기존 자유무역협정(FTA)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새로운 개념의 협정인 셈이다.

미국 정부는 이미 지난해 10월 유럽연합(EU)과 무역기술위원회(TTC)를 출범해 글로벌 기술 및 무역 등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협력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비(非)시장국과 무역 분쟁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 △투자 심사 강화 △수출 통제 △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국제질서 및 표준, 규범을 설정하는 작업을 다룬다. 이 위원회는 최근 AI, 5·6세대 이동통신, 전기차 등 첨단기술 분야에 대해 새로운 표준을 마련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미국 정부의 의도는 유럽 지역에선 TTC를, 인도·태평양 지역에선 IPEF를 각각 축으로 삼아 중국 포위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브릭스 확대’ 꺼내 든 中

브릭스(BRICS) 5개국이 5월 19일 외무장관 회담을 화상으로 열고 있다. 중국 외교부
중국 정부는 IPEF 출범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IPEF가 미국의 지역 경제 패권을 지키는 정치적 도구가 돼 특정 국가를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면 그 길은 옳지 않다”면서 “IPEF의 목적은 중국을 봉쇄하고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을 미국 패권을 위한 졸(卒)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중국 정부는 IPEF의 대응 카드로 ‘브릭스 확대’를 꺼내 들었다.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는 신흥 경제대국 5개국 모임이다. 브릭스는 2009년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이 처음 구성했고 2010년 남아공이 합류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5월 19일 브릭스 외무장관 회담 개막식 화상 축사에서 “전 세계적인 각종 위험과 도전에 직면한 만큼 신흥시장국가와 개발도상국의 단결·협력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며 브릭스 확대를 제안했다. 브릭스 외무장관들은 “아세안과 아프리카까지 외연을 확장하는 ‘브릭스+(플러스)’ 협력 추진을 지지한다”며 중국 측 제안에 화답했다. 브릭스는 전 세계 인구의 41%,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4%, 무역의 16%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자국이 주도하는 세계 최대 다자간 FTA인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참여하는 국가들과 협력 강화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미국과 중국이 이처럼 세계 경제 패권을 놓고 본격적인 대결에 돌입함으로써 양국 갈등과 대립은 더욱 증폭될 것이 분명하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42호에 실렸습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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