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 사라지면 주택 20만 채 지을 수 있을까[이원주의 날飛]

이원주 기자

입력 2022-06-05 10:00 수정 2022-06-1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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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의원 ‘김포공항 이전’ 공약 팩트체크

이번 ‘날飛’에서는 6월 1일 치러진 지방선거, 국회의원보궐선거 때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와 이재명 인천계양을 국회의원 당선인이 냈던 ‘김포공항 이전’ 공약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 주택 20만 채 지을 수 있을까

이재명 의원이 보궐선거 후보 때 김포공항 이전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당연히 주택 공급이었을 겁니다. 앞서 민주당은 대선을 앞둔 2021년 말~2022년 초에도 김포공항 이전 카드를 꺼냈습니다. 김포공항이 이전하면 해당 부지에 최소 20만 채의 주택 공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계산한 바 있습니다.

김포공항 전경. 동아일보DB



국토교통부의 ‘국내공항시설 현황’ 자료를 보면 김포공항의 부지는 844만923㎡입니다. 통상 행정동 면적을 따질 때는 제곱미터가 아닌 제곱킬로미터로 따집니다. 김포공항 부지를 제곱킬로미터로 표현하면 8.44㎢가 됩니다.




이 넓이를 최근 재건축 공사가 중단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와 비교해 보겠습니다. 둔촌주공아파트를 비교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이 아파트 단지 하나가 행정동 하나를 다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동구 둔촌1동은 둔촌주공아파트 단지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서울 열린데이터광장 자료를 보면 둔촌1동의 면적은 0.92㎢입니다. 재건축 계획으로는 이 곳에 주택이 총 1만2032채 공급될 예정입니다.


재건축 공사가 진행되다 중단된 둔촌주공아파트. 사진은 2019년 촬영. 동아일보DB


김포공항 면적은 둔촌1동의 9.17배입니다. 여기에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의 공급 규모를 반영해보면 11만380채가 나옵니다. 민주당 계산의 절반 수준입니다. 이 계산은 김포공항 부지 전체를 한 개 단지로 개발해 아파트만 배치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단지를 분할하고, 도로를 깔고, 상가 부지를 확보하고, 요즘 추세처럼 공원도 좀 둔다면 공급 가능 주택은 훨씬 줄어들 겁니다.


서울 강동구 둔촌1동. 행정동 1개가 둔촌주공아파트 부지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면적은 0.92㎢입니다. 네이버지도, 서울 열린데이터광장


비슷한 사례를 경기 김포시에 들어선 한강신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포시가 홈페이지에서 밝힌 한강신도시 면적은 총 10.87㎢이고 이 신도시에 들어선 총 주택 수는 5만6653채입니다. 김포공항보다 넓은 면적에 민주당 공약의 30%가 채 안 되는 주택이 공급됐습니다. 이 밀도대로라면 김포공항 주변이 아니라 김포공항이 있는 강서구(약 41㎢) 전체를 통째로 개발해야 20만 채 공급이 가능합니다. 공항 주변 고도제한 해제로 늘어나는 주택까지 감안하더라도 김포공항 이전으로 20만 채나 되는 주택이 공급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김포시청 홈페이지에 게재된 김포한강신도시 소개. 김포시청 홈페이지 캡처



● 고속열차 10분 주파?


김포공항 이전 공약이 이슈가 되자 이재명 당선인은 김포공항 대신 인천공항을 이용할 수 있다며 “고속철도로 10분이면 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도 비슷한 거리를 달리는 고속철도 운행시간과 비교해보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서울역과 인천공항을 잇는 공항철도. 중간 정차역이 없는 직통열차를 타면 서울역에서 1터미널까지 43분에 갈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DB


SRT열차가 출발하는 서울 강남구 수서역에서 첫 정차역인 경기 화성시 동탄역까지 거리는 약 32.4km입니다. 김포공항~인천공항(1터미널) 사이 공항철도 역간 거리인 37.6km보다 약간 짧습니다. SRT 홈페이지에는 두 역 사이 운행시간을 15~16분으로 잡고 있습니다. 이 구간에서 SRT가 다니는 ‘수서평택고속선’ 철로는 수서역 출발부터 고속으로 달릴 수 있는 고속열차 전용 선로입니다. 다시 말하면 KTX급 열차가 고속철로로 달려도 32~33km를 10분 내 주파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SRT 예매 스마트폰 앱에 표시된 수서역-동탄역 소요시간. 15~16분이 걸린다고 안내되어 있습니다. 동아일보DB, SRT 스마트폰 앱 캡처


인천공항에는 실제로 KTX가 운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2014년 6월 30일부터 2018년 3월 22일까지 운행한 ‘인천공항 KTX’는 서울역에서 인천공항까지 약 58km 구간을 1시간 10분에 걸쳐 달렸습니다. 인천공항 KTX는 중간에 검암역에 정차했는데, 검암역~인천공항 구간을 달리는 데 걸린 시간이 17~20분입니다. 두 역 사이 역간거리는 25.5km이었습니다.


2014년 6월~2018년 3월 사이 운행했던 인천공항 KTX. 평창겨울올림픽이 끝난 후 승객 수가 크게 감소해 노선이 폐지됐습니다. 동아일보DB


국토교통부가 2030년까지 추진하는 제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안에는 공항철도 속도를 높이는 사업도 포함돼 있습니다. 서울역~인천공항 사이 열차 평균속도(표정속도)를 시속 100km, 최고속도를 150km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입니다. 다만 30km를 10분에 주파하려면 단순 계산으로도 평균속도 시속 180km가 필요합니다.


국토교통부가 2021년 7월 5일 고시한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공항철도 고속화 계획이 포함되어 있지만 계획대로 고속화가 되더라도 인천공항까지 39분이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고속 공항철도가 다닌다고 해도 싸지 않은 비용이 심리적 저항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인천공항 KTX는 서울역~인천공항 구간 요금이 12500원이었습니다. 현재 운행하는 공항철도 직통열차 요금도 편도 9500원, 할인을 받아도 7500원을 내야 합니다. 실제 열차가 개통하더라도 이 요금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이용을 기피하면 인천공항 KTX의 전철을 밟게 될 수 있습니다.


● 수직이착륙 비행기?

“앞으로는 비행기가 수직으로 이착륙하기 때문에 넓은 활주로가 필요 없다”는 발언은 이재명 당선인이 5월 26일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와 TV 토론을 하는 중에 나왔습니다. TV토론을 하다 보면 상대 후보의 공격에 순발력 있게 대처해야 합니다. 때문에 설익은 발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발언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해야 할 겁니다. 다만 수직이착륙 여객기는 앞으로도 한동안 실용화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대한항공의 보잉777-300ER 항공기. 이 비행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엔진이 달려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이유는 여객기 무게가 너무 무겁기 때문입니다. 현재 여객기에 쓰는 엔진 중 가장 힘이 센 엔진은 제네널일렉트릭(GE)에서 만든 GE90-115B 엔진입니다. 설계상 최대 11만5500파운드(약 52t)의 추력을 낼 수 있습니다. 이 엔진을 쓰는 비행기는 보잉 777-300ER 항공기인데, 연료나 승객이 하나도 실리지 않은 ‘공차중량’이 35만 파운드(160t)를 오갑니다. 연료와 승객을 최대로 실었을 때 무게는 77만 파운드(350t)를 넘어갑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빅터빌에 있는 제네럴일렉트릭사의 엔진 시험장에서 GE90 엔진의 추력을 테스트하는 모습. 바윗덩이를 부술 정도로 강한 추력을 내지만 여객기를 수직으로 띄울 수는 없습니다. GE홈페이지


그러니까 만약 이 비행기를 수직으로 띄우려면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엔진을 7개 이상 달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여기에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이 엔진들의 출력을 모두 설계상 최대치까지 올려야 합니다. 경제성과 소음 환경 등 모든 면에서 안 좋습니다. 엔진 4개가 달린 비행기인 보잉 747과 에어버스 380 항공기를 주문하는 회사가 없어 이 비행기는 이미 단종됐습니다.


에어프랑스가 자신들이 보유했던 A380 기종을 모두 처분하면서 만든 영상. 에어프랑스는 첫 A380을 도입한 지 11년 만에 이 항공기를 모두 처분했는데, 한 기종이 10년 남짓한 기간에 모두 사라지는 건 이례적입니다. 에어프랑스 유튜브 캡처


수직이착륙 기술이 아주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직은 여러 이유 탓에 주로 작은 비행기에만 실험적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일부 헬기 중에 덩치가 제법 큰 경우가 있긴 하지만 역시 민항 여객기와 비교할 덩치는 아닙니다. 또 덩치에 비해서도 실을 수 있는 승객 수나 화물 무게가 적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쓰이는 형편입니다.

수직이착륙 전투기 F-35B. 수직이착륙이 가장 큰 특징이지만 이 기능을 추가하면서 작전반경은 F-35A에 비해 약 15% 감소했습니다. flickr.com@Alan Moore


● 근거를 갖춘 공약을…

선거가 뜨거워질수록 후보들의 공약 경쟁도 치열해집니다. 다양한 공약이 나온다면 유권자에게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분위기가 과열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공약이 근거도 없이 남발된다면 국민들은 혼란스러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몇 년간 치러진 선거에서 김포공항, 김해공항 등 공항 이전 공약이 계속 등장했습니다. 공항을 짓고 없애는 건 국민의 혈세가 최소 수조 원 이상 들고 십수 년의 시간이 걸리고, 항공업계에서 일하는 수천~수만 명의 ‘밥줄’이 생기고 사라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정치인들이 정치력을 발휘한다는 건 이런 큰 돈과 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좌지우지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보는 정치인들의 혜안을 기대합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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