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약물로 인한 소리 없는 재해 예방해야

남기정 변호사·법무법인 강한 대표

입력 2022-05-25 03:00 수정 2022-05-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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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고치기 위한 의약품… 자주 다루는 실무자엔 위험
폐쇄형 약물전달장치 등 치료 위한 급여 등재 필요


남기정 변호사·법무법인 강한 대표

2016년 미국 국립산업안전연구원(NIOSH)이 발표한 위해(危害)약물 리스트 217종을 보면 이 중 항암제가 116종에 이른다. 이런 약물을 따로 관리하는 이유는 발암성, 기형아 출산, 발달 독성, 유전자 독성, 생식 독성, 장기 독성을 가지며 유산 및 난임, 불임 등 여러 가지로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는 독극물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런 종류의 항암제는 음압시설이 잘 갖춰진 중앙조제실에서 조제한다. 이곳에 근무하는 약사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방호복을 입고 일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항암제를 조제하다 보면 피부발진, 바늘 찔림에 의한 조직 괴사, 탈모 등은 물론이거니와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약제에 노출되는 경우에는 새로운 질병까지 생기기도 한다.

한 예로 2009∼2010년 제주에 있는 한 병원에서 근무한 간호사들이 장기간 항암제 분말을 흡입해 집단적인 유산과 기형아 출산에 이른 사실이 인정돼 의약품을 포함한 생식독성물질 전반에 의한 태아 산재를 인정받았다.

병원 실무자들의 안전은 이렇게 위해약물에만 노출돼 있는 건 아니다. 약물의 제조와 투약 오류로 인한 각종 사고는 작업자뿐 아니라 환자 안전까지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에 한 대학병원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12개월 된 아기에게 50배 농도로 제조된 약물을 주사해 아기가 사망한 일도 있었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홈페이지를 보면 미국은 위해약물에 의한 잠재적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폐쇄형 약물전달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일본 역시 2012년부터 항암제 조제 시 이러한 장치 사용에 대한 적절한 수가 보상을 해주고 있고,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병원 실무자와 환자의 안전 모두를 고려한 것이다.

이에 최근 한 기업에서 위해약물 취급이나 주사액의 정확한 분주 등에 사용하는 새로운 안전장치를 만들어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치료재료 결정신청을 했다. 치료재료 결정신청에서 급여 등재가 되면 국내에서도 이 장치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건강보험 적용에서 제외된다면 병원이 사용을 꺼릴 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급여가 적용되지 않으면 사용한 후 그 비용을 청구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외국에서는 실무자와 환자의 안전을 위해 이런 장치를 사용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직접적으로 환자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건강보험에서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늦게나마 국내기업이 특허국제출원(PCT)까지 취득한 안전장치를 내놓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에 진입했다. 이제 우리도 보이지 않는 안전에 돈을 투자해도 될만한 경제 규모를 이룩했다. 이번에는 병원과 환자 모두의 안전에 도움이 될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남기정 변호사·법무법인 강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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