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곳에서 일감 받는 플랫폼 노동자, 산재보험 보상받기 쉬워진다

주애진 기자

입력 2022-05-24 03:00 수정 2022-05-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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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통과 앞둔 산재보험법 개정안
최근 사망사고 급증 배달노동자, ‘전속성’ 요건 탓 가입 어려웠지만
개정안 시행 땐 가입-보상 쉬워져… 소속된 사업장들이 보험료 분담
주사업장 아닌 곳서도 보상 가능



올해 3월 말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자전거를 타고 배달하던 40대 쿠팡이츠 배달원 A 씨가 트럭과 부딪쳐 숨졌다. 그는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했지만 쿠팡이츠가 ‘주된 사업장’이 아니라 사망 후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배달노동자로 구성된 쿠팡이츠 공동교섭단은 사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산재보험의 전속성 기준을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전속성이란 노동자가 주로 하나의 사업장에서 일하는지 여부를 뜻한다.

앞으로는 A 씨처럼 여러 업체에서 일감을 받아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사고를 당했을 때 산재보험으로 보상받기가 쉬워진다. 산재보험의 ‘전속성 요건’을 없애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되면 달라지는 점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배달라이더 같은 플랫폼 노동자들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나.

“현재 보험설계사, 택배기사, 방문판매원, 골프장 캐디 등 15개 분야의 특고 종사자는 일반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산재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올해 7월부터는 유통배송기사와 택배 지·간선 기사 등이 추가돼 19개 분야로 확대된다. 다만 한 사업장에서 주로 일하지 않는 사람은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다. 이를 ‘전속성 요건’이라고 하는데, 세부 기준은 분야마다 다르다. 배달원은 올해 기준으로 한 사업장에서 월 115만 원 이상을 받거나 월 93시간 이상 일하면 전속성이 인정된다. 보통 플랫폼 노동자들은 여러 업체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 요건을 채우기가 쉽지 않다.”

―전속성 요건이 없어지면 어떤 점이 달라지나.

“그동안 산재보험에 가입하고 싶어도 전속성 요건 때문에 할 수 없었던 노동자가 많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5개 분야에서 일하는 특고 종사자 가운데 전속성 요건을 채우지 못해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사람은 약 40만 명으로 추산된다. 앞으로 이들도 산재보험에 가입하고 일하다가 다쳤을 때 보상 받을 수 있게 된다. 또 전속성 요건을 채워 산재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주된 사업장이 아닌 다른 사업장의 일을 하다가 다치면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고도 보상받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했다. 이제 이들도 전속성 여부와 관계없이 보상을 받게 있다. 주된 사업장 외에 다른 사업장에 동시에 소속된 특고 종사자는 약 23만 명으로 파악된다.”

―플랫폼 노동자나 특고 종사자에게 산재보험이 꼭 필요할까.

“이들 분야는 사고 위험이 높은 운송, 배달 관련 업무가 많다. 산재보험으로 보호받아야 할 필요성이 더 크다. 사고가 빈번한 배달노동자의 경우 지난해 산재 사망자가 18명으로, 5년 전(2명)의 9배로 급증했다. 다만 이는 산재보험법에 따라 보상을 신청한 사람만 집계한 통계다. 실제 배달노동자 사망사고는 훨씬 더 많다.”

―여러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산재보험에 가입하면 보험료는 누가 부담하나.

“사업주가 산재보험료를 내는 일반 근로자와 달리 특고 종사자의 산재보험료는 당사자와 사업주가 절반씩 낸다. 보험요율은 업종마다 다르다. 지금은 전속성 있는 업체의 사업주만 보험료를 내지만 앞으로는 노동자가 일하는 여러 업체에서 보험료를 나눠 내게 된다. 예를 들어 3개의 플랫폼에서 일감을 받는 노동자 B 씨가 있다고 치자. B 씨는 3개 업체에서 일한 총금액을 기준으로 본인 몫의 보험료를 낸다. 플랫폼 업체들은 매달 B 씨에게 지급한 보수를 근로복지공단에 신고하고 각각 신고한 보수에 대해 정해진 요율만큼 보험료를 낸다.”

―이번 법 개정안으로 ‘적용 제외’ 제도가 없어진다. 일을 쉬어도 보험료를 계속 내야 하는 건가.

“15개 분야 특고 종사자는 현재 질병, 부상, 임신, 출산 등으로 1개월 이상 휴업하면 산재보험 의무대상이지만 예외적으로 그 적용을 받지 않는 ‘적용 제외’를 신청할 수 있다. 수입이 없을 때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기 위한 취지다. 하지만 그동안 노동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사업주가 적용 제외를 신청하도록 하는 등 악용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를 감안해 이번에 적용 제외 조항을 없애는 대신 ‘휴업 등 신고제도’를 새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특고 종사자가 질병, 부상 등으로 일을 쉴 때 휴업으로 신고하면 해당 기간 동안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산재 보상은 그대로 받을 수 있게 됐다.”

―새로운 법은 언제부터 적용되나.

“이번 법 개정안에 여야 이견이 없었던 만큼 이달 중 국회 본회의에서 무난하게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과 시 내년 7월부터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주된 사업장이 아닌 곳에서 일하다 사고가 난 경우에도 보상을 받는 것은 법 시행 시기와 상관없이 법 공포 시점부터 바로 적용된다. 이미 법이 개정됐는데 시행 시기가 늦어져 보상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 같은 내용의 부칙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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