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난민 진료로 생명 구조… 개도국엔 의료기술 전수

김상훈 기자

입력 2022-06-04 03:00 수정 2022-06-04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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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의료 사회공헌〈2〉글로벌 의료지원 재개
전쟁 피해 우크라에 의료단 파견… 접경지 난민보호소서 부상자 치료
현지 고려인들에겐 상비약 제공… 개도국 의사들 국내입국 급증세
코로나 이후 끊긴 의료연수 활발… 낙후지역 직접 찾아 진료-수술봉사


우크라이나 의료봉사단 조원민 단장(고려대 안산병원 흉부외과 교수)이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는 고려인 환자를 살피고 있다(왼쪽 사진). 정철웅 고려대 안암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가 우크라이나 중년 여성의 목 부위를 휴대용 초음파기기로 체크하고 있다. 5cm의 혹을 발견해 폴란드 현지 병원으로 이송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지 3개월이 넘었다. 수많은 우크라이나 난민이 발생했고, 그들을 돕기 위해 지구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달려왔다. 종교단체, 의료단체, 시민단체…. 우크라이나 참상은 남의 일이 아닌 바로 자신의 일이었다. 무기는 총이 아니라 ‘인류애’였다.

사회공헌 활동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춰 글로벌 사회공헌 활동을 늘려야 한다는 공감대도 커지고 있다. 실제 국내 몇몇 단체도 현지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의료봉사단도 눈에 띈다. 3월 중순에는 고려대의료원이 가장 먼저 우크라이나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했다.


○ “국제 재난·재해에 적극 관심 가져야”
고려대의료원은 러시아의 폭격으로 민간인 희생이 늘어나자 곧바로 의료지원단 파견을 검토했다. 개발도상국 의료봉사 경험이 많은 의료진의 참여 신청이 줄을 이었다. 폭격으로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시신이 널려 있는 전쟁터로 의료봉사를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전쟁이 악화되면 의료지원단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파견을 결정한 이유는 명백했다. 위기에 처한 난민과 부상자를 돌보는 게 인류애이며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지원단은 전문의 3명 외에 간호사와 약사, 사회복지사, 행정요원 등 12명으로 구성됐다. 3월 19일 폴란드에 입국했다. 우크라이나 입국이 허용되지 않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서 활동했다.

의료지원단은 현지에 2주 남짓 머물면서 우크라이나 접경지역 10여 곳의 난민보호소에서 현지 비정부기구(NGO) 단체와 공조해 봉사활동을 벌였다. 한 중년 여성의 목에서 5cm의 혹을 발견하고 폴란드 병원으로 이송해 진료를 제대로 받게 했다. 자정 이후에 심정지로 찾아온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한 의료진은 “넋이 빠진 부모 옆에서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며 “빨리 전쟁이 끝나 평화를 되찾기를 바란다”고 했다. 현지 고려인들에게는 상비약과 방역키트, 고추장, 된장, 김치 등 한국 식품도 전달했다.

고려대의료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되면 재건 활동에도 힘을 보탤 계획이다. 박건우 고려대의료원 사회공헌사업본부장(안암병원 신경과 교수)의 이야기다.

“우리도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외국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돌려줘야 할 때죠. 의료 봉사 등 사회공헌 활동 무대를 세계로 넓혀야 합니다.”


○ 꾸준한 의료기술 전수-현지봉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던 해외 의료진에 대한 초청연수교육이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김진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가 말레이시아 연수생에게 로봇수술법을 교육하고 있다. 고려대의료원 제공
사실 국내 대학병원들은 오래전부터 의료 영역에서 국제사회에 공헌해 왔다. 특히 개발도상국에 꾸준히 우수한 의료기술을 전수해 왔다. 매년 수백 명의 개발도상국 의사가 국내에서 의료 연수를 받는다. 연수 대상이 되는 진료과도 광범위하다. 최근에는 로봇 수술을 배우기 위해 오는 의사들도 많다.

고려대 안암병원의 경우 2018년 53명, 2019년 72명의 해외 의사가 1∼12개월 동안 연수를 받고 돌아갔다. 유럽에서 온 의사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몽골, 필리핀, 베트남, 요르단, 이란, 말레이시아 등 개발도상국 출신이다. 고려대 안암병원에서는 국내 교수와 해외 연수 의사의 1 대 1 매칭 시스템을 통해 일종의 사제(師弟) 관계를 맺어 교육을 진행한다.

이런 연수 시스템의 목적은 수익이 아니다. 의료기술이 낙후된 나라에 선진 기술을 전수하는 게 목적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해외 의료진 연수 교육을 총괄하는 정재승 흉부외과 교수는 “개발도상국 의료진을 상대로 한 교육은 지속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라며 “의료 혜택을 못 받아 고통 받는 지구촌 형제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개발도상국 현지로 직접 가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기도 한다. 고려대 안산병원은 2017년부터 인도네시아 파푸아주 메라우케군 울릴린 지역을 매년 찾아 봉사활동을 해왔다. 이 지역은 5000여 가구가 240여 개 마을을 형성한 곳이다.

봉사단은 가정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외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등 여러 진료과 전문의 외에 간호사, 약사, 임상병리사 등으로 구성됐다. 봉사단은 현지의 1차 진료 담당 의사들과 함께 무료 봉사를 진행했다. 3년 동안 현지 주민 1000여 명이 무료 검사와 진료의 혜택을 받았다.

2018년 3월과 2019년 11월에는 캄보디아 프놈펜 헤브론메디컬센터에서 심장수술 의료봉사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흉부외과 외에도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이 봉사단에 합류했다. 총 12명을 수술했고, 30명에게는 심장초음파 검사와 심장 시술을 진행했다. 또 현지 직원들에게 소아 심장수술 후 해야 할 관리 교육을 해 지속적인 관리가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앞서 2012∼2017년에는 몽골, 볼리비아 등에서도 의료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을 벌였다. 현지에서 설립되는 병원 운영 시스템과 프로세스 구축에 대해 컨설팅을 했고, 현지 의료진을 국내로 초청해 교육도 했다.


○ ‘코로나 막바지’ 글로벌 의료봉사 기지개
이런 병원의 국제적 사회공헌 활동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화하면서 크게 줄었다.

개발도상국 의사의 국내 연수에서 이 점을 알 수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의 경우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2020년과 2021년 등 두 해 동안 연수를 받은 개발도상국 의사는 총 21명에 불과하다. 고려대의료원이 진행했던 해외봉사 활동 또한 2020년 이후 사실상 중단됐다.

올 들어 코로나 사태가 막바지로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이런 국제적 사회공헌 활동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일단 개발도상국 의사의 국내 연수가 급증하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만 하더라도 올 들어 현재까지 40여 명이 연수를 받고 있다.

해외 현지봉사 활동도 늘어나고 있다. 1∼3월 고려대의료원은 현대차정몽구재단과 함께 라오스 온드림 실명 예방 사업을 했다. 재단이 비용을 부담하고 고려대의료원은 현지 의사 교육과 수술 지원을 맡았다. 이런 방식을 통해 현지 의사가 직접 백내장을 비롯해 안과 질환을 수술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백내장 153건, 나머지 안과 질환 42건의 수술을 할 수 있었다. 별도로 고려대의료원은 2개월 동안 비대면으로 현지 안과 의사 교육을 진행했다. 또 현지 간호사, 교사, 공무원을 대상으로 보건교육도 진행했다. 45세 이상 현지 여성 주민에게는 돋보기를 지원했다.

현지 주민들의 호응은 컸다. 백내장 수술 혜택을 받은 한 현지 주민은 봉사단에게 “항상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흐릿했지만 수천 km 떨어진 병원에 갈 수도 없었고, 수술 비용도 마련하지 못해 포기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5월부터는 마다가스카르에서 라오스 온드림 실명 예방 사업과 유사한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캄보디아에는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마스크 25만 장을 보냈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아프리카 부룬디의 최정숙여고 졸업생 2명의 국내 한국어 연수를 지원하기도 했다. 부룬디 최정숙여고는 아프리카 부룬디공화국 부반자 지역에 만들어진 부룬디의 첫 국립 여고다.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 의료인이었던 고(故) 최정숙 선생을 기리는 모임이 한국희망재단과 함께 2018년 현지에 세웠다. 최 선생은 고려대 의대 2회 졸업생이기도 하다. 이를 기려 고려대의료원이 졸업생들의 항공편과 어학연수비를 지원한 것이다. 최정숙을 기리는 모임은 졸업생들의 국내 체류 경비를 지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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