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헤어진 일란성 쌍둥이 자매, 韓-美 거리만큼 달랐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2-05-20 03:00 수정 2022-05-2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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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만에 만난 쌍둥이 자매 조사

쌍둥이는 지능에서는 지각 추론과 지각 속도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났으나 성격은 성실성이 강한 면이 부각되는 등 비슷했다. 가치관에서 한국 쌍둥이는 개인 간 차이를 강조하는 수직적 성향이 강했고, 미국 쌍둥이는 개인이 평등하다고 믿는 수평적 성향이 강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 A 씨와 B 씨는 두 살 때 생이별했다. 동생인 B 씨가 할머니와 함께 남대문시장에 갔다가 길을 잃고 실종되면서다. B 씨는 가족을 찾지 못한 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한국에 남은 가족은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B 씨를 찾았으나 소득이 없었다. 이들의 재회는 헤어진 지 40년 만인 2016년 B 씨가 입양인 지원 단체를 통해 한국을 방문해 유전자를 등록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 어머니가 경찰의 권유로 유전자를 등록하면서 가족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 나왔다.

2020년에야 성사된 이들의 재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으로 이뤄졌음에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쌍둥이의 절절한 사연은 과학자들에게도 기회가 됐다. 낸시 시걸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심리학부 교수와 허윤미 국민대 교양대 교수는 이 쌍둥이의 지능과 성격, 가치관을 분석한 결과 지능지수가 차이가 났고 자라난 문화에 따른 가치관 차이도 뚜렷했다고 최근 국제학술지 ‘성격과 개인차’에 발표했다.

○ 환경에 따라 뚜렷한 차이 보인 ‘일란성 쌍둥이’

어릴 때부터 떨어져 살게 된 일란성 쌍둥이의 사연은 쌍둥이 연구자들에겐 절호의 연구 기회로 꼽힌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같은 만큼 유전적 요인을 통제한 채 환경이 인간 발달에 주는 영향만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연을 듣자마자 두 사람이 상봉하기 전 빠르게 접촉했다. 쌍둥이가 만나게 되면 서로 영향을 미쳐 환경 차이를 분석하기 어려워진다.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쌍둥이들의 지능과 성격, 정신 건강, 병력 등을 조사했다.

분석 결과 A 씨가 B 씨보다 지능지수(IQ)가 16점 높았다. 일란성 쌍둥이의 IQ 차이가 보통 7점 이상 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언어 능력과 기억력은 비슷한 반면 지각 속도나 추론 점수처럼 유전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수치에서 차이가 났다. 성향 분석에서도 한국에서 자란 A 씨는 집단주의적 가치관이 강했고, 미국에서 자란 B 씨는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강했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의 가치관 분석이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허 교수는 “한국인은 서양인보다 지각 속도나 추론 점수가 높고 집단주의적 성향도 강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쌍둥이에게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며 “하지만 두 사람의 가족 차이도 있고 B 씨가 뇌진탕을 세 차례 겪은 전력이 있어 환경의 영향으로만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지능과 가치관 외에 쌍둥이는 자존감이나 성격, 정신 건강 수치에서는 거의 같은 사람처럼 일치하는 결과를 보였다. 19세에 난소에 문제가 생겨 수술한 병력도 같았다.

○ 유전 질환 치료 탐색길 여는 쌍둥이 연구


어릴 때 헤어져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 사례가 연구로 분석된 것은 지금까지 10여 건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윤리 문제로 쌍둥이를 다른 가정에 각각 입양 보내지도 않는다. 간혹 등장하는 사례는 일반화까지는 어렵지만 환경의 영향이 무엇인지를 추정할 만한 힌트를 과학자에게 제공한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사례에서 발견된 차이를 1000쌍 이상의 대형 쌍둥이 연구에 연결시켜 유전 영향의 비율을 상당 부분 알아냈다. 지능의 유전율은 50∼80%에 달하고 성격도 40∼50%는 유전의 영향을 받는다. 정신질환은 30∼50% 정도지만 조현병은 70∼80%로 유전 영향이 크다.

최근 쌍둥이 연구는 유전 영향을 넘어 유전자 발현이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연구하는 후성유전학이나 장내 미생물의 차이를 관찰하는 연구로 점차 진화하고 있다. 유전적으로 대머리를 물려받은 쌍둥이라도 한 명은 30대, 다른 한 명은 40대에 머리가 벗겨지는 등 조금씩 차이가 난다. 시기를 다르게 만드는 환경 차이를 찾으면 유전 질환을 막는 환경을 조성해 치료하는 것도 가능하다. 허 교수 팀도 지난해 12월 국민대에 쌍둥이연구소를 차리고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올해 중 쌍둥이들의 장내 미생물을 분석해 아토피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발달 과정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윤리 심의를 받고 있다.

허 교수는 “쌍둥이는 과학 실험이 불가능한 인간에 대해 과학적 정보를 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한국은 해외보다 연구 참여가 저조한 편인데 더 많은 참여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가장 쌍둥이를 적게 낳는 나라였지만 이제는 쌍둥이 대국인 만큼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 교수 팀이 지난해 국제학술지 ‘쌍둥이 연구와 인간 유전학’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1981년 1000명당 5쌍의 쌍둥이가 출생했지만 2019년에는 1000명당 22.5쌍이 출생했다. 전 세계 평균인 1000명당 12쌍의 2배 수준이다. 출산 시기가 늦어지고 난임 치료 등이 확대되며 지난 40년간 무려 4.5배로 증가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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